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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풀이와 암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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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09-03-14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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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숱한 암호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은행이나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인출할 경우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고, 컴퓨터나 인터넷 사이트에 로그인할 때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한다. 또한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에도 거기에 담긴 정보가 암호의 형태로 송수신되어 승인을 받아야 상품이나 서비스의 구매가 가능해진다.
정보화 사회가 진전될수록 암호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서 더욱 빈번하게 사용될 전망인데, 일상생활뿐 아니라 군사 분야나 극도의 보안이 필요한 국가 안보 관련 부문 등에서 암호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군부대에서 매일 암구호를 바꾸어 사용할 뿐 아니라, 정보기관을 비롯한 국가 중요 부서 등에서도 기밀과 보안 유지를 위해서는 암호문을 활용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암호를 지키려는 쪽과 암호를 풀어내려는 쪽과의 투쟁은 총칼을 들고 싸우는 전투 못지않게 무척 치열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전쟁의 승패 및 국가의 명운까지 좌우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암호에 관련된 영화들은 대단히 많은데, 암호를 둘러싼 전쟁을 주제로 한 영화들도 있고, 암호가 주요 소재는 아닐지라도 이야기를 풀어 나아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열쇠로 등장하거나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 영화 속의 암호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상당한 의미와 흥미가 있을 듯하다.

고고학에 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등의 영화에서도 고문서 등에 담긴 암호와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 나아가는 과정은 자주 등장한다. 스필버그 감독,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이 영화는 1981년에 첫 편인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1981)가 나온 이후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찬사 속에 속편들을 선보이다가, 작년인 2008년에도 매우 오랜만에 네 번째 작품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2008)이 나온 바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로 분한 해리슨 포드가 교수 직분에 어울리지 않게 채찍을 휘두르며 악당들과 격투를 벌이는 액션 장면들도 관객의 눈길을 끌지만, 그에 못지않게 암호와 온갖 단서를 활용하여 미지의 대상에 접근하는 과정이 상당한 흥미와 극적인 긴장을 제공하곤 한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아류작 냄새를 풍기는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내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 2004) 역시 온갖 단서들을 추적하면서 미국 건국 초기 대통령들이 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보물 등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이다. 2004년에 개봉된 첫 편에서는 미국 독립선언문과 1달러짜리 지폐의 도안이 암호문 구실을 한다. 2007년에 개봉된 속편 비밀의 책(National Treasure: Book Of Secrets; 2007)에서는 링컨 대통령 암살범의 일기장 일부가 발견되면서, 공모자로 몰린 조상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주인공이 유럽과 미국에 흩어져 있는 실마리를 쫓아 모험을 지속한다는 내용이다.
전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와 함께 숱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댄 브라운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다빈치코드(The Da Vinci Code, 2006)에서도 퍼즐 맞추기 상자인 애니그램을 비롯해서, 피보나치수열, 그림과 시 구절 등 암호를 풀어 나아가는 대목들이 자주 등장한다.

