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이런 글이 있더군요 [펌]

글쓴이
이공계2
등록일
2002-02-27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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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조선에서 본 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민화 회장이라는 분을 모릅니다.
  하지만, 이글이 사실이라면, 이회장이 지적 기술의 재산화에 상당히
  힘을 기울였군요..
  개인적으로 아래의 "기술신용보증기금"에 대하여도 궁금합니다..
  함 읽어보시고,벤처를 꿈꾸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한국 벤처기업 성공신화를 상징하는 기업, (주)메디슨이 지난 1월 29일 최종 부도를 냈다. 부도 후 1주일여가 지난 지난 2월 초 서울 강남구 메디슨빌딩에서 만난 이민화(49) 메디슨 전(前) 회장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선 곧바로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 나왔다.

“한국 벤처정책 입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입니다.”

회사 바깥 일에 매달려 회사가 망하는 줄 몰랐다면서도, 그 일이 회사 경영보다 더 중요했다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전 회장은 지난 8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실험실에서 같이 연구하던 동기들과 의료기기 제작 전문 벤처기업인 메디슨을 만들었다. 그 이후 한국 벤처의 대표적 1세대 기업인 메디슨이 남긴 기록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91년 벤처기업 최초로 500만달러 수출 기록, 96년 세계 최초 3차원 초음파진단기 개발, 99년 매출 2000억원을 돌파하는 동시에 순익 500억원 기록….

순풍에 돛단 듯 질주했던 메디슨호를 지휘한 이민화 전 회장은 사실 메디슨 회장으로서보다는 한국 벤처제도를 만들어 낸 인물로 더 많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95년 한국벤처기업협의회를 만들어 2000년 2월까지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95년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벤처기업 육성방안’이라는 4쪽짜리 보고서를 내 놓았다. 이 보고서는 협의회가 생기기 전 이미 그가 작성해 놓았던 것이다.


● 전성기였던 2000년 초에 이미 몰락 시작

벤처기업 육성방안에는 기술을 가진 우량 중소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장외시장에 상장, 공모, 증자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전 회장은 이를 ‘작은 나스닥’이라 불렀다. 이 안을 바탕으로 96년 7월 코스닥이 탄생했다.

보고서는 벤처기업의 자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기술이나 아이디어 등 지적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생겼다. 최근까지 이 전 회장은 한국기술거래소 이사장을 맡았다. 이렇듯 기술을 담보로 사용할 수 있고 거래할 수도 있는 재산으로 자리잡은 데는 그의 기여가 절대적이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이른바 벤처인증제도(벤처확인제도)를 생각해낸 인물도 바로 이 전 회장이다. 97년 벤처확인제도를 담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전 회장은 “당시 관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법의 초안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스톡옵션제도 도입, 벤처빌딩 지정제 등 한국 벤처 제도와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디어가 이 전 회장의 머리 속에서 구체적인 모양을 갖춘 뒤 세상으로 나왔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이 벤처정책 입안에 참여한 것이 국가 전체로는 이득이 됐다고 믿는다. 또 “내겐 기업보다 국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간을 돌려 다시 벤처정책 입안에 참여하는 것과 회사 경영에 온 힘을 다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벤처정책 수립작업에 힘을 쓰겠다”는 것이다.

종업원의 생계를 책임지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경영자로선 명백히 부적절한 선택이다. 그도 이 점에 대해서는 “종업원과 주주에게 빚을 졌다”고 인정했다. 이런 점에서 이 전 회장은 경영자로선 실격이다. 그는 벤처기업 경영자라기보다는 벤처경영 이론가라고나 할까? 이 전 회장은 “지금 돌이켜 보니 벤처정책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한 96년 무렵 회사 경영에서 물러났어야 했다”고 말했다.

