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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르거나 과장된 과학기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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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20-01-31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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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온 핵융합처럼 해외의 연구뿐 아니라, 국내에서 이룩된 획기적 연구성과라고 주장한 것들 중에서도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언론에 보도되거나,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어 발표된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2005년 9월, 국내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물리학자가 오랫동안 학계의 미해결 과제였던 이른바 ‘금속-절연체 전이(MIT) 가설’을 실험을 통해 입증해냈다고 발표하였다. 대부분의 신문, 방송들은 대문짝만한 머리기사 등으로 ‘100조원 가치의 연구성과’, ‘노벨 물리학상 확실시’ 등의 보도를 쏟아냈고, 심지어 어떤 언론은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 발견에 비견된다는 낯뜨거운 기사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너무 과장되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이어지게 되었다. 해당 물리학자가 관련 논문을 발표한 것은 사실이며 차세대 반도체 분야 등 산업적으로 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그 경제적 효과를 확정적으로 예단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그 당시가 황우석 박사가 스타과학자로 각광 받으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던 시절이라, 해당 연구기관 등에서 ‘IT계의 황우석’을 띄우려 무리를 하지 않았나 추측되기도 하였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성급한 보도기사가 단골로 나오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수학계의 풀리지 않은 난제를 해결했다.’는 식의 주장이다. 특히 지난 2000년 미국 클레이수학연구소가 해결에 100만 달러씩의 상금을 내걸고 발표한 ‘밀레니엄 7대 수학 난제’가 자주 거론된다.
 2018 년 9월, 영국의 수학자 마이클 아티야(Michael Atiyah; 1929-2019)가 7대 수학 난제 중의 하나인 ‘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을 증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수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을 들썩이게 만든 적이 있다. 리만 가설이란 1과 그 수 자신으로만 나누어떨어지는 수인 소수(素數)들의 분포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의 1859년 발표 논문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제타(ζ) 함수'로 불리는 복소함수의 특별한 성질에 관한 것이다.
 아티야 박사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 메달과 아벨상을 받는 원로 수학자로서 실제 증명 여부가 주목되었으나, 당시 90세에 가까운 고령이어서 수학계에서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아티야 박사가 이전에도 비슷한 주장을 했으나 오류를 범한 적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현재의 암호 방식이 대부분 소수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으로 인하여, 아티야 박사가 리만 가설을 실제로 증명했다면 “앞으로 소수의 비밀이 모두 풀려서 암호체계가 무너지고 큰 혼란이 올 것이다”라는 이른바 ‘암호 괴담’을 낳기도 하였다. 

 이처럼 수학의 난제를 해결했다는 식의 언론 보도는 국내에서도 예전부터 데자뷔처럼 되풀이된 바 있다. 약 10여년 전, 국내의 어느 수학자는 또 다른 7대 수학 난제의 하나인 ‘P대 NP 문제(P vs NP Problem)’를 풀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해외의 저널에도 실렸다는 그의 주장을 검토한 수학자들은 한마디로 일축하였고, 당연히 클레이수학연구소의 심사도 통과하지 못하였다.
 7대 수학 난제에 대해 수학자 중 누군가가 해법을 제시하면 약 2년간의 검증과정을 거치게 되고, 동료 수학자들의 검증을 통하여 해법에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상금을 받을 수 있다. 7대 난제 중에 현재 유일하게 해결된 것은 ‘푸앵카레 추측(Poincare Conjecture)’밖에 없다. 지난 2002년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Grigory Perelman)이 제시한 푸앵카레 추측에 관한 해법이 동료 수학자들의 검증작업을 통하여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는 시골에 은둔하여 곤궁하게 살아가던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100만 달러의 상금과 필즈 메달 수상을 거부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몇 년 전에는 국내의 원로 물리학자 한 분이 역시 7대 수학 난제의 하나인 ‘양-밀스 이론과 질량간극 가설((Yang-Mills and Mass Gap)’을 증명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클레이 측에서 명시적으로 요구한 공리적 해결(Axiomatic solution)을 담고 있지 않아서 역시 인정받지 못한 상황으로서, 이 문제에 관한 물리학 논문을 쓴 것을 수학의 난제를 증명했다고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여겨진다.   

 올해 1월 초, 국내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던 수학자가 또 다시 리만가설을 증명했다고 주장하여, 상당수의 신문이 그 결과가 기대된다는 식의 보도를 하였다. 그러나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저명 수학자는 “수학계의 방식은 검증을 거친 뒤 저널 심사를 거쳐 언론에 공개되는 것으로서, 전문가 검증 없이 일방의 주장만을 담아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언론의 자중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이번에 리만가설을 증명했다고 보도된 수학자는 바로 10여년 전에 ‘P대 NP’를 풀었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당사자였다. 언론에서 기초적인 사실관계라도 확인을 해 보았더라면, 또는 동료 수학자 등에게 최소한의 자문이나 조언을 구했더라면 이런 해프닝은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검색해본 결과 다행히도 이른바 메이저 신문이라 꼽히는 일부 언론과 중앙의 지상파 방송은 이런 보도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전문성을 지닌 과학전문 기자 등이 검증을 했거나 데스크 등에서 제대로 잘 거른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과학기술인들이 자신의 뛰어난 연구성과를 잘 알리고 홍보하는 것은 과학기술과 대중 간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일로서, 더욱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검증 이전에 성급하게 언론에 공표하기에만 급급하거나 지나치게 과장된 보도를 일삼는다면, 도리어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초래하고 스스로 외면받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크다.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과학기술인과 언론이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금속-절연체 전이 현상의 설명도 ( ⓒ Tem5psu )
이미지2: 밀레니엄 7대 수학난제의 하나인 P-NP문제를 설명하는 다이어그램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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