[논평] 중국의 제4세대 지도부 출범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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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
등록일
2002-11-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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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중국에서는 후진타오가 새로 총서기에 오르고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대폭적으로 교체되면서 이른바 '제 4세대' 지도부가 출범하게 되었다. 세계 최대 인구대국을 이끌어갈 이들은 "20년 뒤 현 국내총생산(GDP)의 4배, 1인당 국민소득 3천달러, 50년 뒤 미국 다음 세계 2위국" 이라는 미래 중국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대내외적으로 크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국가지도부를 형성하게 된 이들은 평균연령이 이전 지도부보다 크게 낮아졌다는 점도 눈길을 모으지만, 그보다 더욱 주목할 것이 하나 있다. 후진타오 총서기를 비롯해서, 국가지도층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이 전원 이공계 대학을 나온 테크노크라트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번에 비록 총서기직에서는 물러났으나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장쩌민 역시 이공계 엔지니어 출신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현대 중국의 정치에서 당과 국가의 지도층의 상당수를 이공계 출신의 테크노크라트들이 점유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념보다는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실용주의 노선이 중국의 지도이념으로서 확고히 자리잡은 후에 성장한 이공계 엘리트와 기술관료 세대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그들에 의해서 국가권력이 완벽하게 장악되었다는 점은 여러가지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의 일원으로서 발전해 온 현대 중국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바도 크고, 이런 현상이 무조건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중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거나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소 이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특정 집단의 권력장악 문제가 아니라 급변하는 현대 과학기술문명 시대에서, 과학기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이공계출신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된 국가경영을 할 수 없고, 국제사회의 치열한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중국 국민들과 그들 지도층의 절박한 인식이 그 배경이 되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약 15세기까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유지해 왔으나 근대 과학혁명기 이후 서구에 뒤쳐지기 시작하여 결국 19세기의 아편전쟁 등으로 서구 열강에 치욕을 당해온 중국이,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도리어 이제는 곧 그들을 따라잡고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강국이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반영이라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미 중국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른 경제성장과 과학기술 중흥을 이루고 있고, 이공계 출신의 국가지도층이 앞장선 경제개혁과 갖가지 과학기술자 우대 정책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그들의 혜안과 과학기술 입국을 향한 전국민적인 공감대는 이웃인 우리에게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최근 들어 경제사정이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이번 노벨과학상 2개부문 수상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과학기술력을 과시한 일본과, 또한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는 중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로서는, 갈수록 힘든 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 영영 낙오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형편은 어떠한가? 국가지도층 인사들 중에서 이공계 출신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더 이상 묻고 싶지도 않다. 중국이라는 한 나라의 예만 가지고 지나치게 일반화하려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역시 최고 통치자가 이공계 출신이 아닐지라도, 정관계, 산업계, 언론계 등 각계 각층의 최상층부에 이공계 출신들이 대거 포진하여 있다. 이웃 일본 역시 국가 관료의 등용에 있어서 기술고시 정원이 행정고시 정원과 거의 같거나 약간 많은 실정이다.

국가지도층의 구성에 있어서, 그것도 위로 올라갈수록 이공계 출신들이 형편없이 홀대받고 소외되는 것은 도리어 선진국과 상층 개발도상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이러한 지적과 주장이 이공계 사람들의 기득권층 진입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냐고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면서, 이러다가는 나라의 장래가 염려되니 뭔가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지금껏 나온 방안과 대책들이 과거에도 되풀이되었던 일시적인 미봉책에 머물고 있는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그나마도 더 이상 통하지도 않을 사탕발림 같은 유인책이나 떠들면서 현실을 도외시한 채 헛다리만 짚고 있는 이유가 바로 대다수 관료들과 최고지도층 인사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무지하고, 그나마 과학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이공계 출신 인사들이 정책결정 과정에서도 소외된 결과에 다름아닌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들은 과학기술 수석이나 특보를 신설하고, 공직자 진출과 비례대표 의원 등에서 이공계 출신을 배려하겠다는 등의 여러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일시적으로 과학기술계를 달래기 위한 공약(空約)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공인들은 이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이공계 출신들을 정, 관계 등에 크게 늘릴 수 있는 실질적이고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기존의 고위 인사들 또한 이공계를 천시하고 홀대하는 비뚤어진 시선을 버리지 않는 한, 이공계 기피현상 극복을 위한 어떤 대책도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

아울러 일반 국민들도 "이공계는 정치나 행정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정치는 인문사회, 법학 전공 출신 사람들이나 하는 것" 이라는 사상공농(士商工農)식의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 바로 일부 국민들이 무시해마지 않는 '중국 인민'들도 오래전에 버린 것이 이공계 천시인데, 우리가 못버릴 이유가 어디있는가?
  • 인과응보 ()

      우리의 경쟁국치고 한국만큼 이공계를 홀대하는 국가가 없읍니다. 한국이 근대화에 실패하여 일본의 식민지가 된 가장큰 이유가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부국강병에 실패했기때문인데, 왜 또다시 과학기술인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 인과응보 ()

      중국은 근대화에 실패해 서구열강의 반식민지로 떨어졌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과거를 지니고 있읍니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격변하는 지금, 21세기를 준비하는 중국의 자세는 한국과는 큰차이를 보이고 있군요. 물론 중국의 미래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을것입니다만, 과학기술에 나라의 미래를 건 중국의 자세와,  3-4년후 나라의 성장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군요.

  • 임호랑 ()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이고 인권후진국이라고 무시한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가 올림픽을 치를 때만해도 후진국이었던 중국이 세계 7위의 경제대국에다, 핵무기도 갖고 있는 군사대국이며, 위성도 개발하여 발사하는 과학기술 강국인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제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커버린 중국한테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아르헨티나 필리핀한테도 교훈을 얻는데, 중국한테 못 얻을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 김선영 ()

      우리의 사농공상은 중국으로부터 왔지만, 이제 중국도 변한지 오래입니다. 우리나라의 10대 수출품목을 보면 핸드폰/반도체/LCD 를 제외한 나머지를 보십시요. 손톱깍기, 오토바이헬멧, 일회용스푼 따위이니, 이게 초일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안스럽습니다.

  • 최한석 ()

      자동차, 선박, 철강등은 세계초일류는 아닐지라도 일류에 가깝지 않나요.. 우리도 자부심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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