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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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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1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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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인생들의 불행한 행진
 
지만원 [www.systemclub.co.kr]


보다 좋은 학교, 보다 좋은 직장으로 치닫는 성공의 길은 불과 몇 개로 정해져 있다. 경기고, 서울대 그리고 삼성과 같은 대기업으로 연결되는 길이 가장 전형적인 출세의 길이다. 화려함의 상징 CEO의 길인 것이다. 꿈을 키우는 사람은 많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한국 기업문화에서는 절대로 훌륭한 CEO가 탄생하지 못한다.

가장 머리 좋다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곳이 바로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갓 까놓은 올챙이무리처럼 오글오글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이런 대기업이다.

"오글오글"하게 모여 사는 일류 인생들이 만든 문화는 창의력이 샘솟는 자유분방한 문화가 아니라 매우 애석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위축시키는 겨울 문화였다. 대기업일수록 그리고 질서가 있어 보이는 기업일수록 사람을 옥죄고 창의력을 얼어붙게 한다. 종국에는 두뇌를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 나약하게 만들어 용도가 폐기됐을 때 퇴출시킨다. 대기업에서 퇴출된 간부일수록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무력하다.

한국의 대기업 간부는 경영수업을 쌓으면서 늙어 가는 게 아니라 영하의 위축된 문화권에서 살아남는 기술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출세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 장군보다 공무원보다 더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이 대기업 간부다. 생존기술에서 쳐지는 일류인생들은 고압적 권위와 횡포 속에 인간공해를 받으며 겉늙어 가다가 이렇다 할 능력 없이 퇴출되어 비참한 모습으로 제2의 삶을 살아간다.

공무원들이 전부산하 조직에게 손끝만 가지고 지시하듯이 대기업에 입사한 사원들도 손끝만 가지고 하청업체에 지시한다. 지위가 오를수록 손끝으로만 일하는 자세가 굳어진다. 스스로는 브리핑 차트 하나 만들지 못하고 계획 하나 세우지 못한다. 장군이 사회에 나오면 무능하듯이 대기업 간부들도 사회에 나오면 무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왜 하필 이런 험난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인생을 처음부터 마라톤 경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인생을 처음부터 100미터 경주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한국판 일류 인생들이야말로 단거리 경쟁을 연속하며 세상을 폭 좁게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전이들이야말로 전술에는 성공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실패하는 인생이 아닐까.

한국 기업문화에서 훌륭한 경영 수업을 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무원 사회보다 더 경직돼 있는 곳이 바로 기업이요, 대통령보다 더 무소불위의 제왕적 횡포를 자행하는 이가 바로 한국의 오너들이다. 한국기업의 오너들은 제왕이지 경영인이 아니다. 조그만 중경기업에만 들어가 봐도 오너의 권위는 가히 황제라 할만 하다.

기업도 살고, 일류 인생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다. 기업의 민주화다. 지금처럼 노동자가 판치는 것은 민주화가 아니다. 시스템 속에서 자유분방한 기업문화를 가꾸는 것이 민주화다. 자유 분방함에서 창의력이 생기고 훌륭한 리더가 양성된다.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권위주의적 문화권에 길들여진 기업 간부들은 이러한 변화마저 거부한다. 스스로를 리더로 기를 수 있는 길,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길 모두를 거부하는 것이다.

리더십 이론에 의하면 권위형 리더는 업무 지향적(task oriented)이고 민주형 리더는 인간관계 지향적(human relationship oriented)이다. 한국 기업에서 민주형 리더를 찾기란 진디 밭에서 바늘을 찾아내기보다 더 어렵다. 거의 모두가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 권위주의적인 간부들이 업무 지향적인 권위형 리더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권위형 리더는 업무 지향적으로 리더십을 행사하지만 한국간부들에겐 리더십 자체가 없다. 이들에겐 업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권위만이 중요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리더 축에 끼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권위주의에 길든 게으른 사람들일 뿐이다. 인간공해, 직장공해는 바로 이런 사람들로부터 유발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원들은 직장 상사들을 리더로 보는 게 아니라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다.

