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어느 장기 파견 연구원이 본 미국과 보스톤

글쓴이
배성원
등록일
2003-01-2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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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시지요.

실적보고서도 끝났을 것이고, 이제 과제평가만 잘 받으면 되겠군요.
이제 보스톤에 온지도 5개월이 지났고, 설날도 머지않아 다가오고 하여, 이것저것 저의 일상과 이곳 생활에서 느낀점을 적어 보내드립니다.

여기도, 이런저런 일로 한가하지 만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한가하게 있게 내벼려 두지를 않는 듯 합니다. 지난주와 이번주는 매일 회의에 세미나에 연구소 숙제도 있었고 연일 정신이 없었지요. 어제도 종일 High BU Fuel Colloquium에서 공부하고, 오늘은 겨우 약간의 여유를 되찾아 점심 먹으며 한자 적어 올립니다. 그러나, 이 곳이 아무리 바쁘다하더라도, 한국만큼 이야 하겠습니까? 퇴근은 늦어도 6시에는 하니 말입니다. 저의 거처가 보스톤에서 약 1시간 10분 (대중교통 이용, 지하철-버스) 정도 걸리고, 버스 막차가 지하철 종점에서 오후 6시 30분이어서 어찌되었던 이를 타야하지요.

이 곳은 요즘 100년 만의 추위라고 할 정도로 강추위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부터 눈이 오는 등 심상치 않더니, 지난 2주간 온도가 0도 근방에서 계속 놀다가 급기야는 어제 밤 영하로 곤두박질을 치더군요(물론 온도는 화씨입니다). 물론 카나다나 이런 오지에 계시던 분들 보다는 덜하겠지만, 제 평생에 이런 추위는 처음인 듯 합니다. 특히, 아침 출근 길 버스정류장에서의 추위는 끔직합니다. 모자쓰고, 귀마개(이는 초등학교 시절 해보고 다시 처음 해보는 것이지요)하고 방한복 입어도 발밑에서 그리고 옷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추위는 장난이 아닙니다. 게다가, 촌구석에 살다보니 이놈의 버스 오는 시간이 -2분 - 20분 정도로 오락가락하여, 매일 아침 통상 10-15분 정도는 방한 극기훈련을 하고 있지요.
그래도, 이 많은 눈, 강추위에도 별 문제없이 보스톤 지역의 안정이 유지되는 것에는 경이감 조차 드는 적이 많습니다. 수차례의 폭설에도 교통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으며, 강추위에도 얼어죽는 노숙자는 아직은 없는 듯 합니다. 관공서 및 자원봉사자 들이(이는 가진자의 여유라기 보다는 상당히 힘드는 일입니다) 밤새워 눈을 치우고, 길거리를 다니며 노숙자에게 담요 제공하고 잠자리 제공하고, 요즘 이라크 전쟁 운운하는 오만방자한 자들은 모두 워싱톤에만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번 보스톤 생활에서는 과거의 미국생활과는 달리 부정적인 점보다는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상당히 보고 느낄 수 있는 듯 합니다. 보스톤이 미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고, 미국 역사를 이끌어나가는 인재를 생산하는 교육의 심장부라서 그러한 지 이 곳은 미국의 저력과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한 점은 제가 대중교통의 이용하면서 더욱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지하철, 버스에서 항상 열심히 무엇인가를 읽습니다. 더욱이, 이들 중 거의 반수는 전공 책을 읽으며, 심지어는 머리 허연 할아버지가 미.적분 방정식을 풀고 있거나, 노트북으로 일하는 사람도 왕왕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 중 많은 사람은 교수 또는 학생으로 보입니다만,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요. 진정한 미국의 힘은 이러한 끊임 없는 노력과 교육 의지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옛말에 약하면서 강한자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강한자는 태만하나 약자는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만, 강자가 이리 할진데 약하면서도 노력을 않는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MIT에 대한 느낌도 마찬가지 입니다. MIT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MIT의 저력이 이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솔직히 MIT의 첫 인상은 기대 이하였지요. MIT는 소위 일반 학계에서 선호하는 기초 기반연구(저도 마찬가지 입니다만)에는 별 관심이 없고, 소위, 연구자들이 3D 업종으로 보는 Engineering 연구와 Analysis 등을 우선하더군요. 