암호가 전쟁 등에 이용된 것은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는데, 특히 20세기 들어와서 국가 간의 기밀 통신문 및 전쟁 시 군사 암호문 등의 비밀유지나 해독 여부는 전쟁의 승패와 국가 간 정치적 지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제 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1월에 독일의 암호문이 당시 적국인 영국에 의해 중간에 빼돌려져 해독된 사건이다.
즉 당시 독일의 외무장관이 워싱턴 주재 독일 대사에게 보내 멕시코에 전하려한 암호문에는, 만약 멕시코가 미국과 전쟁을 선포한다면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 멕시코가 과거 미국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암호 전문은 영국에 의해 해독되어 미국 대통령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어 미국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이후 미국의 참전으로 이어지면서 독일은 전쟁에서 크게 불리한 형세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암호를 둘러싼 각국 간의 뭍 밑 전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1941년 12월 7일, 일본 함대는 본국에 ‘도라 도라 도라(トラトラトラ; 일본어로 호랑이, 호랑이, 호랑이)’라는 암호 전문을 타전하였는데, 이는 진주만 기습 작전의 성공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바로 암호명과 같은 이름의 ‘도라 도라 도라(Tora! Tora! Tora!; 1970)’인데, 미국과 일본의 합작 영화로서 극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3국 동맹이 이루어지고 일본 군부는 미국 함대들이 모여 있는 군사 요충지인 진주만에 대해 전투기를 동원한 기습 공습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사령관은 전투기와 함대를 공습받기 쉽게 방치하는가하면, 비밀암호를 해독하여 일본의 전쟁 위협을 경고하는 자국 정보부의 경고마저 무시하게 되면서 결국 일본군 전투기의 무차별 폭격을 받고 진주만의 미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진주만 근처에 정박 중이면서 다행히 폭격을 피한 미군의 다른 항공모함과 전투기들이 일본군과의 전투에 들어가면서 태평양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은 ‘에니그마(Enigma)’라 불리는 상당히 우수한 성능을 지닌 암호 작성/해독 기계를 군 정보의 암호화 등에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암호해독기의 쟁탈 등을 둘러싼 첩보 스릴러, 전쟁 액션 영화로서 2000년에 제작된 ‘U-571(2000)’과 이듬해에 나온 '에니그마(Enigma; 2001)'가 있다.
조나단 모스토 감독, 매튜 맥커너히, 빌 팩스톤 주연의 U-571은, 1942년 지중해 근처에서 표류 중이던 독일 잠수함 U-571에 미군이 독일군으로 가장하고 접근하여 독일의 암호해독기를 탈취하려는 작전을 벌인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영화 에니그마(Enigma)는 로버트 해리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마이클 앱티드 감독이 더그레이 스콧, 케이트 윈슬렛 등을 주연으로 스크린에 옮긴 것으로, 역시 독일의 암호기계 에니그마의 암호를 깨뜨리려는 젊은 수학자의 분투 등에 관한 내용이다.
전쟁 중 암호의 해독을 위한 노력은 현대적인 컴퓨터가 등장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바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1912∼1954)이 개발한 콜로서스(Colossus)가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은 런던 근교에서 수많은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여 독일군의 암호 체계를 해독하려고 애썼고, 그 와중에서 앨런 튜링과 그 동료들은 1943년 12월에 1,800개의 진공관을 활용한 암호 해독기계인 콜로서스를 발명했던 것이다. 비록 암호 해독이라는 특수한 용도로만 쓰였지만, 세계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진 에니악(ENIAC)보다 앞서는 컴퓨터의 원조로서 콜로서스를 꼽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암호 전쟁에 관한 또 하나의 잘 알려진 영화로서, 오우삼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2002년 작 윈드토커(Windtalkers; 2002)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을 둔 전쟁 액션물로서,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 해병대를 도와서 암호 담당 무전병으로 활약한 나바호 인디언 출신 병사들과, 그들의 생명과 암호를 지키기 위해 동고동락하는 해병의 전우애 등을 그린 영화이다.
태평양 각지의 섬 등에서 한창 전투를 벌이던 미군 측의 암호 전송이 일본군에 의해 쉽게 해독되는 바람에 작전에 차질을 빚게 되자, 미국 해병대는 수백 명의 나바호족 인디언들을 암호병으로 선발하여 훈련을 시킨다. 나바호족의 복잡한 언어 체계를 군용 통신 암호로 활용하여 일본군이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암호를 주고받도록 하는 나바호 인디언 암호작전이었다. 각 나바호 병사에게는 노련한 해병대원들이 배치되는데, 그들의 임무는 일본군으로부터 나바호 암호 병사를 보호하는 것과 아울러, 만약 암호병이 일본군에 체포되는 상황에서는 암호 보호를 위해 그들을 사살해야 하는 것이었다. 나바호 암호병 벤 야지와 짝을 이룬 해병대원 조 앤더스(니콜라스 케이지 분)는 온갖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우정을 쌓아가지만, 결정적인 순간 조는 갈등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나바호 인디언 통신병들은 암호 전달 등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3줄의 영어를 기계적 방법에 의해 전달하는 데는 약 30분이 걸리지만, 나바호 언어를 이용한 암호로는 20초밖에 걸리지 않아 긴박한 상황에서도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2차 대전 중 미군의 한 해병연대 통신장교는 이틀간의 전투를 치르면서 800번 이상의 암호 전문을 주고받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미 국방부에서도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서 나중에 훈장을 수여하였고, 나바호 통신병들은 이후 한국전쟁에 이어서 월남전에도 참전했다고 한다.

암호가 주된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암호에 관해서도 흥미 있게 지켜볼만한 영화로서 외계인과의 교신을 그린 ‘콘택트(Contact; 1997)가 있다. 주인공인 앨리(조디 포스터 분)가 외계 생명체를 찾아 단파무전기에 귀를 기울인 끝에, 어느 날 직녀성으로부터 정체 모를 메시지를 수신하게 되는데, 수만 장의 디지털 신호의 암호를 해독할 결과 은하계를 왕래할 수 있는 운송 수단을 만드는데 필요한 설계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앨리가 수백 개의 안테나로 외부 전파를 수신하면서 쓰레기 전파와 메시지의 가능성이 있는 전파를 분류하는 대목도 나오는데, 그녀는 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신호가 규칙적인가 아니면 불규칙적인가를 분석한다. 즉 어느 정도 규칙적인 모습을 보이는 전파 신호는 정보가 담겨 있는 암호일 가능성이 큰데, 이는 암호의 본질과 관련된 한 측면을 엿보이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통신문을 암호화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문자들의 위치를 바꾸거나 다른 문자 및 숫자들로 치환하는 것인데, 복잡한 대수 방정식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예전에는 응용 분야를 찾기 어려웠던 정수론과 같은 순수 수학 분야가 암호학과 관련해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앞으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응용한 양자암호가 발달하게 되면, 더욱 안전하고 정교한 암호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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