인간공해는 경쟁심을 남달리 치열하게 길러온 일류대학 출신들이 몰려있는 일류기업, 대기업일수록 심각하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미남들이 입사하여 이러한 문화권에서 시달리다 보면 어느 새 겉늙어 보인다. 알게 모르게 속병이 든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 병균은 한국간부들에 만연해 있는 게으른 권위주의다. 권위주의가 합리주의를 퇴치하고 기업의 온갖 합병증을 유발한다.

소위 일류 기업이라는 곳일수록 권위주의가 만연해 있다. 숨이 막혀 곧 질식할 것만 같은 분위기, 살얼음을 딛는 것 같이 팽팽하게 얼어붙은 직장분위기가 바로 일류 인간들이 몰려있는 일류기업들이다. 이렇게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인고의 인내심을 가지고 곡예를 하고 있는 인생이 바로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택한 길이다.

학연 지연 등으로 얽혀진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난 권위주의는 곧 신분주의다. 학연, 지연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차별대우를 받는다. 기업 내의 인간 차별은 참으로 다양하다. 정규직원은 임시 고용직원을 경시하고, 원청 업체 직원은 하청업체 직원을 경시한다. 이론과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고정관념, 인습, 통념에 찌든 신분주의와 권위주위가 지배하는 사회다. 저마다 중요한 것은 권위이지 기업의 운명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기업을 병들게 하는 가장 큰 병균이 바로 이러한 신분주의요 권위주의다.

장점이 많은 몇 개의 제조업체가 있었다. 이들 중에는 열심히 일하고 명랑하며 예의가 바른 업체들도 있었다. 사무실과 화장실이 매우 깨끗이 유지되고 서로를 믿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매너들이 돋보이는 모범적인 회사도 있었다. 거의 모든 제품이 수출되고 빚도 없으며 오너의 너그러움과 판단력이 매우 돋보이는 기업도 있었다. 일류 고교와 일류 대학을 나온 수재형이 이끄는 기업들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한국 상위권에 속하는 그룹 기업들이다. 이렇게 훌륭해 보이는 기업에도 문제가 많았다. 수면 하에 흐르는 직원들의 불만을 집대성해 본다.

"대부분의 시간은 경영자들이 허송해버리고 작업자에게는 쥐꼬리만 시간을 내주면서 몰아친다". "업무의 스케쥴을 잘 못 짜서 아까운 낮 시간에는 할 일 없이 대기하라 해놓고 급해지면 야근을 시킨다". "문제나 애로를 말하라 하지만 말하면 손해만 본다". "토의를 해도 마음에 있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수천만 원, 수억 원 어치의 제품을 만들다가 설계 잘못이 발견되면 즉시 폐기해 버린다. 이런 일을 수없이 저지르면서도 오너에게는 철저하게 속인다".

"결재 때문에 일이 지연되고 일할 맛을 잃는다". "부장급 이상은 업무를 짚어주지도 못하면서 일할 기분만 상하게 만든다". "결재하고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만 그 보고는 자기 과시용 지식을 쌓기 위해서다. 보고를 받았으면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부장급 이상은 업무 진행에 방해만 된다. 부장급 이상의 간부들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

"신나면 철야를 해도 좋다. 하지만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각자 앞가림만 한다". "간부들이 부하를 따독거리지 않고 목에 힘만 준다". "부하직원이 무슨 일로 바쁜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작정 '이거부터 하라'고 닥달한다. 이럴 땐, 다 팽개치고 싶다".

"총무과가 상급 부서로 군림한다". "간부들은 지침도 안 주고 일거리만 던진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겨울에 노천에서 작업을 해 온지 오래 되었지만 사장은 관심조차 없다". "열심히 하고 싶어도 부장과 사장 때문에 일하기 싫다".

