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수준과 시장 경쟁력; 첨단산업에 기준하여

글쓴이
김덕양
등록일
2002-03-29 00:4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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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업기술의 수준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았으면 합니다. 사실 설문조사에서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산업체 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전제는 현재까지 언론이 취해왔던 한국 대학교육에 대한 태도와 다른 점이 없습니다. 일단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수준 조차 선진국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일반적인 사실은 아닙니다. 전에 박종규 님께서 밝혀주셨다시피 여러 분야의 산업(건설, 조선, 제철 등등) 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때 우리나라의 산업기술 중에는 선진국보다 뛰어난 것도 많습니다. 뭉뚱그려 평균점수를 주라고 해도 100점 만 점에 90점이상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또한 다국적 기업이 출몰하는 시대에 한 국가의 기술력만을 따지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괜찮은 기술이 나오면 우리 대기업쪽에서 재빨리 사들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필요한 핵심기술을 아웃소싱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과거에 비해 많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들이 기술시장에서 외국 기업과의 '공정한' 경쟁을 하고 또 거기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이죠.

 문제는 90점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제조업에 국한시켜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죠. 기술력은 그 제조업분야에서 신제품을 얼마나 빨리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느냐의 기본적인 척도가 됩니다. 전에 bioman님께서 "winner takes all" 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이게 지금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일단 그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는 곳에서는 처음 제품을 내놓는 쪽에서 그동안 투자한 액수를 가장 빨리 회수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후발 주자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backengineering을 하든) 경쟁상품을 내놓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제품의 가격이 떨어져서 나중에 제품개발에 투자를 한 기업들은 초기 개발자만큼의 이윤을 챙기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가장 기술력이 뛰어난 쪽이 대부분의 시장이윤을 챙긴다는 것이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가전업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50-60년대에는 유럽이나 미국의 제품들이 기술력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또 그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많은 이윤을 창출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장에 일본기업이 뛰어들었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주로 기업투자를 끌어오는 미국, 유럽기업과는 달리 정부의 대출을 담보로 기술을 개발해서 초기에는 정말 형편없고 싼 제품들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런걸 요즘 시챗말로 distruptive tech 라고 하더군요. 당장 몇년간은 투자액을 전혀 건지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시절의 최고기술을 카피해서 물건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것이죠. 그런데 그 방식이 잘 먹혀들어갔습니다. 어느정도 품질이 개선되면서 가격경쟁력까지 붙게 된 것이죠. 탄탄한 정부의 지원과 보수적인 일본 내수시장을 바탕으로한 대규모 물량공세에 70-90년대 세계 가전시장은 일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다행히도 일본 제조기업과 대학들은 여러 기술을 축적하게되고 또 그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가장 빨리 내놓을 수 있는 자리를 선점하게 된 것이죠.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일본과 똑같은 과정을 밟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업계 무진장 노력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겪은 고충은 말로 다 할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무엇인가요? 전체 기술의 평준화로 인해 일본이 해왔던 만큼의 이윤을 챙기지 못했고 그 사회분배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나마 두번째로 나섰던 일본은 이것 저것 많이 챙길 수 있었지만 세번째 네번째로 나섰던 우리나라는 투자한것 만큼 다 회수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 상태로 IMF를 맞는 바람에 그동안 쌓아오던 일부 기술들 마저 잃어버리게 되었고 현재 상황은 40-50년전 일본이, 20-30년전 우리나라가 해왔던 똑같은 방식으로 중국이 세계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느정도 기술수준이 비슷한 상태에서 노동력이 싼 중국이 더 경쟁력이 세지 않을까요? 내수 시장도 훨씬 크고 일단 중국정부가 계속 기업을 밀어줄 힘도 있고 말입니다.

기술수준이 100아니 120이 되어도 모자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 경영진의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제일 중요합니다. 핵심 연구/개발 투자비를 전체 매출에서 5%선까지는 끌어올려야 합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고 5년 10년뒤를 내다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 모 이동통신회사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그쪽이 사업잘된다고 아주 좋다고 계속 주장하셨는데, 저 그거 동의못합니다.  이동통신산업은 그동안의 체신, 전력, 가스 사업과 같은 유틸리티 사업의 성격이 강합니다. 잘나가는 통신장비업체나 핸드폰제조업체가 아니고서는 수익구조 자체가 일정 수준이상의 궤도에 오른 이후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뿐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주식시장에서 자금 모아와야죠? 앞으로는 절대 정부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돈 안빌려줍니다. 그나마 돈 잘벌리는 지금 가입자 몇 명 더 받을려고 아웅다웅할게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개발해나갈 준비를 해야되는데, 제가 보기엔 그런곳에는 인색한 것 같군요. 미국와서 제일 어이가 없었던게 이동통신에서 가장 강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는 회사는 아직도 일본의 NTT-DoCoMo 라는 사실입니다. 가입자 숫자나 통신품질을 따져봤을때, 솔직히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왔었습니다. 그게 아니더군요. 월가에서 주식시장 주름잡고 있는 외국투자가들의 눈에는 말입니다. 그동안 좁은 내수 시장 서로 차지하느라 외국에서 장비만 엄청 수입해다 썼을 뿐이지, 실상 앞으로 5년뒤 대책은 있는건가요? 결국 그 점에서 뒤떨어진거죠. 참 궁금하군요. 얼마나 기술개발에 투자하고 계신지.

김 덕양 드림.

  • 냄새 ()

      건설, 조선, 제철 이 선진국과 대등하다구요? 실제 기술이 들어 가는 쪽은 아닙니다. 직접 현장에서 보면 중요한 설계,PG등은 아직 미국.일본것 인력조차 선진국에서 불러 시킵니다. 단지 한국은 간단한 조립등만 할 뿐입니다.

  • 류근호 ()

      엔지니어들을 혹사시켜 선진 제품을 재빨리 복사하는 기술력(!)은 선진국보다 낫다고 봅니다. :(

  • 김용수 ()

      그나마 IT 계열은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화공 같은 경우는 아직도 detail design만 하고 있으니... 그나마 기술력 있던 D eng.로 망하거나 진배없고...

  • 김용수 ()

      아마도 화공과 같은 장치산업 계열의 박사들의 외국 진출은 그 비율이 알게모르게 IT 계열보다 더 많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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