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와 보부상[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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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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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4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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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보부상의 진정한 후예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다. 모름지기 경제학 공부 16년에 시간강사 경력 10여년이면 '시간강사'와 관련된 반풍월쯤은 그다지 허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의 진의가 왜곡되어 선배, 동료, 후배 강사님들께 누가 되지 않을까 두려울 따름이다.

  '시간강사 문제'가 사회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래 전에 시간강사를 경험하신 분들의 애환이 없었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다만 경제학적으로 보면 '시간강사 문제'는 이른바 박사 실업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1980년대 말부터 교수직 수요(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실제로 교수채용을 할 의사가 있는 유효수요)에 대한 공급과잉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회화 되었다. 이 때부터 매스컴에서도 이 문제를 약간씩 다루기 시작했다.

  6-7년 전 모 TV방송국에서 시간강사의 애환(?)을 단편 드라마로 방영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 역시 신참 동업자로서 관심을 가지고 보았었다. 드라마의 대강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온 자식이 결혼하여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데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대학에 강의를 나간다고 하니 시간강사가 곧 교수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의 환갑연을 해 드리기 위해 그 시간강사의 부부가 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은 그들의 폐물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인 시간강사가 겪은 경험들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약간의 신파조가 섞인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역시 매스컴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 드라마가 방영된 후 그 때까지 내막을 전혀 몰랐던 일반시민들 조차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이 사회로부터 푸대접받는 가장 불완전한 취업 층임을 알게 되었다(그러나 공식적으로 노동부 통계상 시간강사는 '일용잡직'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의 방영이 시간강사들에게 돌려 준 대가는 부담스런 동정의 눈길이었다. 실제로 필자 역시 드라마 방영 후 고향에 내려갔더니 연로하신 부모님과 친지들이 '시간강사들이 얼마나 어려운 형편인지 드라마를 보고 알았다'고 하시면서 금일봉의 '향토격려금'을 책가방 속에 몰래 넣어 주셨던 적이 있다.

  그 때 필자는 처음으로 드라마를 방영한 방송국을 원망하였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시간강사 생활의 치부를 스스로 발설하는 것은 누워서 침밷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정작 당사자들은 가만있는데 공연히 남의 치부를 건드려 근본적인 해결책도 없으면서 세간의 동정이나 받게 한 그들이 얄미웠다. 마치 오뉴월 뙤약볕에 알몸뚱이로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하루빨리 박사학위를 받아 이 암울한 늪지대에서 탈출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다. 그와 함께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기도 했다. '학문의 길은 원래 형극의 길이야', '시간강사 생활은 학자가 되기 위한 필수과정이자 과도기적인 과정일 뿐이야' 등등의 독백으로. 나아가 같은 시간강사이면서도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박사학위를 받고도 시간강사 생활을 하는 선배들과 자신을 차별 화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의 미래는 드라마의 주인공과 다를 것이라고 확신에 가까운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6-7년이 지난 현재는 여러 가지 통로로 시간강사의 치부는 외화 되었고, 알 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알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요즈음 수강생들 가운데는 약삭빠르게 시간강사와 전임교수를 구분하여 '교수님'이란 호칭 대신에 '강사님'이라 부르는 야속한(?) 친구들도 있다. 최근 모 방송국 드라마에서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자식이 취업을 못하여 도배보조공이나 날품팔이를 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과거 같으면 부끄럽거나 분노의 감정이 일었을 터인데 요즈음은 이러한 장면들을 목격해도 그다지 감정의 동요가 없다. 왜 그럴까? 바로 그런 상황을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도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박사학위를 받은 지도 어느덧 만 3년이 되어 간다. 필자의 기억으론 그 무렵 모 월간지에서 가명으로 발표된 어느 시간강사의 '박사학위증을 반납하고 싶습니다'라는 구구절절한 사연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취직을 하려 해도 박사학위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 때문에 생산직 분야에서조차 위장취업자로 오인하여 반려하더라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비록 가명이긴 하지만 시간강사 신분으로 스스로의 치부를 밝힌 최초의 글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구차한 사정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가명으로 실을 수밖에 없었을까? 그 당시만 해도 그간의 사정이 약간 이해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떳떳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필자가 이러한 글을 쓰려고 하니 그분의 가명기고가 한층 이해된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그 후 학술적인 차원에서 논문형식으로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한 두편의 글이 발표된 적도 있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대학원에서 조교와 시간강사의 생활을 영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간강사의 문제를 사회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나 노력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이에 대한 해답은 단지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속담에서 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전국시간강사노동조합에서 시간강사들의 글들을 묶어서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였다 한다. 아직 어떠한 내용의 글들이 실렸는지 읽어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읽게 되겠지만 현재의 심정으론 별로 읽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필자의 지난날들을 별로 회상하고 싶지 않다는 점과 '성공담' 보다는 '좌절담'이 주류를 차지할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 '전공은 못 속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필자 역시 그 동안 경제학을 전공한 탓으로 시간강사의 실태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해 보고 싶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무슨 대단한 경제이론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경제논리를 전개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럴 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만한 주제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 경제학 강의를 하는 과정에서 경제용어나 경제이론들을 설명하는 데 이해를 돕기 위해 현실적 예로 들었거나 들고 싶었던 것들을 쉽게 나열해 보고자 한다. 그 가운데 첫 번째 예가 바로 보부상(褓負商)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시간강사들끼리는 스스로를 일컬어 '보따리 장사'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얼핏들으면 비속한 표현으로 들릴지 몰라도 곱씹어 보면 시간강사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데 이 보다 더 정확한 어구도 없는 것 같다. 왜 그럴까?