메디슨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바로 2000년 초입이다. 99년 최고의 실적을 올린 이 전 회장은 곧바로 벤처연방제, 혹은 벤처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동종 업종의 기업에 투자해 시너지효과를 얻겠다는 전략이다. 당시 메디슨은 국내외 40여개 의료 관련 기업에 2000억원을 투자한 상태였다. 재벌 흉내를 낸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전망보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앞섰다. 모든 여건이 희망적이었다고나 할까. 이 전 회장은 “투자금액은 2000억원이었지만 주식평가액은 한때 1조5000억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메디슨이 몰락하기 시작한 시점은 회사의 전성기와 거의 같은 시기다. 2000년 5월부터 한국 벤처기업의 뿌리인 메디슨의 밑동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코스닥 거품이 걷히자 투자한 주식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벤처연방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위해 끌어다 쓴 부채가 문제가 됐다. 당시 한국신용정보는 메디슨의 회사채등급을 투자적격에서 투기등급으로 낮췄다. 다음달 한국기업평가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이 전 회장은 그러나 이때까지도 회사가 위기에 처한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처음 위기를 느낀 것은 코스닥시장이 폭락한 2000년 10월”이라고 회고했다. “그전까지 보유주식 시가총액이 1조원이었다”며 “불과 3000억원의 부채 때문에 회사 주식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는 “주변에서 해외로 도피하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위기설이 나오고 회사 직원들이 주식을 팔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었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주식을 팔지 않은 이유는 “국가경제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식을 내다 팔면 코스닥이 완전히 망가진다는 생각에 매각을 망설였다”는 것이다. 그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오랜 진리를 망각했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1차 부도가 나던 당일 오후 5시까지도 “부도가 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미 회사는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작년 10월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사실상 모든 업무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1차 부도 소식을 듣고도 그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주거래 은행으로 달려 갔다. 그러나 은행 관계자를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 지점에서 본점으로 보냈다는 지원결제 서류가 본점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은행에 대한 원망과 분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자식이 죽는 것을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그는 특히 주거래 은행에 대한 감정이 격한 상태다. “부도설이 나온 이후 약 2년간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위기가 불거진 이후 담보 없는 신용대출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도 다음날이 유상증자 주금 납입일로 200억원이 들어 올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또 한 제약회사와 소유 주식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주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란 이야기다.


● 단식하며 단학(丹學) 수련 시작

그러나 은행들은 은행들대로 곧 망할 기업인 메디슨에 대출을 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아야 했다. 당장 무너질 기업에 대출을 하면서 여신을 ‘정상’으로 분류해 놓았다는 지적이었다. 이 전 회장은 벤처기업인들에게 “차입경영을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민화 전 회장이 공동 저자로 집필에 참여한 한국벤처산업발전사 서문 마지막 구절은 “1, 2세대 벤처기업들은 후배 기업들과 예비 창업자들에게 훌륭한 교과서이며 희망”이라고 적고 있다. “선후배 기업 서로가 말 없이 가르치고 어깨 너머로 배우면서 한국 벤처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세대 벤처기업을 대표하는 메디슨과 이 전 회장은 더 이상 교과서와 희망일 수 없게 됐다. 이 전 회장은 교과서 대신 ‘교훈’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회사 위기 이후를 정리한 책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성공도 실패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이다. 또 책을 내지 못하더라도 내부 기록 형태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해 다른 벤처기업이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살아 남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은 “지난 15년간 회사를 꾸려 왔지만 현재는 개인 빚만 6억원이 남았고 개인재산은 사실상 한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2월 초 살고 있던 압구정동 집도 팔고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돈은 집을 담보로 잡고 있던 은행으로 돌아갔다. 비록 메디슨 주식 3%를 가지고 있지만 회사가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 가면 소각될 것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그가 곤궁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나이 50세가 되면 골프를 시작하겠다고 말해 왔는데 이제 나이 50이 되었다”며 “진짜로 골프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기업하는 후배들이 도와준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 IMF 경제위기 때 대여섯개 회사를 부도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고 한다. 당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거꾸로 그를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부도 전부터 해외 거대 의료기기 업체와 1000억원 규모의 제휴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간 2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내는 회사이기 때문에 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일단 타결에 성공하면 생존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 전 회장은 2월 16일부터 지방에 내려가 단식을 하며 단학(丹學)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정신적 공황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수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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