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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기원과 진화의 결정적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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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19-02-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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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대중화가 나름 활발히 진행되면서, 우주와 지구의 탄생, 생명과 진화, 인류와 문명 등 이른바 ‘빅 히스토리’에 대한 대중적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관련된 서적들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들 빅 히스토리에는 ‘기막힌 우연’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생명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현대 인류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우연과 행운의 결정적 순간들 중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를 필자 나름대로 꼽으라고 한다면, 최초 생명의 탄생, 진핵세포의 출현, 그리고 소행성 충돌에 의한 공룡 멸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해 살펴보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지구상에서 최초의 생명이 탄생한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여전히 완벽한 이론은 없다. 그러나 이른바 오파린 가설 즉 화학적 진화의 결과로서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주장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구소련의 과학자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1894-1980)과 영국의 할데인(John B. S. Haldane; 1892-1964)은 메탄, 암모니아 및 수증기 등과 같은 원시지구의 대기환경으로부터 화학반응이 일어나서 아미노산 등 생체를 구성할 수 있는 유기물이 합성되었다고 일찍이 주장하였다. 이는 1950년대에 전기 방전에 의해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을 생성하는 유리-밀러(Urey-Miller) 실험에 의해 상당 부분 입증된 바 있다.
 그리고 이들 원시 유기물이 바다에 녹아서 아미노산 등이 중합하여 코아세르베이트 (Coacervate)를 형성하고, 이것이 복제 능력을 갖춘 원시생명체로 발전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생명체의 발원지로 유력한 곳은 바다 밑바닥에 지각이 갈라진 곳에서 뜨거운 물과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열수 분출공’이다. 생명체에 필요한 화학 물질, 에너지, 그리고 물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는 최적의 장소이지만, 이로부터 유기 분자들을 감싸서 보호할 ‘세포막’이 탄생하고 DNA에 의해 자기증식을 시작하기까지는 역시 수많은 우연과 행운이 작용해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최초의 생명체 탄생 못지않게 기막힌 우연이 따른 경우로는, 진핵세포의 출현, 즉 단세포생물로부터 다세포생물로 발전해가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약 38억년 전 지구 상에서 생명체가 출현한 이후로도, 십 억년 이상 동안 모든 생물은 원시적인 원핵생물(原核生物; Prokaryote)의 형태를 면하지 못하였다. 원핵생물이란 원시적인 세포핵을 가지는 생물로서 핵산(DNA)이 막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고 미토콘드리아 등의 구조체도 없으며, 대부분 단세포로 되어있다. 이에 반해 보다 진화된 진핵생물(眞核生物; Eukaryote)은 세포에 막으로 싸인 핵을 가진 생물로서 미토콘드리아 등의 구조체가 발달하여 존재하며, 세균과 남조류를 제외한 모든 생물이 이에 해당한다.     
 진핵생물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약 20억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그 과정이 매우 극적이며 대단한 우연을 포함하고 있다. 즉 그 이전까지는 단세포의 원핵생물들이 서로 잡아먹으면서 번식을 하였을 것인데, 이 무렵에 한 원핵생물이 섭취한 ‘먹이’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즉 잡아먹힌 생물이 소화되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산소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생산하면서 자신을 먹은 생물과 공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덕분에 원래의 생물 역시 훨씬 큰 에너지를 얻으면서 보다 효율적인 대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이렇게 탄생한 진핵생물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는 다른 세포들을 연결해 대형 생명체를 만들 수 있었고, 산소를 이용하여 먹이를 분해할 수 있게 되면서 이후 더욱 고등의 식물과 동물 등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처음에 먹이로 섭취되어 자신을 먹은 생물과 공생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라 불리는 세포내 소기관으로서, 세포호흡을 담당한다. 미토콘트리아는 이중막과 핵의 DNA와는 또 다른 독자적인 DNA를 갖는 특징 때문에 원래는 독립된 세균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진핵생물의 탄생 배경으로서 설명되는 이른바 ‘세포내 공생설(Endosymbiosis)’은 오늘날 널리 인정받고 있다.

 진핵세포의 출현 이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번성하고 때로는 멸종을 겪기도 했던 중생대 말엽에, 또 한 번의 극적이고도 우연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약 6천 5백만 년 전 어느 날, 도시만한 크기의 소행성 하나가 지구에 충돌하면서 커다란 재앙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른바 ‘KT 멸종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지구상에서 공룡을 비롯한 75%의 생물들이 순식간에 멸종하였고, 포유류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신생대가 시작되었다.
 만약 이와 같은 소행성 충돌로 인하여 공룡들이 멸종하지 않았더라면, 포유동물은 중생대처럼 거대한 공룡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을 피해서 간신히 생존을 이어가야만 했을 것이고, 따라서 인류는 출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공룡의 시대라 불리는 중생대가 2억3천년만 전부터 6천5백만년전 까지이니, 공룡이 멸종한 이후의 세월보다도 공룡이 생존했던 시기다 훨씬 더 길다.
 공룡의 멸종을 부른 소행성의 충돌은, 물론 이 소행성이 지름 10km 정도의 매우 거대한 것으로서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폭발시키는 것보다 만 배 이상의 강력한 충격을 가했던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행성의 크기 못지않게, 그것이 충돌한 지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즉 소행성이 충돌했던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일대는 거대한 유황 매장 지역으로서, 더욱 치명적인 피해를 가중시켰던 것이다.
 공룡에게는 큰 불운, 인류에게는 행운(?)이었던 이 사건 역시 기막힌 우연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즉 빠르게 자전하는 지구를 감안한다면, 만약 이 소행성이 조금 일찍 또는 조금 늦게 지구 표면에 충돌하였더라면, 대서양이나 태평양의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면서 그렇게 큰 재앙은 일으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류는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SETI) 등을 통하여, 우리와 같은 지적인 고등생명체가 우주의 다른 곳에 과연 존재하는지 여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세포에서부터 지적인 고등동물로 진화하기까지는 필자가 위에서 든 세 가지 이외에도 숱하게 많은 우연과 행운이 따라야만 했을 터인데, 그와 같은 기막힌 우연이 다시 반복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By 최성우

이미지1: 전기 방전에 의해 유기물을 합성하는 유리-밀러의 실험_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이미지2: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을 가상하여 그린 시뮬레이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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