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지진, 화산과 지질학적 재난들 > 과학기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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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지진, 화산과 지질학적 재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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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08-09-24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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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국 쓰촨성에서는 발생한 대지진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었을 뿐 아니라, 올림픽을 몇 달 앞둔 당시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역사적으로 이만한 규모의 대지진은 지난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과 1976년 중국의 당산 대지진, 1995년 일본의 고베 지진 등 20세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발생한 바 있다. 지진 뿐 아니라 대규모의 화산 폭발로 수십만 명 이상이 한꺼번에 매몰되어 목숨을 잃는 대참사도 세계 곳곳에서 간간이 일어난다.
인류를 위협하는 자연재해와 재난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진과 화산이 특히 두려운 것은 엄청난 위력 등으로 인하여 순식간에 수많은 인명피해를 낼 뿐만 아니라,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언제 어디에서 어느 규모로 발생할지 정확히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데에 있다.

화산 폭발이나 지진 등을 소재로 한 SF영화나 재난영화는 다른 것에 비해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인데, 일단 1997년에 나란히 선보인 ‘볼케이노(Volcano; 1997)’와 ‘단테스피크(Dante's Peak; 1997)’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믹 잭슨 감독의 볼케이노는 미국 로스 엔젤레스(LA)시가 화산 폭발과 용암 분출에 휩싸인다는 설정으로, 자연의 위협과 공포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영화이다. 저명 배우인 토미 리 존스가 재난당한 사람들을 구조, 지휘하는 LA 비상대책위원장 역할로 등장한다.
LA의 상수도국 직원들이 지하 상수도 점검 도중 분사체로 발견되는 기이한 사건이 일어나지만 경찰 조사반 등은 원인조차 파악을 못하는데, 지질학자가 화산의 징후를 발견하는 와중에 이미 화산활동이 시작되어 LA 시 전체는 커다란 위기와 혼란에 휩싸이고, 주인공을 비롯한 비상대책위원회 사람들은 수백만명의 인명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이다.
상당한 스릴과 박진감이 넘치는 이 영화는 재난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와 아울러 미국식 영웅주의의 모습도 보이는데, 화산 활동으로 인한 용암의 줄기가 지하철의 선로를 타고 흐른다는 설정은 일견 기발하고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후 용암과 맞서 싸우면서 위험을 피하는 과정 등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보다는 단테스피크가 화산의 징후와 폭발 과정 등을 묘사하는 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다 우수해 보이며, 흥행에서도 비교적 좋은 결과를 보였다. 로저 도날드슨 감독에 007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유명해진 미남배우 피어스 브로스넌과 터미네이터의 여전사로 낯익은 린다 해밀턴이 주연을 맡았다.
화산 폭발로 인한 파편으로 약혼녀를 잃은 화산학자 해리 달톤(피어스 브로스넌 분)은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하다가 동료의 권유로 퍼시픽 노스웨스트 마을 단테 봉우리 근처의 미미한 지진 활동에 대해 조사를 벌이게 된다. 사업가이자 작은 마을의 시장인 레이첼 완도(린다 해밀턴 분)은 단테 봉우리 부근을 대상으로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계획을 세우지만, 해리는 지질변형, 가스 방출 등 화산 대폭발 이전의 징후를 관찰하고 크게 놀라 시장에게 대책을 촉구하게 된다.
주민의 안전을 염려하는 시장은 회의를 소집하여 대책을 논의하지만, 해리의 상사는 조사 결과에 대한 신빙성을 의심하면서 해리의 경고를 무시하려 한다. 그러나 화산 폭발의 징후는 갈수록 더하면서 주민들을 위협하고, 마을은 순식간에 공포와 혼란에 휩싸이면서 건물들이 무너지고 도로 교통이 마비되는 등의 긴박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 와중에 해리와 레이첼은 가족들을 구하여 위기에서 탈출하려 애쓰지만 위험한 고비를 맞게 된다.
이 영화는 같은 해에 나온 볼케이노(Volcano)보다 흥행 실적이 좋았을 뿐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를 활용한 촬영으로 실체감을 높인 점도 볼 만한데, 특히 마지막에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화산의 징후와 폭발 과정 등에 대한 과학적인 묘사도 훌륭한 편인데, 유해가스의 방출로 인한 동식물의 죽음이나 호수의 산성화, 그리고 화산 활동 전후에 지진이 동반되거나 화산재와 함께 비가 내리는 점 등은 눈여겨 볼만하다.

화산 폭발을 소재로 한 고전적인 작품으로는 19세기 영국의 소설가 E. G. 리턴이 1834년에 발표한 장면 역사소설 ‘폼페이 최후의 날’을 들 수 있는데, 영화와 TV 시리즈 등으로 방영되기도 하였다. 로마 문화가 한창 번성해 가던 서기 1세기 무렵, 아테네의 명문 출신 미남 청년 글라우쿠스와 그의 연인 이오네가 온갖 음모와 사회적 풍상에 휘말려 고초를 겪다가, 베수비오 화산이 대분화를 일으키던 날, 앞을 못 보는 노예 여자 니디아의 도움으로 바다로 피난한다는 이야기이다. 폼페이 최후의 날은 화산 폭발에 대한 과학적 설명보다는 철저한 고증을 통하여 로마시대 당시의 건축양식이나 풍속, 사상 등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남녀 간의 애정이나 사람들의 갈등과 대립 등을 생생하게 그려낸 측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오는 베수비오 화산은 서기 79년 8월의 대분화로 인하여 폼페이를 비롯한 인근의 여러 도시가 순식간에 죽음의 도시로 변하면서 묻혀버리는 참사를 일으켰으며, 그 이전과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분화가 있었던 유명한 화산이다. 이 화산에 오랫동안 매몰되었던 폼페이는 19세기에 들어와서 유적들이 발굴되기 시작해서, 당시의 신전, 저택, 도로 와 상하수도 등을 비롯한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어서 이제는 이탈리아의 주요 관광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폼페이 최후의 날’은 바로 이러한 폼페이 폐허 유적지를 바탕으로 하여 문학적 상상력을 덧붙여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인한 참극과 인간사의 무상함 등을 묘사했던 것이다.

