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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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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04-04-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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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과학기술과 법]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1)
- 새로운 과학기술과 지적재산권에 관하여 -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hermes21@chol.com)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경구의 하나이다. 그런데, 특허를 비
롯한 지적재산권 제도가 주로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은 바로 인간이 만들어 낸 창작, 즉 '새
로운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이 숨가쁠 정도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과연 그
'새로운 것'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범주까지 인정할 것인가 등에 대하여 큰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숱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게놈 프로젝트 등 최근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간을 비롯한 각종 동, 식물들
의 유전자에 대해 많은 것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 특정 유전자의 구조 및 배열 등은 원
래부터 존재하던 것을 단순히 발견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노력에 의해 탄생
한 새로운 발명이라고도 볼 수 있을지 구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탄생한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BM; 영업방식)
등은 기존의 특허제도가 보호해 온 기술적인 영역인지, 아니면 보호 대상이 아닌 인간의 정
신적 수단, 혹은 아이디어 차원에 불과한 것인지 역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밖에도 물론 많은 사례가 있으며, 또한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존의 지적재산권 제도가 과
학기술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종의 '문화 지체' 현상을 일으키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특허의 대상이 되는 발명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뒷
받침하고 그 결과를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 제도 등의 측면에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 지 살펴보는 것도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일의 하나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특허법 상으로 특허의 대상이 되는 것은 독일의 저명한
법학자 콜러(Josef Kohler; 1849 - 1919)의 발명에 관한 정의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특허
등을 비롯한 지적재산권 관련 법들의 개척자라 볼 수 있는 콜러 교수는 "발명이란 기술적으
로 표시된 인간의 정신적 창작으로 자연을 제어하고, 자연력을 이용해서 일정한 효과를 낳
는 것을 말한다." 라고 한바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의 특허법은 이 견해를 거의 채용
하여 발명의 정의 자체를 법 조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즉 특허법 제 2조 1항에 따르면, "발
명이라 함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서 고도한 것을 말한다." 라고 규정
되어 있다.
다른 나라들 역시 특허가 보호하는 대상은 비슷하게 보고 있으나, 미국과 서구 각국에서는
발명의 정의 자체는 법 조항으로서 규정하지 않고 판례나 학설 등에 의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특허법 101조에서 "새롭고 유용한(new and useful) 제조방법
(process), 기계(machine), 제품(manufacture) 또는 물질의 조성물(composition of matter)
또는 그에 의한 신규의 유용한 개량을 발명하거나 발견한 자는 특허법이 정한 조건과 요건
의 의해서 특허를 받을 수 있다." 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특허의 대상을 방법, 기계, 제품,
물질의 조성물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캐나다나 독일, 프랑스 등의 유
럽 각국 역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는 대상의 범위에 대해서는 거
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발명의 대상을 명시한 경우든 그렇지 않은 경우든, 자연 현상이나 법칙의 발견, 수학적
방법이나 알고리즘, 인간의 정신적 활동이나 사업에 관한 방법 등은 원칙적으로 특허의 대
상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서 컴퓨터 관련 기술과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개인과 기업
의 거의 모든 일상 업무들을 컴퓨터를 이용하여 처리하게 됨에 따라, 컴퓨터를 움직이게 하
는 핵심 요소인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고, 또한 이를 법률적으로 보다 철저
하게 보호할 필요성도 더욱 커지게 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특허의 대상인가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부정설, 긍정설, 절충설 등이 주장되어 왔다.
부정설에 의하면, 컴퓨터 프로그램은 인간의 정신적, 지능적 수단과 과정으로서 계산 방법
에 불과하므로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른바 '웨어하우스 설'로 대표되
는 긍정설에서는, 하드웨어만으로 된 컴퓨터는 부품 창고에 불과하지만 프로그램이 결합됨
으로써 목적에 맞는 장치가 되므로 배선이나 접속수단과 동일하게 자연법칙을 이용한 것으
로 본다. 절충설에서는 프로그램의 종류에 따라 특허성의 유무가 구분되고, 제어 방법 등에
특징이 있으면 특허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더욱이 1990년대 들어서서는 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고 전자상거래 등 온라인을 이용한
각종 사업들이 활발해 짐에 따라, 특허성을 판별하기가 더욱 힘들고 난해한 이른바
BM(Business Model) 발명이라는 새로운 대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영업 방법, 혹은 영업 모
델을 의미하는 BM 발명이란, "컴퓨터 또는 인터넷, 네트워크 등의 정보통신기술과 사업 아
이디어가 결합된 발명" 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영업 방법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므로 특허 대상에 포함되
지 않는다는 논리가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으나, 1998년 이른바 스테이트 스트리트 은행
(State Street Bank) 사건 판결을 계기로 하여 컴퓨터 프로그램과 BM 발명의 특허성 여부
에 대하여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 사건은 1993년에 3월에 미국에서 특허가 부여된 'Data processing system for hub and
spoke financial services configuration' 이라는 영업 발명의 특허성에 관해 다툰 사건이다.
이 특허는 뮤추얼 펀드 투자를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에 관한 것으로서, 구체적인 내용은 뮤
추얼 펀드(spokes)를 공동 출자하여 자산을 하나의 투자 포트폴리오(hub)에 넣는 것을 허용
하는 허브 및 스포크 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다룬 것이었다. 이 특허에 의하면 복수의 뮤추
얼 펀드의 자산을 파트너십 형태로 조직된 투자 포트폴리오(hub)에 집약함으로써 투자의 경
제규모를 얻고, 아울러 뮤추얼 펀드가 파트너십 형태로 취급되게 함으로써 세법상의 우대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매사추세츠 연방지방법원은 이 특허에 대하여, 수학적 알고리즘에 해당하며 영업 방법에
관한 것이므로 특허법 101조의 특허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특허를 무효로 판결하
였다. 그러나 특허권자는 이에 불복하여 연방고등법원(CAFC)에 항소하였는데, 고등법원은
1998년에 7월에 원심을 깨고 이 특허를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연방고등법원은 비록 수학적 알고리즘을 포함한 발명이라고 하더라도 '유용하고 구체적이
며 실체적인 결과(useful, concrete and tangible result)'를 가질 경우 특허법 101조의 특허
대상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고, 영업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 발명과 동일한 기준으
로 검토되어야 하며 단순히 영업 방법이라는 이유로 특허의 대상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고 해석하였다.
이 판결은 이후 미국에서 자연 현상과 법칙 자체, 추상적인 아이디어 등 일부 예외를 제외
하고는 '태양 아래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특허의 대상으로 사실상 허용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졌으며, 따라서 BM 발명의 출원과 분쟁이 급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래의 영업 방법
발명을 부정하던 논리 대신에, 영업 방법이라도 '유용하고(useful) 구체적이며(concrete)이며
실체적인 결과(tangible result)'를 갖는 경우에는 특허성이 인정된다는 새로운 기준이 제시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밖의 BM 발명에 관련된 대표적인 분쟁 사례로는, 프라이스라인(Priceline)사가 출원하여
마이크로 소프트(MS)에 제소한 '역 경매 시스템' 특허, 유명한 인터넷 서점 업체인 아마존
(Amazon)이 출원하여 반즈앤노블 등 경쟁사들과 다툰 '원클릭 서비스 기술' 등이 있다.
BM 발명의 특허성 여부와 구체적 기준 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세계적으로 논란이 지속되
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새롭게 출현한 인터넷이라는 과학기술의 결과물이 기존의 지
적재산권 제도에 적지 않은 충격과 혼란을 일으키면서 이를 재정비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부
상하게끔 한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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