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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와트와 주전자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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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03-05-2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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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상의 잘못된 상식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한가지 더 첨부합니다.
와트의 증기기관과 주전자 뚜껑에 관한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은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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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트와 주전자 일화

최 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과학사 X파일(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의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에서 핵심적 역할
을 한 주역으로서, 기술 발달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와트가 증기
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것은 아님을, 앞장에서 밝힌 바 있다.
그것도 잘못된 상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와트 이전에 이미 증기기관을 발
명, 제작한 선구자들은 '2천년전 알렉산드리아의 헤론' 이외에도 여럿 있었던 것
이다. 영국의 우스터(Worcester) 후작2세(1601-1667)는 증기로 물을 내뿜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역시 영국의 세이버리(Thomas Savery; 1650-1715)
는 1698년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특허까지 획득하였다. 그러나, 그의 증기기관은
그다지 실용적이지 못해서, 대중적인 보급에는 실패하였다.
토머스 뉴커멘(Thomas Newcomen; 1663-1729)은 1712년 약 5.5마력의 힘을 지
닌 증기기관을 제작하여 탄광에 보급시켰고, 이 증기기관은 와트의 증기기관이
나오기 50여년 전부터 영국의 탄광에서 지하수를 퍼올리는데 널리 쓰이고 있었
다.

그런데,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소년시절 수증기로 인
하여 물주전자의 뚜껑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 증기기관의 발명을 착상한 것이
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어린시절에, 와트소년처럼 꼼꼼한 관찰력을 가지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
는 교훈과 함께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처럼 유명한 와트 소년시절의
'주전자 일화'를 학생시절 한 두번쯤 들어 본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와트의 어린시절에서 50년 이상 지난 뒤
였다. 그것도, 와트가 주전자뚜껑을 유심히 관찰하여 무엇을 구상한 것이 아니
라, 그냥 주전자 뚜껑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고모에게 꾸중을 들었던 것이다.
어느날 밤, 소년 와트는 미혼인 고모 뮤어헤드(Muirhead)양과 차를 마셨는데, 고
모는 소년 와트를 이렇게 야단쳤다고 한다.
"제임스야, 너처럼 게으른 아이도 처음 보겠구나. 어쩌자고 한시간 동안이나 주
전자 뚜껑만 들었다 놓았다 하니? 그런 일로 시간을 낭비하다니, 부끄럽지도 않
니? 책을 읽던가 아니면 다른 쓸모있는 일을 해야지... "

어린시절 와트의 이 기억이 먼 훗날 증기기관을 제작하는데 어떤 영감을 주었
는지 확언하기는 힘들지 모르나, 이것을 계기로 증기기관을 발명했다는 것은 너
무 과장되고 터무니없이 비약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와트가 증기기관에 손을 댄
것은 1763년 글래스고우대학에 있던 뉴커멘의 증기기관 모형이 고장난 것을 수
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전까지 와트는 '증기기관'이라
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이다. 앤더슨(John Anderson) 교수의 명을 받은
그는 고장의 원인과 증기기관의 구조를 훑어본 후 곧 고장을 수리했고, 이후 흥
미를 가지고 좀 더 효율적인 증기기관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처음에는 실패를 거듭하였고, 보급에도 어려움이 많았으나, 사업가 볼튼
(Mathew Boulton; 1728-1809)의 지원아래 노력을 계속하여, 1776년 드디어 와트
가 만든 증기기관이 탄광에서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이전
의 뉴커멘의 증기기관에 비해서 크기도 작고, 석탄을 1/3 정도밖에 소모하지 않
으면서도 훨씬 큰 힘을 내었기 때문에, 탄광주들은 앞다투어 와트의 증기기관을
채용하였다.
뉴커멘의 증기기관을 써 오던 탄광주들은 "증기기관이 나와서 이제는 지하수를
운반하느라 소, 말을 부리지 않아도 되겠거니 했는데, 이제는 그 소와 말들을
(증기기관의 연료인) 석탄을 나르는데 부리게 되었다." 고 불평해 오던 터였다.
와트는 1783년에는 회전식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증기기관의 용도를 탄광의 물
퍼내기뿐 아니라, 이후에 방적기, 증기기관차 등에까지 널리 응용되게 하는 길을
열어서 산업혁명에 크게 기여하였다.

소년시절의 단순한 호기심이 나중에 큰 업적을 낳게 되었다는 설명은 어린학생
들에게 교육적인 효과는 클지 몰라도 그다지 사실과 부합되는 해석은 아닐 것이
다. 또한 재미있게도, 와트보다 앞선 시대의 증기기관 연구의 선구자인 우스터
후작2세와 토머스 뉴커멘에게도 위와 똑같은 일화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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