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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의 로빈 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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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05-05-0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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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카피레프트 운동의 상징처럼 된 리눅스(Linux)의 펭귄 로고

아래 : 미국의 서북부 도시 시애틀. 이 도시의 이름은 '추장의 선언'으로 유명한 인디언 시애틀(Seattle) 추장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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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법(5)]

카피레프트(Copyleft)의 이상과 현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앞서서 언급되었던 최근의 과학기술과 법률에 관련된 여러 쟁점들, 즉 인터넷 비즈니스모델 특허권, 생명과학기술과 유전자 정보의 특허 허용 문제, 온라인상의 저작권 분쟁 등이 논의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이른바 ‘카피레프트' 즉 지적재산권의 공유(共有) 문제이다.
카피레프트(Copyleft)라는 용어는 저작권, 지적재산권을 의미하는 '카피라이트(Copyright)'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미국 MIT 대학의 컴퓨터학자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이 컴퓨터 프로그램의 공유와 자유로운 복제, 사용을 통한 정보화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을 설립하면서, 1984년 무렵부터 처음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후 대중매체 등에서도 숱하게 인용되면서 웬만한 네티즌들도 다 알뿐 아니라 백과사전에도 등장할 정도로, 어찌 보면 인터넷 시대에 가장 저명한 용어의 하나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류의 지적 자산인 지식과 정보는 소수에게 독점되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카피레프트 운동이 세계적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이른바 리눅스(Linux)의 성공에도 힘입은 바가 크다. 1990년대 초반에 핀란드 헬싱키 대학에 재학 중이던 리누스 토발즈(Linus Tovals)가 유닉스(Unix)를 기반으로 개발한 공개용 오퍼레이팅 시스템인 리눅스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를 공개한 후, 카피레프트 운동에 참여하는 전 세계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의 손길을 거치면서 리눅스는 급격히 성장한 바 있다. 이제 리눅스는 거대 컴퓨터 회사들도 정식으로 채택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우 진영의 강력한 경쟁상대로 부상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쓰이고 있다.

카피레프트는 리눅스의 사례 뿐 아니라, 디지털 기술 등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변화가 기존 지적재산권 제도와 충돌을 일으키거나 관련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 바 있다. 미국의 냅스터(Napster) 사건, 즉 음악파일인 MP3를 네티즌들끼리 교환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저작권 침해 소송이 제기되자 수많은 네티즌들은 카피레프트의 입장에 서서 냅스터 사를 적극 옹호하고 상대방을 맹렬히 비난한 바 있다.
또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의 특허 분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이른바 BM특허의 특허권 부여 및 범위가 논란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의 속성이 특허의 대상인 기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전통적으로 특허가 주어지지 않았던 사업적인 아이디어의 범주가 아닌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러나 카피레프트 운동과 비슷한 맥락의 입장에서, 인터넷 관련 분야에 독점적 특허를 부여한다는 것은 지적재산권의 기본 취지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관련 산업의 발전을 도리어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도 간과할 수 없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특허를 둘러싼 분쟁 중 특히 유명한 사례가 아마존의 ‘원클릭 서비스’ 기술이다. 이 기술은 온라인 쇼핑 후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 한번 정보를 입력하면 나중에 다시 정보를 입력할 필요가 없이 결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세계적인 인터넷 서점 업체인 아마존(Amazon)이 이 원클릭 서비스 기술을 특허로 출원하여 등록 받은 후 같은 방식을 사용해 온 경쟁업체를 제소하였다. 그런데 수많은 네티즌들이 역시 카피레프트적 차원에서 아마존 불매운동 사이트를 만들고, 대대적인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특허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카피레프트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 중에는 보다 급진적이고 과격한 행태를 띠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지적재산권 독점의 축이라고 여겨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체계를 이용하는 공공기관의 컴퓨터들을 가끔씩 해커와 마찬가지로 공격하기도 하고, 마치 인터넷 시대의 ‘의적(義賊)’ 혹은 로빈후드(Robin Hood)를 자처하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카피레프트는 기존의 지적재산권 제도와 항상 배치되는 것일까? 지적재산권 관련 법률들을 잘 살펴보면 사실 그렇지 않다. 특허법은 물론 발명자에게 일정 기간동안 그것을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준다. 그러나 특허를 받을 수 없는 발명, 혹은 특허권의 사용을 제한하는 경우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발명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공개’해야만 특허권을 부여받을 수 있다. 또한 일정 기간이 지나서 특허권이 소멸되면 누구나 자유롭게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즉 특허제도란 발명자의 권리만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공개 및 확산’을 통하여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중적인 측면이 있음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법 역시 저작재산권의 제한 혹은 정당사용(Fair use) 규정 등을 통하여 공익적인 목적이나 일정 범위 내에서는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처럼 저작권법, 특허법 등 현행의 지적재산권 제도 자체가 이미 그 안에 카피라이트적인 요소뿐 아니라 카피레프트적인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카피레프트와 관련하여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에 매우 주의해야할 것이다. 즉 카피레프트의 기본 정신과 올바른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카피레프트는 ‘무조건 공짜’라고 생각한다거나, 남의 지적재산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일 뿐 아니라, 도리어 카피레프트의 이상을 훼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언젠가 ‘나는 공짜가 좋다’는 모 이동전화업체 광고의 카피가 큰 인기를 끈 적도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지적 노동의 결과를 제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고, 각종 불법 복제나 저작권 침해 풍조 역시 여전히 팽배해 있다. 카피레프트를 ‘공짜 지상주의’나 불법행위의 묵인과 동일시하려는 것은 특히 경계해야할 것이다.

1854년, 미국 서북부에 거주하던 인디언 부족의 추장인 시애틀(Seattle)은 그들이 대대로 살아온 인디언의 땅을 매수하겠다고 제의한 ‘워싱턴 대추장’ 즉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에게 “우리는 이 땅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그대들은 어떻게 하늘과 땅의 따사로움을 사고 팔 수가 있는가?”라는 요지의 답장을 보냈다. 오늘날 ‘추장의 선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은 다른 분야에서도 자주 인용되지만, 과학기술과 지적재산권 관련 문제에서도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이른바 ‘새로운 서부개척시대’라고도 불릴만한 오늘날, '정보, 기술의 교류와 창작자의 이익 보호'라는 두 축이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다같이 계속 노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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