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닥에 관해서...

글쓴이
사색자
등록일
2002-08-30 03:38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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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한국에서는 주로 박사후과정이라고 불리는데 엄밀히 말하면 박사후"과정"이라고 불리는 것은 조금 오역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요.

어느 나라를 가봐도 최고 학위는 박사과정이고 그 후에는 엄연히 엔지니어/연구원/과학자입니다.
따라서 박사후과정이라고 불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우선 생각합니다.



둘째, 박사후연수라고도 하는데 이것도 개인적으로는 좀 잘못된 개념같네요. 박사과정에서 실제로 행하는 것은 깊은 지식의 습득이라는 것보다는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능력의 배양"이라고 봅니다.

이 의견은 저의 의견은 아니고 영국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게 되는 분위기입니다.
예전에 Prof. Hayhurst라는 사람이 이러더군요.

"영국은 수심 10미터짜리 풀장에 박사과정생을 데리고가서 그곳에 빠뜨려놓고 스스로 헤엄을 치도록 연습시키는 곳이다. 수영을 해서 풀장 밖으로 나오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해야할 일이지 남이 책임져줄 일이 아니다." [-_-; 못빠져나오면... ]

그래서 그런지 영국에서의 박사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 본인이 모든것을 책임져서 헤쳐 나갑니다. 지도교수와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지도교수가 어떤 답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드물고요.
이런 독특한 사고방식때문에 기본적으로 영국에서의 박사학위과정은 코스워크가 없습니다.
지도교수 혹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워야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박사를 한다는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철학때문인거 같습니다.

근래 미국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코스워크를 도입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코스워크의 비중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여하튼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능력"은 박사 학위를 받음으로써 인정받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사후에 또 연수를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한 "박사후 연수생"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셋째, 제가 가진 포닥의 개념은 직업연구원입니다. 돈을 받고 그 랩에 소속되어 연구를 수행해주는 전문연구원이라고 봅니다. 즉 직장인입니다.

박사후에 기업체 연구소에 가면 전문연구원 즉 직장인, 그런데 똑같은 학위를 가지고 대학 연구실로 가면 "박사후 연수생" 혹은 "박사후 과정생" 이라고 불리는 것이 좀 이상하다고 봅니다.

박사후에 기업체로 가든 대학으로 가든 엄연히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연구원"이라는 것은 동일한데 몸담고 있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과정의 연속을 의미하는 "연수생" 혹은 "과정생"이라고 불리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전 포닥을 대학에 소속된 엄연한 직장인이라고 봅니다.
미국같은 경우는 포닥 월급을 보스가 될 교수와 네고를 하지만 영국에서는 정해진 기준이 있어서 네고의 필요가 없습니다. 엄연한 스태프로 등록되고요.



넷째, 그런데 가끔가다 보면 좀 납득하기 힘든 분들을 만납니다.

이전에 포닥과정인 절친한 친구가 자신의 포닥생활은 좀 널널하다고 이야기하니깐...

자신은 새벽 몇시에 학교와서 다음날 새벽 몇시에 퇴근한다. 그러니 "국가망신"시키지말고 그렇게 널널히 일할려면 국내로 들어와라...당신같은 사람때문에 한국연구원 욕먹는다라고 흥분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솔직히 놀랬습니다. 만약 그렇게 닥달을 한 분이 제 친구가 "자기는 외국의 어디 회사에 다니는데 아침 9시에 출근해서 5시쯤 퇴근한다."라고 이야기했다면 또 다른 반응 즉 무시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소위 대학에서 포닥으로서 그러한 생활을 한다고 하니 굉장히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시더군요.
도대체 포닥은 직장인이 아닌 그 무엇이란 말인가요?


스스로 연구가 좋아서 혹은 포닥후에 한국에서 대학에 교수로 남고싶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하루에 밤 4시간 자는 사람이 엄연한 직장인에게 너는 왜 나같이 하루 4시간 자지 않냐고 닥달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자기만족을 위해 스스로 고행하는 사람이 남들에게 고행을 요구하는 것으로 들려서 꽤 씁쓸했습니다.

