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업기술 수준이 낮은 (?) 원인

글쓴이
박종규
등록일
2002-03-1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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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업기술 수준이 낮은 (?) 원인

먼저 오늘부터 시작한 두 번 째 여론조사에 영향을 주자는 것은 아니니 양해바랍니다.

다만 우리나라 산업체 기술수준이 낮다는 전제하에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있기에 제 의견을 밝히고자 할 뿐입니다.

먼저 우리나라 산업체 기술수준이 낮다는 전제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또는 유럽에 비해 낮다는데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지구상의 대부분의 다른 국가 심지어 유럽의 개별국가에 비해 우리나라 산업체의 기술수준이 낮다는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산업발달 (근대화 또는 현대화) 기간이 짧은 나라를 모든 분야에서 이미 그러한 과정을 거친 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많은 분야에서 선진국과 경쟁을 하고 있고 최종제품의 경쟁을 지원하는 부품, 중간재 및 기초소재 산업도 상당 수준에 올랐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가 아무리 디자인 (단순 설계를 말하는게 아님), 조립기술, 주요부품 설계, 제작기술이 뛰어나도 이를 지원하는 수 천 개 부품회사 및 소재공급회사의 기술수준이 따라 주지 않으면 최종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흔히 대만이나 싱가포르를 선망의 눈으로 보는 분이 많은데 산업 전분야를 본다면 우리나라가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공업 분야에서 항상 미국, 유럽 및 일본 업체들과 경쟁하는 저는 이들 나라 업체 이름은 지난 20년간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유럽도 그렇습니다.  유럽에는 수 십 개의 나라가 있지만 각 나라가 모두 우리보다 기술수준이 높거나 비슷한 것은 아닙니다.  분야별로 한 두 나라 또는 두 세 나라만 우리나라보다 기술수준이 높을 수는 있습니다.  또한 유럽 각국간 또는 미국과 유럽간에는 기업 인수, 합병등이 빈번하여 어제의 미국업체가 오늘은 스위스 업체가 되어 그 나라 기술이 높은 것으로 보이고 기술자의 교류도 활발하여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발전소용 대형 가스터빈을 설계할 능력이 없는데, 세계적으로 이를 설계, 공급하는 회사는 2~3개 회사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기술 수준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요.

우리나라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열악한 현실을 잘 알고 있기때문에 우리나라 산업체 기술 수준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간략히 말해서, 기술이란, 조악하더라도 팔리는 최종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일정 수준에 올랐다고 봐야 하고, 그 최종제품이 국제시장에서 부끄럽지 않은 가격에라도 (절반 가격이라도) 팔린다면 또 한 단계 Level-up 한 것입니다.  다시 그 제품 가격이 세계 일류제품 가격과 10~20%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게 된다면 이미 그 기술수준은 최고에 이르렀고 기반이 되는 중소기업체의 기술도 거의 최고 수준에 올랐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수준에 이르면 그 분야의 산업체 기술수준이 높으냐  낮으냐는 큰 의미는 없습니다.  원천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다른 모든 기술은 Outsourcing 하게 되지요.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체에서는 많은 외국 엔지니어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인건비 절감차원도 있고 부족한 분야의 전문 엔지니어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어쨋든 그런 방식으로 취약한 기술을 보완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역대 정부의 외국인 취업제한 정책 및 언어장벽 때문에 이런 방식의 보완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즉, 모든 분야에서 혈통상 한국인의 기술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더욱 기술이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고 해결책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각국이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는 기술만 아니라면 어느 분야든 부족한 기술자를 외국에서 데려 오면 짧은 기간내에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한편 어떤 한 산업분야에서 자국에 공장이나 엔지니어는 있는데 자국업체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의 경우 한 때 많던 자동차 회사들이 모두 외국에 팔리고 자국 회사는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젠 제작공장과 엔지니어만 남았고 존폐여부는 외국 회사의 시장정책에 달리게 되었지요.  이럴 경우 그 분야 기술수준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지 곤란합니다.  핀란드의 노키아는 휴대폰 기본설계 기술만 보유하고 제작은 모두 외국업체에 맡겨 왔습니다.  이젠 심지어 설계까지 Outsourcing하고 있습니다.  역시 이 나라의 이 분야  산업체 기술수준을 말할 때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부족하다고 믿는 분야도 국가적 또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개발에 착수하면 첨단 분야만 아니라면 거의 모두 수년내에 세계적인 수준에 오를 수 있습니다.  물론 기업체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느냐에 대한 회의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뿐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산업체 기술수준이 전반적으로 낮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고 또한 논의의 대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많은 분들이 의외로 우리나라의 산업체 기술수준이 낮다 (?) 고 생각하고 그 낮은 이유를 회사 경영인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마인드 부재에서 찾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기업인 (회사 경영인)이란 지극히 당연하게도 이윤을 추구하기 떄문에 '기업인의 과학기술에 대한 마인드 부재'는 너무 현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인들은 반사회적인 일만 아니라면 이윤이 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선후관계를 따져 결국 하게 됩니다.

그들이 과학기술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이윤으로 연결된다는 확신을 못하기 때문이고 이윤으로 직결된다 하더라도 Risk가 크고 투자비의 회수기간이 길다면 생각하면 다시 망설이게 됩니다.  이는 투자의 기본입니다.

