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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터법과 첨단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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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18-11-25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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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의 공감의 과학] 미터법과 첨단과학기술

며칠 전에 폐막된 국제도량형총회의 의결에 의하여, 질량을 비롯해 전류, 온도 등의 기본단위에 대한 정의가 바뀌게 된다. 물론 킬로그램(kg) 등의 정의가 바뀐다고 해서 우리 일상생활에 갑자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학을 비롯한 첨단과학기술에서는 큰 의미를 지닌다.
도량형의 통일 및 표준의 관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경제적으로도 늘 중요한 관건이었다. 일찍이 중국의 진시황은 도량형제도 또한 통일했고, 조선시대 암행어사들이 지니고 다녔던 놋쇠로 된 자인 유척(鍮尺)은 지방관리들의 전횡 등을 감시하는 도량형의 표준이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미터법은 프랑스 대혁명 직후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여 혁명정부의 사업으로 추진하여 제정된 것이다. 즉 지구의 북극에서 적도까지 거리의 1천만분의 1을 ‘1미터’, 물 1리터의 질량을 ‘1킬로그램’으로 정하고, 길이 및 질량의 표준 원기(原器)와 복제품을 각각 제작, 공급하여 전 세계로 미터법을 파급시켰다.

여전히 미터법을 잘 쓰지 않고 마일, 파운드 등을 고수하는 미국은 이로 인하여 종종 값비싼 대가를 치르곤 한다. 즉 지난 1999년에 화성기후 탐사선의 제작진과 조종팀이 미터계와 인치계라는 서로 다른 표준단위를 사용하는 착오로 인하여, 1억 달러가 넘는 화성 탐사선이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불타버린 황당한 사고를 일으킨 적도 있다.
그러나 지구의 모습이 영원불변은 아닐 뿐 아니라, 백금과 이리듐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원기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미세하게 변하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길이 1미터의 정의도 그간 두 차례나 바뀌어서, 현재는 진공에서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삼아 정하였다. 또한 시간의 기본단위인 ‘1초’ 역시 지구의 자전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세슘(Cs) 원자에서 발생하는 특정 파장 빛의 진동 주기를 기준으로 정의하였다. 이번에 바뀌는 1킬로그램의 정의 역시 불변의 물리 상수인 플랑크 상수(h)를 기준으로 하여 새롭게 정해졌다.
이처럼 도량형의 기준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원자시계 등 정밀 측정기술이 발전한 덕분인데, 역으로 보다 정확한 표준단위의 확립은 기초과학과 첨단기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최성우 과학평론가

[중앙일보 201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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