어차피 제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가 대학에 남고자 하는 욕심도 없고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정해진 시간내에서 일을 해준다는 -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질 않더군요. 말은 9 to 5이지만 실제로는 집까지 연구과제를 끌고옵니다. 이거 한국사람의 고질병입니다.-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런 시각은 같은 실험실의 영국포닥에게도 많이 보입니다. 보수는 좀 적지만 시간이 직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포닥을 마흔이 넘도록 하고 있는 앤드류도 있고, 영국인으로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고 생각했던 크리스도 그런 고행은 하지 않더군요.
다들 일할때는 일하고 그리고 근무시간 이후에는 자신의 시간을 가질려고 합니다.
뭐 제가 있는 랩이 좀 할렘같은 분위기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들에게 포닥이란 좀 자유스럽지만 unsecured job이라고 표현하던데요.




여러분은 포닥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밤잠 4시간만 자고 연구하는 그런 고행의 과정을 당연히 해야한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9 to 5의 직장인이라고 보십니까?
  • 사색자 ()

      영국에는 PEng라는 과정도 있던데 이게 어떤 과정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BSc말고 BEng라는 1년 더 하는 과정도 있고요. 혹시 PEng 과정을 아시는 분은 리플 달아주세요.

  • po닥 ()

      사실 연구실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사람이 일 더 많이하는 것은 아니죠. 9 to 5라도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쓰면 많은 일 할수 있고요, 단지 연구에 대해서만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가끔 그런 별종(80년대 초 중반학번? 중에 많음)들이 훈계를 하곤 하죠. 공사장에서 노가다하는것두 아니구.......사색자님께서 말씀하신 그런분들을 꽤 여럿 보았습니다.

  • po닥 ()

      새벽3~4시퇴근하고 하루에 3~4시간 자는게 자랑인지.......모르지만. 늘 책상에 앉아서 졸고, 자주 담배피러 나가고, 쓸데없는 노가리 풀고(자기자랑), 웹서핑....... 단지 가정에 적응못해서 연구실에서 시간 보내는걸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제 경험에 정말 연구에 미쳐서 새벽4시에 퇴근하고 철야하는 사람은 남 몇시에 퇴근하는지 신경안씁니다. 남 몇시에 퇴근하는거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한국에 돌아가면 그 밑에 직원이나 학생들한테 참 잘해주겠군요......--

  • 백수 ()

      저는 미국서 살아남기위해 주말에도 회사가고, 남들보다 늦게 남아서 책상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알던 한국 사람이 레이오프 당하는 것 봤습니다. 남이 봐주기를 기대하며, 오랜 시간 책상지킨다고 해서, 그거 봐주는 사람이 선진국에는 별로 없죠. 심하게 얘기하면, 페어 플레이가 아니거든요. 같은 시간을 일해서 나온 결과로 평가받는게 페어 플레이 아닌가요? 부모님이 항상 말씀하시길, 머리 나쁘면 수족이 고생이랍니다. 머리 나쁜 넘이 시간으로, 몸으로 때우려고 과학하는게 자랑아닙니다.

  • 김덕양 ()

      맞습니다. 개인적으로 보았을때도 지나친 시간투자는 크나큰 미래의 손해입니다. 적절하게 자기관리에 필요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주5일제라든지 9 to 5 를 지키는 대신 근무시간에 할수 있는 업무능률을 더 높이고 여가시간에는 업무와는 약간 동떨어지지만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는게 훨 낫습니다

  • 정문식 ()

      좋은 생각입니다. 과학은 '효율'과 '여유'를 가지고 하는 것이지, '노가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매사에 노가다를 강요하는 한국적 풍습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가 답보 상태에 빠져 있고, 국제적으로 뛰어난 학문이나 기술, 경영 기법이 나오지 않는 것도 '여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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