재미있는 예가 INEEL은 RELAP 코드를 개발하고, MIT는 이를 사용하여 신개념 계통 설계를 하지요. 다시말해서, MIT는 미국내 Engineering Research의 선두주자로의 위상 확보를 기치로, 소위 신개념의 개발 즉 신형 원자로, 계통, 연료의 개발 등에 주로 매진하고 있습니다. MIT의 혹자는 '활용되지 않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다'라고 주장할 정도지요. 물론, MIT에서도 실험 등 검증연구도 상당히 수행됩니다만, 이는 신개념 분야에만 국한되고 있는 듯 합니다. MIT와 같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이들은 자신의 연구를 Zero-Base에서 출발함으로써 결과물에 자신의 혼을 불어 넣는 듯합니다. 물론 기존의 많은 연구결과를 참고하고 활용 하나, 자신만의 독창성을 불어 넣습니다. 예를 들어 ?! 牟Х? 물질의 선정은 U, Th, Pu 등 fissile 물질과 주기율표에 있는 모든 원소를 결합하여 핵적, 기계적 특성 분석을 통하여 선정하며, 핵연료 모양도 온갖 제원, 형태를 다 따져 결정합니다. 물론 새로운 물질에 대하여는 계산도구도 정확하지 않고 database가 없는 경우도 있으나, 엄청난 자료조사와 가정 및 모델링을 통하여 이를 극복합니다. 이것이 이들의 노력을 통상적인 Engineering 해석이 아닌, 연구로 승화시키는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반하여, 우리의 연구는 성공적인 연구결과의 생산에 너무 큰 중요도를 두고 실패에 대한 관대함도 없으므로, risk-safe, conservative 한 형태의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연구의 자유도 및 창조성을 스스로 낮추고 있다는 반성도 하여 봅니다.
어찌되었던, 이들의 주장과 노력의 결실이 미국내에서는 상당히 먹히는 듯하며, 산.연에서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는 듯합니다. 소위 창조적인 교수와 학생의 조합과 노력, 그리고 엄청난 자료와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서관이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낼수 있게 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또한 중요한 것은 MIT 교수들의 역할입니다. MIT 교수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일중독자' 입니다. 물론 학생들도 똑똑하고 잘 부리지만, 자신들도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기술적, 행정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해내기 그들이 들이는 노력과 시간은 대단한 듯 합니다.
MIT가 이러한 기치로 연구를 수행하고 결과물을 생산하니, 저라도 마찬가지 겠습니다만, 미국내 산.연에서 가장 선호하는 학교가 MIT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듯 합니다. 산.연에서는 MIT 출신 학생들도 거의 보증수표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니, 미국내 산.연은 MIT에 프로젝트를 주기 위하여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인력 확보도 되지요) 상당한 노력을 합니다. MIT 교수가 출장을 다니면서 프로젝트를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미국내 기술뿐더러 management 핵심부에 MIT 출신 들이 배치되어 있는 점도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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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팀 책임으로 계시다가 잠깐 MIT에 파견중이신 한 정출연 연구원의 미국 단상입니다. 원자력 관계된 일을 하고 계셔서 fissile material등에 대한 이야기나 계통(원자력계에서 유체 순환 루프를 이르는 용어)이야기가 나오지만 모르더라도 내용상 별 무리는 없을 듯..
참고로, 이분은 지금 거의 50에 가까운 분이십니다.
..