  필자는 유년시절을 산골마을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호롱불을 밝히고 살았을 정도로 낙후된 농촌이었다. 이 당시 우리동네를 찾아 온 몇몇 부류의 장사꾼들이 있었다. 자기 신체보다도 더 큰 보따리를 이고 지고 찾아오는 옷장수나 생선장수 아주머니, 지게나 리어카에 엿판을 얹고 고물을 수집하는 엿장수 아저씨, 자전거에 아이스케끼를 싣고 어린이들을 유혹하는 아이스케끼장수 총각이 그들이다. 대학에 들어와 이들과 관련된 좀더 유식한 용어를 배웠는데 그들이 다름 아닌 조선시대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보부상의 후예였다.

  조선시대에 국내시장 곳곳을 누비고 다니던 보부상들은 상품유통의 첨병이자 중개자였다. 나아가 보부상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상품유통에 그치지 않고 타 지역의 풍습과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기도 했다. 이처럼 전국을 누비는 보부상의 숫자도 엄청났기에 자연스럽게 그들끼리의 조직이 생겼고 상부조직의 상권은 막강하였다. 구한말이나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국내시장에서의 역할은 매우 컸다.

  그러나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적어도 1970년대 초에 이르면 필자의 고향과 같은 낙후된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보부상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도시에는 상설시장이 열렸고 왠만한 시골에도 버스가 들어왔으며, '점방'이 생겼다. 그리하여 보부상에 의존하던 생필품 구입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줄어만 갔다. 현대에는 농촌과 도시 어디에도 과거와 같은 보부상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약간의 변형된 형태로 리어카나 소형트럭으로 마이크 방송을 하면서 골목을 누비는 과일장수, 계란장수, 화장지 장수 그리고 구청의 단속반원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노점행상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머리와 어깨에 의존하던 상품 보따리가 리어카나 트럭에 의존하게 되었고, 목소리나 가위에 의존하던 호객행위가 녹음테이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보부상들은 상권을 상당정도 장악하고 있었음에 반해 현대의 보부상의 후예들은 그러한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그리고 현대의 변형된 보부상 후예들인 야채행상이나 노점상들은 과거의 보부상에 비해 행동반경이 상당히 좁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비록 외형적으로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현대판 보부상의 적자(適者)는 오히려 시간강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시대의 상업조직을 개괄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의 국내 상업조직은 대개 시전상인(市廛商人) 조직, 난전상인(亂廛商人) 조직, 보부상 조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전상인은 쉽게 표현하여 왕실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아서 물자를 유통하는 상인이고, 난전상인 조직은 비인가 상행위를 하는 상인이며, 보부상은 그야말로 보따리를 이고 지고 다니는  상인이다. 시전상인 가운데에도 오늘날의 조달청처럼 왕실에서 직접적으로 수요하는 물자를 독점 공급하는 육의전(六矣廛)이 있었다. 이들 상인형태를 오늘날의 대학사회 및 연구집단에 비유해 보자. 육의전의 상인은 국공립대학교의 교수와 비견되고, 시전상인은 사립대학의 교수와 비견되며, 난전상인은 국책 및 민간연구소의 연구(위)원에 비견되고, 보부상은 시간강사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가난한 보부상들은 기회만 있으면 대부분 자기 인생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짐보따리를 벗어 던지고 상부조직으로 올라가거나 난전상인, 시전상인, 육의전 상인이 되고 파 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를 포착하는 보부상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역맛살을 핑계로 일평생을 떠돌아다닌다. 몇 백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이만큼 유사한 조직형태를 찾기는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은 말쑥한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그럴듯한 가죽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러나 보따리를 끌러 놓고 하는 행위는 '지식'이란 서비스 상품 대신에 '생필품'이란 상품을 판매하는 조선시대의 보부상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시간강사의 책가방은 보부상의 보따리요, 시간강사의 가방 끈은 보부상의 멜빵이다. 책가방 속의 책들의 종류는 보상(褓商)의 머리에 인 옷 꾸러미(모시, 삼베, 무명 등)와 부상(負商)이 짊어진 생선 꾸러미(명태, 오징어, 간 고등어, 꽁치 등)와 하등 다를 바 없다. 시간강사들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는 생활용품이 아니라 영업용 생산수단이라는 점에서 보부상의 봇짐에 매달린 짚신과 다르지 않다. 시간강사는 강의여건이 허락되면 전국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부상의 진정한 후예라 할 수 있다. 최근 서울에서 지방까지 열차나 비행기를 이용해 출강하는 시간강사를 만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시간강사가 강의를 자주 출강하는 대학과 학과는 바로 보부상이 단골로 출입하는 촌락이자 가옥인 것이다. 시간강사가 강의를 나가는 대학의 학과장님은 보부상이 다니던 촌락의 촌장님이고, 수강생들은 동네의 아낙이자 꼬마들이다. 시간강사가 출강하는 대학의 학과사무실은 보부상이 들러 보는 여염집 툇마루요, 친분이 있는 교수님 연구실은 단골집 안방이다. 간혹 어떤 대학에는 강사휴게실이 있는데 문이 열려 있으면 촌락 어귀의 느티나무요, 문이 잠겨져 있으면 성황당이다.

