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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반물질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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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09-10-0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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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주제로 한 영화 ‘천사와 악마(Angels & Demons; 2009)’를 보면, ‘반물질(反物質)’이라는 것을 폭탄처럼 이용해 사람들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유명한 SF 시리즈물 ‘스타트렉(Star Trek)’에서는 물질과 반물질의 반응을 이용한 초광속 엔진을 장착한 우주 전함이 등장한다.
이처럼 올해 국내에서도 개봉된 몇몇 영화에서 반물질이 소개되면서, 반물질이란 과연 무엇인지, 또는 반물질이 정말 엄청난 위력을 지니는 것인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반물질의 실체, 그리고 반물질과 관련된 영화 속의 장면들이 실제로 얼마나 구현될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영화 천사와 악마는 ‘다빈치 코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작가 댄 브라운이, 소설서로는 다빈치코드보다 앞서서 쓴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바티칸과 로마 시내 곳곳을 배경으로 한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과 스토리 전개가 인상적인 영화이다.
내용인 즉,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European Organization for Nuclear Research; CERN)에서 새롭게 진행시킨 소립자 충돌 실험 결과 다량의 반물질을 생성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과학자 중 한 명은 살해당하고 반물질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바티칸의 교황청에서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의식을 앞두고, 가장 유력한 네 명의 교황 후보가 일루미나티 집단에 의해 납치당해 행방이 묘연해진다.
카톨릭 교회와 대립해 온 과학자들의 비밀 결사 집단인 일루미나티는,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 등 과거에 지동설을 주장해 교회의 박해를 받았던 과학자들에 대한 보복을 감행하고자, 네 명의 교황 후보를 차례로 살해하고 CERN에서 훔친 반물질로 바티칸 전체를 폭파시킬 것이라고 협박한다.
하버드 대학 종교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이 바티칸 경찰로부터 각종 사건과 관련된 암호의 해독 등을 요청받고, CERN의 동료 과학자가 함께 일루미나티와 여러 단서의 추적에 나서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온 힘을 쏟게 된다.

이 영화는 흥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거리 있게 묘사한 대목이 더러 눈에 띈다. 일루미나티(Illuminati)가 마치 카톨릭 교회와 대립해 온 과학자들의 비밀 결사 집단으로 그린 것이 대표적이다. 광명회(光明會)라고도 불리는 일루미나티는 실제로 존재하기는 했지만,
1776년에 예수회 회원 중 한 사람에 의해 결성된 단체로서, 시기적으로 보나 인적인 측면에서 보나 갈릴레이의 종교재판 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마치 일루미나티가 현존하는 비밀 결사단체로서 테러리스트들을 지닌 조직처럼 묘사한 것은 영화적 흥미를 위한 지나친 과장 정도로 보아 넘겨야 할 것이다. 숱한 소설과 영화에서 등장하는 과거의 성당기사단이나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 등이, 권력 뒤에 숨은 그림자 세력으로서 세계를 지배하려 드는 조직처럼 묘사되는 음모이론 등과 비슷한 맥락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Higgs) 소립자에 대한 과학자와 카톨릭 사제 간의 해석과 뉘앙스 차이라든가, 과학과 종교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화해에 관한 영화의 메시지는 주목해 볼만한 대목으로 보인다. 또한 거대 강입자 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 LHC)와 같은 대형 충돌형 가속기로 CERN에서 소립자 충돌 실험 과정을 묘사한 장면 등도 눈여겨 볼만하다.

반물질 관련 부분이 자주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잘 알려진 영화는 바로 스타트렉이다. 스타 트렉은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TV 시리즈로 제작, 상영되어 큰 인기를 모았고, 그 후 영화화 및 재방영, 속편 시리즈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TV 시리즈로 상영된 적이 있고, 올해에는 영화 ‘스타트렉: 더 비기닝’ 편이 개봉된 바 있다.
스타 트렉에는 23세기에 우주를 탐험하는 '엔터프라이즈(Enterprise)'호가 등장하는데, 이 우주전함은 초광속 엔진, 순간이동 장치 등의 온갖 최신 과학기술과 첨단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 스타트렉의 엔터프라이즈호에서 반물질은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는데, 초광속을 낼 수 있는 물질과 반물질의 반응을 이용한 엔진은 초광속의 빠른 속력을 가능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반물질 탄두를 탑재한 광자 어뢰(Photon Torpedo)는 작은 행성 하나를 순식간에 통째로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지닌다.