"아침마다 하는 회의는 1-2시간씩 걸리지만 시간 낭비다". "회의석상에서 얘기하면 핀잔만 듣기 때문에 얘기하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 "문제가 있어도 문제없다고 말하는 게 최고다. 나도 약게 살아야 한다". "어떨 때는 하루에 2회씩 회의를 하지만 회의는 언제나 일방적이고 강압적이다". "매일 아침 2시간은 무조건 대기시간(waiting time)이다. 대기 시간에도 일당은 나간다". "밀린 일을 하려면 야간작업, 밤샘작업으로 2-3배의 일당이 지출되지만 야간에 하는 작업에는 에러가 많이 난다. 야간작업은 투기 식으로 해버린다".

"제작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을 건의해도 공장장은 따져보지도 않고 재래식 방법만 일방적으로 고집한다". "건의를 싫어한다". "하청업체에 없어서는 안될 기술자가 있었다. 어쩌다 저지른 한번 실수를 가지고 본사의 간부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면서 당장 나가라고 해서 나갔다. 하청업체 사장을 세워놓고 그렇게 하면 사장은 무슨 권위로 일을 시키는가? 핵심 요원이 나가면 당장 일이 멈춰지고 다른 사람을 구해오는데 여러 날 걸린다. 그 동안 기계는 멈추고 비용이 나간다. 사람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간부가 회사를 위해 일한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본사의 간부는 황제다".

"품질관리(QC)요원 중에는 기피인물과 선호인물이 있다. 기피인물이 배당되면 재수가 없고, 선호인물이 오면 커피라도 사주고 싶다. 기피인물은 대기시간을 많이 만들지만 선호인물은 대기시간을 줄여 준다. 쓸 데 없이 오기를 부리는 품질관리 요원이 많다. 아침에 검사 신청을 해놓으면 통상 2-3시간은 대기해야 검사를 받는다. 대기시간이 곧 원가상승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간부가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신분차별 때문에 일할 맛을 잃는 경우가 하루에도 여러 번씩 있다. 원청 업체의 잘못으로 유발된 비용을 하청업체에게 몽땅 부과한다. 이는 횡포다". "지시 내용에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욕을 먹기 때문에 잘못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일방적 지시에 따르고 있다".

"사공이 너무 많다. 생산부장, 품질부장, 기술부장, 상무, 전무가 지시하는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누구 말에 따라야 할지 모르겠다". "문제가 생기면 빨리 풀어줄 생각은 않고 작업중지 명령(홀딩)부터 내린다. 1주일씩 홀딩을 걸어놓은 사례도 있다. 그 비용은 누가 물어야 하는가".

한국 최고 수준의 기술 집약적인 몇 개의 기업에서 일하는 일류대 출신들의 불만을 집대성해 본다. 이는 우리 나라 대표기업, 가장 신망을 받고 있는 삼성 그룹에도 만연해 있다. 말끔한 차림새에 겉으로 보기엔 질서정연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은 사뭇 다르다.

"회사에 정이 안 간다". "고객만족, 현장관리, 양질의 레포트 작성, 원가절감 등 실질적인 업적에 대해서는 따지고 평가하는 사람이 없는 반면 충성심, 애사심 등으로 포장한 약삭빠른 제스처가 인정받는다".

"내가 하는 말을 누군가가 고자질 할 것만 같다". "누군가에 의해 감시 받는 것만 같다". "누구에게 한마디 잘 못했다간 찍힌다". "동료도 없고 애사심도 없다". "특정 대학 출신만 대접받는다".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나갈 기회만 있으면 나가고 싶다 ". "앞으로 경쟁업체가 생기면 설사 연봉이 적더라도 스카웃에 응할 것이다".

"일하는 사람보다 관리하고 시키는 사람이 많다". "고급관리자가 왜 필요한가. 고위직 간부일수록 직원들에게 짐만 된다. 바람막이도 안 돼 주고, 위에서 떨어지는 일은 모두 그대로 던져만 준다". "고급 간부들은 최고경영자에게 할말도 제대로 못하고 밑의 분위기나 애로를 상달하는 기본적인 역할도 하지 않는다". "어느 간부를 한번 만날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 한번 상처를 받으면 며칠 간다. 그 간부가 부르면 그 순간부터 가슴이 뛴다", "대표이사가 말하면 반대로 하고 싶다. 대표가 나갔으면 좋겠다. 대표가 던지는 말마다 상처를 입는다".