  시간강사의 강의 내용과 학점은 보부상이 내놓은 상품의 질과 상품가격이다. 상품의 질이 신통치 않거나 가격이 비싸면 잘 팔리지 않듯이 강의 내용이 부실하거나 학점이 짜면 다음학기 강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보부상들은 어느 촌락에 어떤 물건이 수요될 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의 옷보따리와 생선보자기에는 다양한 크기와 질의 옷과 어물이 뒤죽박죽으로 가득 들어 있다. 시간강사의 책보따리에도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과목의 책들이 들어 있다. 시간강사는 전공과목만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학과에서 원하는 과목, 학과에서 전공과목 교수가 없는 과목을 강의해야 한다.

  한편 시간강사의 강의 주기는 학기제이다. 쉽게 표현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5개월 여는 휴업을 비자발적으로 한다. 보부상 역시 1년에 두어 번 정도 남북을 오가면서 자기 집에 들려 처자식을 만나고 정처없이 방방곡곡을 이잡듯이 헤매고 다닌다. 조선시대 보부상이 국내시장에서 상품유통에 기여한 바가 지대했듯이 대학에서 시간강사가 맡고 있는 강좌 수는 거의 절반을 넘고 있다고 한다. 다소 억지 춘향 식의 비유도 있었으나 이만하면 오늘날의 시간강사가 조선시대 보부상 즉 보따리 장사의 진정한 후예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판 보부상인 시간강사가 전통적인 보부상과 마냥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상이한 점 몇 가지만 지적해 보자. 전국에 약 3만 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시간강사 가운데 전업 시간강사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앞에서 보부상과 비유한 시간강사의 전형은 물론 전업 시간강사이다. 이들은 완전한 불안정취업층이다. 보부상에는 강한 상부조직이 있었다. 시간강사 역시 현재 전국시간강사노동조합이 있으나 그 영향력은 보부상의 상부조직에 비하면 매우 미약하다 하겠다. 그 까닭은 짐작건대 대부분의 시간강사들이 자신의 생활을 과도기적인 과정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 보다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부상은 상행위 자체가 곧 그들의 생업이지만 시간강사의 경우 강의는 생업의 일부이고 나머지 시간을 논문작성에 투여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보부상은 자영상인에 속하지만 시간강사는 적어도 파리 목숨보다 긴 한 학기 동안은 대학에 고용된, 그러나 신분보장이 전혀 되지 않는 지식노동자라는 점이다. 보부상은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하층민이었다. 그런데 시간강사는 사회적으로 지식인층이면서 경제적으로 하층민이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강사가 보부상의 진정한 후예임을 밝히는 결정적인 증거 두 가지를 예시하고 한다. 현대의 시간강사 생활은 과거처럼 단순히 과도기적인 생활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보부상들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보부상으로 일생을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듯이 현대의 시간강사 생활기간 역시 장기간이며 그 종점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수주 전 전공분야 연구차 모 자동차회사 노동조합을 방문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노동조합 사무국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필자는 "실례지만 귀 조합원의 평균임금이 얼마입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대답인 즉 "평균근속연수가 8.1년이고 생산직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202만원입니다" 였다. 함께 동행했던 후배강사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야, 이거 시간강사 집어치우고 어떻게 여기 취직할 수 없을까요"라고. 돌아오는 길에 승용차 안에서 시간강사 10년 경력인 스스로와 비교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경제적 최빈층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결론은 "그래, 나는 보부상의 진정한 후예야" 였다. '남의 눈에 가시 찔린 것은 보여도 자기 눈에 대들보 박힌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냉혹한 자본의 논리를 수없이 배웠고 또 강의해 왔다. 그러나 스스로가 경제적 최하층이었던 보부상의 진정한 후예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무려 16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 글은 1996. 6. 『대구·경북 지역동향』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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