그렇다면 이들 영화에서 나오는 반물질의 실체 및 활용 가능성은 얼마나 사실과 가까울까? 반물질 하면 매우 초자연적이거나 신비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이미 존재하는 것이 확인된 물리적 대상이다.
반물질을 처음으로 예견한 물리학자는 코펜하겐 학파의 일원으로서 양자역학의 완성에 크게 기여한 영국의 디랙(Paul Adrien Maurice Dirac; 1902~1984)이다. 1928년에 그가 세운 전자방정식에서, 전자의 에너지를 나타내는 양과 음의 해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양전자의 존재를 가정하게 되었다. 그 후 미국의 물리학자 앤더슨(Carl David Anderson; 1905~1991)은 1932년에 우주선의 궤적을 촬영하던 중 양전자를 발견하게 되었고, 퀴리부인의 큰딸과 사위인 이렌과 졸리오 퀴리부부가 인공 방사선 생성 실험 등을 통하여 양전자의 방출을 확인하면서 반입자의 실체가 더욱 명확히 알려지게 되었다.
양성자와 질량은 같지만 음의 전하를 지니는 반양성자, 전자와 질량은 같지만 전하는 반대인 양전자 등이 바로 반물질을 이루는 반입자들이며, 중성자에 대응하는 반입자로서 전하가 없는 반중성자도 있다.

영화 천사와 악마의 첫 장면에 나오는 것처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나 미국 페르미연구소와 같은 거대한 충돌형 입자가속기 시설에는 반입자를 만들어내고 저장하는 장치와 방법이 마련돼 있다.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가속된 고에너지의 입자들이 충돌할 경우, 많은 종류의 입자들이 생성된다. 물론 그 중에는 반양성자, 반중성자, 양전자 등 반입자들도 있다.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에 대응하는 반입자가 모두 있으므로, 이들로 구성된 반원자도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반원자들이 모인 것이 바로 반물질이라 할 수 있다. CERN에서는 실제로 반양성자와 양전자들로 구성된 수소 반원자를 만든 적이 있다.
또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반물질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큰 병원에서 뇌질환의 진단 등에 주로 쓰이는 양전자방출 단층촬영장치(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는 반입자의 하나인 양전자를 이용한 것이다. 즉 여러 기본 대사물질에 양전자를 방출하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표시하여 인체에 투여한 후, 양전자와 물질간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방사선 검출하여 단층촬영 영상을 구현하는 원리이다. PET는 인체의 생화학적 변화를 영상화할 수 있으므로, 뇌신경계 질환과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 악성 종양 등을 진단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면 영화에서처럼 반물질을 이용하여 현재의 핵폭탄을 능가하는 대량살상무기를 만들거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순수하게 이론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먼 장래에는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이나 다른 여건 등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그럴 필요성도 찾기 어렵다.
반양성자나 양전자 등 반입자들은 물질의 입자와 반응하면 감마선 등 높은 에너지의 빛(광자)을 내면서 없어진다. 이른바 ‘쌍소멸(pair annihilation)’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이 경우 여기서 결손 된 이들의 질량과 생성된 에너지 사이에는 아인슈타인이 밝힌 유명한 질량 에너지 등가 공식, 즉 E=mc2의 관계가 적용된다.

띠라서 만약에 반물질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잘 관리할 수만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현재의 핵폭탄보다 훨씬 위력이 크고 효율이 높은 대량살상 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은 핵분열 혹은 핵융합의 과정에서 질량 결손에 의한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 것이므로, 동일한 질량 에너지 등가 공식을 따르지만,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비율은 매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입자와 반입자가 쌍소멸을 통해 에너지로 바뀌는 비율은 거의 100%라고 볼 수 있으므로, 동일한 양의 원료라면 반물질을 이용한 폭탄이 훨씬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원자력 에너지 및 핵폭탄의 원료인 우라늄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반면, 반물질은 자연 상태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아 대량으로 확보하기가 극히 어렵다. 게다가 반물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많이 들고, 보관과 관리도 대단히 까다롭다. 반물질은 물질과 만나기만 하면 곧바로 반응하여 쌍소멸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물질을 보관하는 좋은 방법은 토카막 장치와 유사하게, 진공 상태에서 강력한 자기장으로 반입자들을 띄워서 물질과의 반응을 차단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것도 전하를 지닌 양전자나 반양성자만 가능하고, 전하가 없는 반중성자는 이런 방식도 쓸 수 없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처럼, 휴대가 가능할 정도의 크기의 용기 안에 다량의 반입자나 반물질을 보관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너무도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주 공간에 반물질이 매우 풍부해 쉽게 얻을 수 있다면, 미래에는 스타트렉의 엔터프라이즈호와 같은 반물질 반응 엔진의 우주선을 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주에는 반물질이 그리 많지 않다. 천문학자들은 혹시 우주 어딘가에 반물질로만 이루어진 은하계 등이 있는지 관측하려 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그 증거가 발견된 적이 없다.
현재의 우주에 반물질보다 물질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수수께끼의 하나이다. 태초에 빛, 즉 광자가 있어서 쌍생성을 통하여 물질이 만들어졌다면, 우주에는 입자와 같은 양의 반입자가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대폭발 이론에 의하면 현재 와 같은 정도의 반입자가 존재하려면, 물질이 만들어지던 당시에 입자와 반입자 10억 개 당 입자가 한 개 정도 높은 비율로 생성되었어야 한다고 한다. 물리학자들은 이른바 ‘CP 대칭성 깨짐 현상’ 등에 의해 그 원인을 설명한다.
반물질은 현대 물리학에서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지만, 이를 새로운 무기나 에너지원으로 응용하기에는 요원할 듯하고, 그보다는 우주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보다 잘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줄 듯하다.

최 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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