이러한 문제들은 대기업일수록 그리고 일류대학교 출신들이 몰려 있는 곳일수록 증폭돼 있다. 일류 고등하고, 일류 대학에서 경쟁을 생활해 온 사람들이 일류 기업에 취직한다. 그리고 위와 같은 문화권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두뇌를 퇴화시키고 건강을 학대한다.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가정에 돌아와도 별로 행복하지 않다. 무엇 때문에 일류 고교, 일류대학, 일류 기업을 그토록 선호해왔는가.

문제가 없다던 최고경영자들에게 이러한 불만들을 알려주면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최고 경영자가 망하는 꼴을 보고 싶다는 적개심을 가진 고급 간부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최고 경영자는 반대로 그들을 신임하고 있다. 면전에서 좋은 말만 하고 굽실거리는 것을 리더십 효과라고 착각한 것이다.

어떤 최고 경영자는 열린 마음으로 듣겠다며 10-20명 단위로 직원들을 모아놓고 애로 및 건의 사항을 듣는다. 최고 경영자가 주최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역들도 배석을 한다. 어쩌다 순진한 직원이 건의와 애로 사항을 말하면 배석했던 중역들이 각기의 업무를 방어하기 위해 해명한다. 그 해명은 곧 핀잔이다. "아, 남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공연한 의협심을 발휘하다가 찍히기만 했잖아!".

말단 직원보다는 중역들을 중시하는 고정관념을 가진 최고경영자는 한술 더 떠 정신훈화를 하면서 끝을 맺는다. "할 마음만 있으면 못할 게 무엇 있느냐. 자료도 찾아보고 연구도 하고 남으로부터 배우기도 하면서 문제를 풀어야지, 본부가 어떻게 모든 직원들의 애로를 해결해 주겠느냐. 말들을 들어보니 모두 다 성의만 가지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더라. 정신이 틀렸다. 의식을 개혁해라".

미팅을 끝내고 돌아서는 직원들의 마음은 대화하기 전보다 더 싸늘해진다. 최고경영자와 중역들의 자세가 이러하기 대문에 본부 직원들은 외근 직원들을 얕보고 무시한다. 본부에 서류를 제출할 일이 있으면 우송하거나 아주 급한 문건이면 건물 밖에서 여직원을 불러내 문건만 전해주고 간다. 본부 사무실 분위기가 싫고, 본부 직원들 얼굴 보기가 싫다는 것이다.

이렇듯 생생한 사례를 들려줄 때에 부장, 중역, 최고경영자가 보이는 반응은 일단 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부의 이야기를 일반화하시는 것 아닙니까?", "설마 그럴 리 가요". 마치 자식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웃이 큰맘 먹고 알려주면 부정하고 덤비는 어머니의 심정 같은 것이라 할까. 그들에게 놀랍고 충격적인 이들 현실을 현실로 인정할 때까지는 상당한 절차와 시간이 걸린다.

그들이 모르는 것을 나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을 요한다. 환자가 의사의 실력과 양심을 믿고 따를 때까지 환자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 "저 양반, 우리가 뭘 이야기 해주면 무슨 뜻인지나 알까?", "저 양반한테 이야기했다가 공연히 뒤통수 맞는 게 아냐?", "이야기 해주면 효과가 있을까. 공연히 헛수고하는 게 아닐까?"

그들이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불만과 애로가 해소될까? 경영진과 직원들과의 불신의 골만 깊어진다. 직원들의 마음이다. "거봐, 저 사람들 바뀌어질 사람들이 아니라니까. 구제불능이야. 내 잇속만 차리면 그만이라구". 경영진의 마음이다. "저 친구들 굶어봐야 배부른 소리 안 할 거야".