베수비오 산은 나폴리와 폼페이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풍경의 상징으로서 여러 노래와 그림, 문학 작품 등에서 인용되지만, 실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산으로 꼽히고 있다. 서기 79년의 대분화 이후에도 수십 차례에 걸쳐 폭발하거나 용암이 흘러내려 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20세기 들어서도 분화가 지속되어 1944년에는 용암류로 인하여 등산전차가 망가졌고 1973년과 1979년에도 분화가 있었다.
화산학자들이 베수비오 화산을 가장 위험한 화산으로 우려하는 이유는, 역사적으로 매우 큰 폭발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활화산으로서 격렬하고 잦은 폭발을 일으킴에도 불구하고 나폴리 시를 비롯한 수백 만 명의 인구가 화산 인근 지역에 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이 화산은 먼지구름, 화산쇄설류, 화산이류, 산체 붕괴, 용암류와 같은 치명적인 화산 현상들을 복합적으로 일으킬 수 있기에 더욱 위협적인 화산이다.

베수비오 화산 이외에 여전히 큰 위험을 지니고 있는 주요 화산들로는 1983년에 분화한 이후 올해 들어서도 다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하와이의 킬라우에아 화산, 1991년에 폭발한 필리핀의 피나투보 화산 등을 꼽을 수 있고, 순식간에 수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묻혀버린 화산 폭발이 20세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500개의 활화산이 현존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5억 명이 넘는 인구가 화산 폭발의 위협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백두산마저도 오랜 휴화산의 시기를 끝내고 조만간 다시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화산의 폭발력은 원자폭탄의 수백만 배에도 달하며, 용암과 화산재 뿐 아니라 강도 높은 지진과 대량의 진흙 홍수 등도 동반하기에 화산은 자연적인 재앙 중에서도 가장 위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세계의 주요 활화산에 화산 관측소 등이 설치되어 화산활동의 징후를 간파하고 예상 폭발 시기 등을 알아내려 애쓰지만, 정확한 폭발 시점과 규모 등을 예측하기는 아직도 대단히 어렵다. 갑작스런 폭발로 인하여 분화구 인근에서 연구 중이던 화산학자들과 취재에 나선 언론인들마저 목숨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질학적, 지구적 재난을 다룬 영화 중에는 현실성이 너무 결여되어 있거나 상당히 황당한 영화들도 적지 않은데, 일본 열도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는 ‘일본 침몰(日本沈沒, Sinking Of Japan; 2006)’과 ‘코어(The Core; 2003)’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일본 침몰은 동명의 일본 SF 베스트셀러를 영화와 드라마로 만든 것인데,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과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것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조잡한 구석이 많고, 침몰의 원인과 과정 등도 과학적인 측면에서 납득하기가 매우 힘들다.

코어는 미국 정부에선 인공지진으로 적을 공격하는 비밀 병기를 개발하지만 그로 인하여 지구의 핵(CORE)의 회전이 멈추면서 갖가지 기상 이변과 재난이 속출하자, 미 정부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지구의 코어에 내려 보내 몇 개의 핵폭탄을 터뜨려 지구 코어의 회전을 되돌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지구 핵의 회전이 멈춰져 인류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착상이 상당히 기발해 보이기는 한다. 즉 지구 자기장의 근거로 지구 외핵의 유체 운동을 꼽는 다이나모 이론, 그리고 지구 역사에서 지자기의 역전이나 격변 시에 생물 멸종 등의 재난이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나름대로 그럴 듯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황당하고 현실성이 너무 결여되어 있는데, 엄청난 고열을 지닌 지구 핵 부근으로 사람들을 내려 보낸다는 설정 자체가 무리일 뿐만 아니라, 지하에 어떻게 터널을 뚫고 어떤 교통수단으로 지구의 핵으로 들어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설명이 거의 없다.
이 영화는 대단히 위험하고 어려운 임무를 맡은 특공대가 핵폭탄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휴먼 드라마나 미국식 영웅주의의 부각이라는 측면에서 1998년의 최악의 영화로 꼽힌 아마겟돈(Armageddon; 1998)과 유사한 부분이 매우 많아 보인다. 이야기의 전개 등을 볼 때 소행성과 우주라는 아마겟돈의 무대를 지구 속의 핵으로 옮겨 놓은 듯이 보이며, 여러 평론가들 역시 아마겟돈에 마이크로 결사대 혹은 타워링을 뒤섞어 놓은 영화라고 혹평을 내렸다고 한다.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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