주제에서 벗어난 부분이기는 하지만 어떤 분들은 기업가들이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는 뒷전이고 부동산 투자에만 열중이라고 지적하셨는데 이는 일면 올바른 지적이지만 경제 발전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말이기도 합니다.  후진국이 단기간내에 경제 발전을 이루려면 산업자본의 축적 및 투자 싸이클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기업에 금융상의 혜택과 더불어 지가 상승의 이득을 얻도록 하고 그것이 설비 및 기술투자로 이어지도록 강력한 정책을 취해 왔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업주가 이런 이득을 배당등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수십년간 법적, 제도적으로 제한했고 재투자하도록 유도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주는 배당이 아닌 불법적인 방법으로 회사 돈을 빼내는 경우가 많았고 또 이런 정책에 편승하여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는 기업도 많았습니다.  즉,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에 등한한 기업이 많았던 것은 정부의 산업정책상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지 반드시 척결해야 할 사회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여러분이 어떤 기술을 천신만고 끝에 개발하였는데 사회가 그 기술이 제대로 보호해 주지 않거나, 대기업 또는 경쟁사에 빼앗기는 일이 많다면 어떻겠습니까?  심지어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그런 기술의 채택을 오히려 막는 경우까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기술개발은 그 자체도 어렵지만 그 이후의 환경에 따라 개발의지가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기업인이 지금보다 훨씬 높은 과학기술 마인드를 갖도록 하는게 정말 필요하다면 과학기술이 이윤과 연결되는 확률을 높이도록 법적,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고 부패방지는 물론 사회적인 인식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제도 개선등이 쉬운 나라이고, 비록 시행착오도 많지만 사회적인 합의만 이루어지면 그런대로 계속 개선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의 대학입시제도를 보아도 그것이 비록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지만 무언가 여론화 되면 그것을 해결하려는 사회적인 시스템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일반의 적극적인 참여도 기술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인터넷이 대중화로 되어 있고, 과거와는 달리 이를 통한 사회 참여도 활발하여 소비자의 의견이 실시간으로 기업에 Feedback 되고 있어 기업에 대한 기술개발 압력이 매우 높습니다.  또한  금년 7월부터 PL (Product Liability)  법이 발효되는데 이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커다란 전기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의 전반적인 기술수준 제고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봅니다.

결론으로 우리나라 산업체 기술 수준의 고하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고 굳이 평가하더라도 결코 외국에 비해 낮지 않으며 비록 부족한 점은 있지만 빠르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소요유 ()

      상업적으로 판매를 위한 기술이라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저처럼 연구소나 다핵에 있는 분들은 그런 면에서 바이어스되어 있는 지도 모르죠. 실험실이나 연구용 실험기기를 제작하기

  • 소요유 ()

      위해 필요한 부품이나 기계를 외국에서는 옆동넨 가면 해결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해결 불가능할 때가 많거든요. 비로 간단한 기계라도 말이죠. 

  • 소요유 ()

      기업이 이윤을 남기기 위하여 개발보다 더 싸게 기술을 사오는 것에 대하여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록 현재에는 이윤을 남기겠지만 계속 그런 일을 해야 되겠지요.  현실이 그렇구

  • 소요유 ()

      80년대 말 경기가 한참 호화일때 우리나라 대기업이 한일이 겨우 땅사는 일이었다면 이해가 갑니까 ?  그땅이 10년만에  IMF하에서 애물단지가 되었었죠. 현제 이공계 출신들의 불

  • 소요유 ()

      만이 이런 면에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 기업의 방향이란게 기술개발보다는 기술도입에 관심 있는거 아닙니까 ?  기업 연구소도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요.

  • 소요유 ()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기술 수준은 우리가  잘나간다는 분야라 하더라도 '선진국'의 90%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95%는 되어야 하는데 나머지 5%를 올리 생각을 하지

  • 소요유 ()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끌려 가야 합니다.

  • 박종규 ()

      적어도 해외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기업들은 기술도입의 한계성을 절감하여 자체 기술개발로 눈을 돌리고 있고 실제로 과거보다 훨씬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제무제표

  • 박종규 ()

      상의 기술개발투자비가 과거와는 달리 실질적인 기술개발에 많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또한 협력업체도 공동운명체로서 기술개발에 더욱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미국과 비교하기에는

  • 박종규 ()

      여건이 너무 열악하여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 생각으로는 기초과학이나 원천기술분야는 대학의 연구소에서 많이 담당해 주어야 하는데 어려운 자금문제는

  • 박종규 ()

      대학에 기부하는 사회분위기 조성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런 기부가 너무 적지요.  그런 의미에서 연세대에서 추진하는 기여입학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 박종규 ()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익명기고 ()

      효과/비용 면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다만 개인의 경력 면에서 개인과 사회의 인식이 유연해야한다고 생각됩니다.

  • 류근호 ()

      글이 너무 길어요

  • 김덕양 ()

      훌륭한 인식이십니다. 더 길게 써주셔도 좋겠는데요. 저로서는. =)

  • 박석준 ()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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