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00년 전의 증기기관" ...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3-02-10 06:35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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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여러분의 관심이 큰 "과학과 정치"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와중에 잠시...^^  
"...X파일" 적인 성격이 매우 강한 글을 하나 첨부하겠습니다.  이 글을 처음 쓴지는 꽤 오래 되었는데, 당시에 제가 막 가입했던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올렸을 때에도 관심을 보였던 분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제가 첫번째 책을 냈을 때에도 '타이틀 글(맨 처음의 꼭지글)'로 삼았는데...
다만, 내용 중에 독자분들의 흥미와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Fiction이 가미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그리이스 신전 앞의 풍경; 제가 타임머신 타고 가서 본 것도 아니므로...^^ )  그러나 언급된 발명품 등은 기록에도 엄연히 나오는 것들로서, 마음대로 꾸며낸 것이 결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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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전의 증기기관

                               최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과학사 X파일(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증기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렇게 물으면, 여러분은 서슴없
이 '제임스 와트'(James Watt)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틀린 대
답이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만들기 50여년 전에도 이미 영국의 탄광에서
는 증기기관이 이용되고 있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증기선의 발명
자' 풀턴(Robert Fulton)과 '증기기관차의 발명자'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발명품들이 가장 성공적으로 작동했고, 그것을
널리 보급시키는데에 크게 공헌했기때문에 그들을 '증기기관차(증기선)의 아버
지'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할 지 모르나, 그들이 최초로 발명했다는 의미는 아니
다.
사실 진보와 개량이 거듭되는 기술발전사에 있어서, 최초 발명자를 밝혀 내기
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아직도 학자들 간에 논란이 많다. 앞의 예의 증기
기관차만 하더라도 스티븐슨 이전에 여러 선구자들이 있었다. 다만 여러 이유들
로 인하여, 그들은 대중적인 보급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다지 유명해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증기기관을 세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누구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놀랍게도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이스 알렉산드리아시대의 기술자 헤론(Heron)이 바로 그 주인공이
다. 아쉽게도, 헤론이라는 인물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삼각형의 면적을 구하는 공식인 '헤론의 공식'의 실제 발견자인지에 대해
서도 아직 논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저술한 여러권의 저서를 통하여 이
시대를 앞선 선구자가 만든 놀라운 발명품들을 접할 수 있다.
  다음은 그 당시의 그리이스 어느 신전 앞의 한 풍경이다. 거대한 신전 양쪽
벽면의 화로에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고, 앞에는 육중한 돌문이 닫혀 있다. 신전
마당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꿇어 앉아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위대하신 제
우스(Zeus)신이시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엄숙한 표정의 사제들이 앞으로 나와 소리친다. "시민들이여, 여러분들의 기도
가 진실되면 제우스신께서도 응답하실 것이다. 그러나, 신성을 의심하는 자가 있
다면, 답하시지 않을 것이다. 만일 여러분의 진실된 기도를 받아들이신다면, 저
육중한 돌문이 저절로 열릴 것이다." 시민들은 더욱 열광적으로 기도를 올린다.
사제들도 더욱 엄숙해진다. 시간이 흐르자, 정말로 육중한 돌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시민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제우스신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전지전능한 제우스 신이시여!" 사제들도 득의만만한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위의 '저절로 열리는 돌문'은 사제들의 농간이었다. 사실은 헤론이 만든
정교한 기계장치를 이용한 것으로, 벽면 화로의 불길이 수증기를 팽창시켜서 증
기압의 힘이, 안보이는 곳에 설치된 기구를 통하여 돌문을 연 것이다. 물론 일반
시민들은 까맣게 몰랐고, 비밀은 몇몇 사제들만이 알고 있어 서 '신의 위대함'을
선전하는데에 이용되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상의 인물과 견준다면, 조선 세종때의 장영실과도 비교할 수 있겠으
나, 헤론은 장영실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더욱 놀라운 발명들을 많이 이룩하였
다. 그가 발명한 것 중에 '기력구'라는 것이 있다. 모양은 둥근 구의 양쪽에 공기
통로가 달려 있고 구와 연결된 아래쪽의 물통에는 물이 채워져 있다. 밑에서 불
을 때면, 안의 수증기가 팽창하여 나오면서, 구가 축을 따라서 회전하게 되어 있
다.
이것을 당시에는 '에오리아의 공'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에오리아의 공(기력
구)'이야말로 세계 최초의 증기기관인 것이다. 물론 엄밀히 따진다면, 엔진으로
실제 이용된 것은 아니므로, 증기기관이라고까지 부르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겠
으나, 아무튼 증기기관의 원리를 정확히 응용한 세계 최초의 증기터어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밖에도 헤론은 여러 재미있는 것들을 발명했다. 한번은 욕심많은 한 사제의
요청으로, 동전을 넣으면 일정량 만큼의 성수(聖水)가 나오는 '성수자동 판매기'
를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커피자동판매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수레
의 축에 기어들을 연결해서, 수레가 얼마만큼의 거리를 달렸는지 알 수 있는 장
치도 고안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의 택시미터기와 같은 원리이고, 전력계, 수도계
량기 등에도 응용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하고 싶어질 지도 모른다. "당신의
그 멋진 발명품들을 잘 응용해서, 실제 인간생활을 편리하게 하는데에 썼더라면,
사람들의 생활이 크게 풍요로워 지고 훨씬 빠르게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 있어서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이라지만, 정말 헤론이 자신의 발명품들을
실생활에 보급시키려고 노력했다면, 산업혁명이 17-18세기의 영국에서가 아니라,
2천년전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일 것이다.
그러나 헤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음과 같이 우리의 질문에 답할 것이다. "인
간생활을 편리하게 한다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 힘든 일은 노예들이 다 알
아서 해 주는데 굳이 번거롭게 그런 것들을 쓸 필요가 있을까? 괜히 노예들만
편하게 만들어 줄 필요는 없쟎아?"
당시 그리이스의 노예제 사회 아래서는, 헤론의 훌륭한 발명품들도 실제의 생
활에는 그다지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장난감'에
불과할 뿐이었고, 앞의 '신전의 돌문'의 예에서 보듯이, 인간보다는 신을 위한 기
구였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은 그것이 속한 사회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과학기술사를 조금만 살펴 보아도, 과학기술과
사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 발전,
계승되지 못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묻히고 만 헤론의 경우도, 이것을 웅변하
는 숱한 사례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현대사회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들을 서로 주고
받고 있는 것인가?  과학기술자들뿐만이 아니라,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 최희규 ()

      바빠 죽겠는데 최성우님이 저의 시간을 또 빼앗으셨습니다 ^^. 재미있었습니다. 

  • 임호랑 ()

      참 유익하고 재미있는 부분이군요. 근데 어디서 이런 재미나는 자료는 갖다가 이렇게 글을 잘 쓰시나요? ^^

  • 준형 ()

      또 다시 좋은글 감사 합니다^^

  • 김하원 ()

      통일신라시대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져 ; 성덕대왕신종 같은 것을 보면 삼국시대즈음의 한민족은 과학기술에 대한 마인드를 갖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 최성우 ()

      삼국시대의 과학기술 수준이라...  성덕대왕 신종이나 석굴암, 천문관측 기록 등을 보면 우리의 전통 과학기술 수준이 상당한 편이었습니다.  당시에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동일한 구고산법도 알려져 있었고요...(이것은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아무튼 고대/중세의 과학기술은 동양(중국)이 서양을 능가하는 기간도 꽤 되었는데, 16-17세기 과학혁명기 이후에는 역전이 된 것이지요...  (한민족의 과학기술 마인드는 확신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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