평생 굳어온 고정관념, 권위주의, 무능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더러는 의식을 고치면 될 수 있다고 믿지만 이들의 의식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이들은 스스로의 변하려 하기보다는 그들을 방어하는 데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이제까지 잘 돼 오지 않았습니까? 컨설턴트의 제안은 현실감이 없습니다". 시스템 발전의 가장 큰 저항세력은 바로 부장급 이상의 간부들인 것이다.

한국 시장에 외국상품들이 들어온다. 아무리 큰 홍수가 나도 계곡 물이 바다에 이르려면 시간이 걸린다. 우리기업들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외국 상품이 흘러 들어오는 속도 때문이지, 경쟁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200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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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로 얼어붙은 기업 문화
 
지만원 [www.systemclub.co.kr]


한국 대부분의 기업에는 군대보다 더 엄하고 경직된 통제문화가 심어져 있다. 대기업일수록 그리고 일류기업일수록 더하다. 대기업의 회장은 명실 공히 황제다. 대통령이 공무원에 갖는 위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게 회장의 위세다. 분석이나 토의 보다 더 권위 있는 것이 회장의 직관이다. 회장이 직관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전근대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후진 문화권에서 출세하는 길은 황제의 통치(?) 스타일을 모방하여 회장의 신임을 얻는 길이다. "예, 회장님, 문제없습니다. 신명을 다해 받들겠습니다". 결국 회장의 통치 스타일를 흉내내서 복잡한 말을 삼가면서 시원시원한 말솜씨로 윗사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이들이 승진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간부들이 토의와 분석이라는 골치 아픈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의 간판기업들이 이제까지 잘 견뎌온 것은 합리성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직원들의 피를 말리는 전근대적 통제방법에 의한 것이라고 나는 진단한다. 삼성을 말할 때 많은 이들은 치밀하게 짜여진 통제 시스템을 말한다. 소수의 엘리트가 기획하면 나머지는 열성 적으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는 1940년대 성행하던 미국의 테일러리즘으로 당시의 포드 자동차와 같이 자동화된 대규모 장치산업에서나 한 때 어울릴 수 있는 문화였다.

삼성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하관계가 군대보다 더 엄밀하고 상하 측방간의 의사소통이 거의 막혀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외모, 행동, 사고 방식이 매
우 경직돼 있고, 직장분위기가 살얼음판이다. 이러한 사회, 즉 삼성과 같은 사회를 우리는 Theory-X 사회라고 말한다.

Theory-X란 성악설을 근본으로 하는 경영 철학이다. 인간은 원래 나태하고 사악한 본질이 있기 때문에 모든 행동을 통제하고 간섭하면서 당근과 채찍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권에서는 "절대로" 창의력이 자랄 수 없으며, 창의력을 훈련하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로 훌륭한 경영인이 될 수 없다.

수많은 관찰을 통해 나는 감히 단언한다. 대기업에서 중역으로 출세했던 사람에게 작은 공장 하나를 맡겨주면 어떻게 경영할까. 거의 다 경영상식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경영을 하다가 부하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이다. 이는 대기업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기업에 상당한 문제들이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기 위해서이다.

Theory-Y 사회가 있다. 성선설을 근본으로 하는 경영 철학이다. 인간은 자아실 현(self esteem) 동기(motivation)를 가지고 있으며 남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격을 존중해야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믿는 이론이다. 목표를 확실하게 정해주고(MBO), 목표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는 각자에게 맡겨주자는 경영철학이다.

일본에서 자라난 Theory-Z는 인간능력을 계발시키고, 인본주의에 입각하여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면 그 계발된 인간 능력을 가지고 품질과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경영 경영철학이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우리 땅에 있는 거의 모든 대기업에는 이러한 경영철학이 실현되고 있지 않다. 경영철학의 변화 없이는 아무리 큰 대기업, 아무리 한국에서 잘 나가는 기업이라 해도 불과 5년의 미래를 보장받지 못할 것으로 본다.