  • 소요유 ()

      흠~  이분도 그 차이를 느낄 정도로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 존경스럽습니다. 사실 제 연구소를 보아도 50이전 즉 70년대 중반 학번 이후에 공부한 분들은 그래도 말이 통하더군요.  우리도 차차 좀 나아지겠지요. 아마 나아지는 순서는 기업연구소-정출연-대학 이렇게 되겠지만말이죠.  MIT인 경우는 프로젝트 사정이 좀 나을테니까 교수가 많아 나서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 분야에서 보면 팀 리더의 일은 일의 반이상이 '정치'더군요.  우리와 다를 점은  프로포잘을 직접 쓴다는 점입니다. 아랫것들에게 안맡기고요. 

  • 배성원 ()

      저희 연구소는 팀 리더들이 거의 직접 씁니다. 부럽지요? ...다만 파트별로 맡겨진 일에 대해 중간 보고나 결과보고, 실적보고는 각자 쓰지요. .. 저도 학교있을땐 오히려 지금보다 더 많이 썼더랬습니다.

  • 배성원 ()

      MIT의 저런 친 기업적 과제수행 자세가 오늘날 MIT를 있게한 가장 큰 강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MIT 교수들...물론 힘들겠지만 그만큼 보수또한 빠방합니다. 미국내 교수의 연봉수준을 선도하지요.^^

  • EE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저희 연구원에도 얼마전 MIT 기계공학과 서남표 교수님 강연이 있었읍니다. 저 역시 그런 느낌들을 받았읍니다. 우리의 교수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낌니다. 학생 지도에 열정적이고, 일벌레.. 한국에서 그런 부류의 교수님들은 과제따기 힘들죠. 혼자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다른 담합한 교수 그룹에 끼지 못하면 과제에서도 왕따를 당하곤 하니 말이죠. 왜 한국에서는 열심히 하는 교수님들이 왕따를 당하실까요?

  • 배성원 ()

      패거리 문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을거 같습니다. 요즘 제 모교에도 불미한 일이 생겼는데....여자들에게서 패거리 문화가 더 심한 것 같기도 하고요.....^^;

  • 공대생 ()

      혹시 P공대이십니까? --;

  • 임호랑 ()

      MIT의 학풍은 한마디로 실사구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지... 그리고, 공대하면 이미 나와있는 이론을 적용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MIT의 경우처럼 Engineering Research 즉, 새로운 이론이나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 공학의 핵심이라는 것, 즉 창조하고 발견하고 발명하는 것 모두가 공학의 핵심이지, 발견이 공학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앞선 공학을 할 수 없다는 것, 또 하나는 사회에서 버림받는 기술은 기술이 아니라고 보는 냉철하고도 현실주의적인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이것은 다분히 미국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공학이든 과학이든 사회와 유리된, 상아탑에서는 건전하고도 현실적인 연구개발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MIT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 ()

      노벨상을 가장 많이 타는 대학들이 추운곳에 있다는게 흥미롭네요.(MIT,하바드:보스톤, 시카고:시카고) 날씨가 춥다보니 모세혈관 말단에까지 피가 가게 되고(머리가 식으면 안 되니 더욱 그렇게끔 되겠죠..) 그 결과 두뇌활동이 원활한 것 아닐까요. 대체로 동양인,서양인,흑인순으로 지능이 높다는데 이는 말단혈압의 순서와 일치하기도 하며 빙하기를 거치며 인간의 지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는(결국엔 도태와 자연선택에 의해서였겠지만) 사실도 뒷받침해주네요. 그렇다면 언젠가 통일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은 중강진이나 개마고원에? 후후..

  • 포동이 ()

      오래간만에 가슴이 후려해지는 글이군요. 미국사회의 대학과 정부, 기업이 연결되는 시스템은 두말할것도 없고 이미 교수진들이 연구에 들이는 공이라니 부럽네요. 학과일과 로비하느라 시간없다고 논문한장 안보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 배성원 ()

      요즘 노당선자의 지방대학 육성 의제가 화두가 돼고 있지요. MIT도 초기 변변찮은 지방공대에서 저렇듯 기술선도적인 공대로 자리매김한데에는 '실사구시 연구' 풍토가 큰 힘이 되었을 겁니다. 기업에게 인정받는 결과를 내 줄수 있는것...학문적 의의는 없더라도 그것으로도 큰 성과로 인정해 주어야 할 겁니다. 대학이 나서서 일거리를 찾으면 그런 연구거리는 정말 많습니다. 가만히 보면 중소기업체의 간부들은 문제를 '문제화' 하지 못해서 대학에게 의뢰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품이 왜 불량이 많고 공정이 자주 스톱돼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거지요. 디립다 현장 근로자만 까댑니다. 제가존경하는 선배한분은 현재 지방 국립대 교수이신데 직접 기업을 찾아다니며 세미나도 하고 강연도 하면서 직원들의 애로를 경청하고 그 속에서

  • 배성원 ()

      주제를 찾아서 기업에게 어필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기업이 내놓는 연구비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수준이라는것이 문제죠. 그리고 연구를 거의 직접 수행합니다. 당연히 기존의 학생들 '놀이' 수준 하고는 비교도 안돼게 좋은 결과를 내 놓고요. 역시 중요한건 '교수'들의 자세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교수들, 교과서에 나오는 쟁쟁한 사람들도 직접 드릴 들고 구멍 뚫고 나사 조으면서 일합니다. 학생하고 같이요...그리고 학생이 쉴때 책상에서 보고서 쓰고 데이터 분석합니다. 그렇게 솔선하고 열의를 보이면 학생이 바보라도 다 배우게 돼 있습니다.

  • 준형 ()

      성원님 말씀에 두표, 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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