자유가 있어야 창의력이 있고, 애사심도 생기며 능동적이게 된다. 창의력이 자라지 않으면 벤처일 수도 없고, 선진 기업일 수도 없다. 창의력은 자유롭게 일하게 하는 분위기, "일의 질"을 알아주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다. 자유만 주고, 일의 질을 평가할 줄 모르면 자유방임과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진다. 지식경영이란 바로 자유와 평가의
결합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적 경영시스템은 사람을 감시하고 옭아매는 것을 기본 철학으로 한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윗자리에 앉았다 하면 옭아매고 통제할 궁리부터 한다. 개선을 위한 연구를 시켜보면 그 개선 안에는 언제나 더 많은 통제 수단이 들어 있다. 통제 마인드 때문에 일하는 사람보다 통제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피라미드 조직이 사라지지 못하는 것이다. 통제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기업 이윤이 2분의 1배, 4분의 1배 식으로 경감한다는 사실을 아는 경영자는 한국에 그리 많지 않다.

어느 기업이 자체 공장을 가지고 있었다. 근로자들은 사장의 눈을 슬 슬 피해가면서 적당히 일했고 해달라는 요구사항도 많았다. 그래서 최고 경영자는 중간관리자들을 더 많이 배치하고 근로자들을 감시했다. 영악한 근로자들은 감시하면 할수록 더 교묘한 방법을 찾아내 적당히 일했다.

최고경영자는 공장 제1주의론자였다. 공장이 제1이고 나머지 부서는 모두 지원부서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컨설턴트는 공장과 설계부서 모두를 독립시켜 모든 주문을 외주로 처리하라고 조언했으니 수긍할 리 없었다. 어느 날 그 최고경영자는 무슨 영감을 얻었는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공장과 설계부서를 독립시켜 내보냈다. 물론 회사 장비는 임대로 주었다. 다른 회사의 일감도 맡으라고 했다.

그 다음부터 근로자의 자세가 달라졌다. 경쟁과 동기유발 요소가 근로자의 자세를 바꾼 것이다. "이렇게 편하고 좋은 것을 가지고 왜 그 동안 골치아프게 품안에 끌어안고 그 고생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네 요사이 사무실에 잘 안보여", "출장은 무엇 하러 가게", "자네는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나?". 모든 것을 자기 품속에 끌어안고 행동 하나 하나를 간섭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일일이 지적하면 모든 직원들의 마음이 토라진다. 일류고교, 일류대학교, 일류대기업을 거친 CEO들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는 간섭들이다.

패러다임(틀)을 바꿔야 한다. 시스템을 만들고 시스템이 사람을 통제해야 한다. 간부는 통제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너지를 내기 위한 촉진자여야 한다. 결재를 하고 고과점수를 메기는 자리가 아니라 사적 모임의 총무직 같은 것이어야 한다. 토의의 천재가 곧 경영의 천재다. 가장 훌륭한 리더는 무관의 리더다. 직위가 없어도 사람을 따르게 하고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훌륭한 CEO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간부들이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영하의 분위기는 한국 기업에서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능력이 없을수록 부하를 멀리하고 싶어진다. 부하를 멀리 하는 방법은 목에 힘을 주고 분위기를 차갑게 만든다. 권위주의는 곧 무능과 무식의 대명사인 것이다.

2001. 12. 25 
 
 
  • 송세령 ()

      정말 딱이군요. 딱.. 이렇게 공감이 올수가...

  • 배성원 ()

      허허..기업체 연구소 계신 분이군요. 그때가 아련히 아픔으로 떠오릅니다.

  • 연구원 ()

      정부출연연구소도 똑같은 분위기입니다. -_-;;

  • 김정한 ()

      박수!!! 짝짝 짝 짝짝! 망할놈의 나라 그래도 좋다고 대한민국 목이 터져라 외치고...불쌍한 민초들...나도 축구나 할 걸 그랬나? 하긴, 축구도 힘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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