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골격 로봇의 선구자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21-08-3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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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사이버네틱스의 원조(4)
최근의 SF영화나 액션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 중의 하나로서 강화복(Powered suit)이 있다. 엑소슈트(Exosuit) 또는 동력형 외골격(Powered exoskeleton)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몸에 착용하여 사람과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로봇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아이언맨(Iron Man)이나 어벤져스 시리즈에 자주 나오는 아이언 슈트, 그리고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 2014)’에서 주인공인 톰 크루즈가 착용하는 외골격 등은 각종 무기와 인지시스템이 장착되어 막강한 전투력을 과시한다. 영화 아바타(Avatar; 2009)나 디스트릭트9(District 9; 2009) 등에도 이와 유사한 것이 등장하는데, 사람 몸보다는 훨씬 커서 탑승하여 조종하는 전투 로봇에 가까워 보인다.
 강화복 또는 외골격 로봇은 더 이상 영화의 소재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분야에서 실용화가 진행된 단계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군 당국에서는 무거운 완전 군장을 한 상태에서도 작은 무게만을 느끼면서 빠르게 뛸 수 있는 군사용 외골격 또는 하지착용형 강화복을 개발, 적용하려 하고 있다. 의수나 의족을 대행하거나 신체가 마비된 장애인 또는 근력이 매우 떨어진 노약자를 걷거나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의료용 강화복도 이미 활용되고 있고,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무거운 물건들을 들거나 옮기기 쉽게 해주는 산업용 강화복도 있다.

 이러한 강화복 또는 외골격 로봇의 원조를 처음으로 개발한 선구자로는 미국의 공학자 랄프 모셔(Ralph Mosher)가 꼽힌다. 1920년에 미국에서 출생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당시 세계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전시용 로봇에 흥미를 지녔다고 한다. 특히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에 등장했던 로봇 일렉트로(Elektro)는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는가 하면 각종 퍼포먼스도 선보일 수 있어서 큰 인기를 끌었는데, 랄프 모셔 역시 이 로봇에게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는 뉴햄프셔 대학에 진학해서 기계공학을 전공하였는데, 그가 대학에서 공부하던 무렵은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등을 중심으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새로운 학문이 정립되던 시기였다. 그리스어로 ‘배의 키를 잡는 자’를 뜻하는 사이버네틱스의 원래 정의는 ‘스스로 최적의 상태 또는 의도하는 특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생물 및 기계를 포함하는 계에서 제어와 통신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공학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사이버네틱스를 통하여 기계와 인간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거나 융합을 이룸으로써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인데, 모셔는 이에 크게 심취하였다.
 모셔는 대학 졸업 후에 미국 굴지의 대기업으로 꼽히던 제너럴 일렉트릭(GE)사에 입사하여 로봇의 개발 등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그의 연구실에는 미군의 관계자들도 자주 방문하여 관심을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은 원자폭탄 이외에도 군함이나 항공기 등 다양한 분야에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할 계획이었는데,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능을 내뿜는 원자로의 유지 보수 등에 활용할 로봇을 개발하기 위하여 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모셔는 미 공군의 의뢰를 받고 이러한 로봇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는데, 인간의 원격 조작에 의해 두 개의 팔을 움직일 수 있는 핸디맨(Handyman)을 1959년에 선보였다. 최초의 외골격 로봇 또는 사이보그라 볼 수 있는 핸디맨은 언론의 상당한 주목을 받았고, 향후 달 여행 등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또한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미 육군은 정글이나 산악지대에서 무기나 탄약, 식량 등의 보급품을 대량으로 운반할 수 있는 차량형 로봇의 개발을 모셔에게 요청하였다. 그리고 미 해군에서도 항공모함에서 수백 킬로그램 이상의 무거운 폭탄을 폭격기에 효율적으로 탑재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하였다. 제너럴 일렉트릭의 모셔 연구팀은 미국 육해공군과 모두 계약을 맺고 거액을 지원받으면서, 수십 명의 개발 인력을 투입하여 군사용 로봇 시제품들을 제작하여 선보였다.
 모셔는 1968년에 팔로 폭탄 등의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을 수도 있는 외골격 로봇 하디맨(Hardiman)을 완성하여 선보였다. 시연회에서 조종자는 6-7kg 정도의 작은 힘을 들여서 무게 220kg의 추를 들어 올리는 데에 성공하여 하디맨은 큰 주목을 받았다. 1969년에는 차량형 로봇 이른바 워킹 트럭(Walking truck)도 완성하였는데, 정글이나 산악지대의 장애물을 뚫고서 네 다리를 움직여 시속 8km 정도의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조종자는 양손을 사용하여 로봇의 앞다리를 움직이고, 발로 페달을 밟아서 로봇의 뒷다리를 조작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외골격 로봇 하디맨이나 워킹 트럭은 시제품으로는 관심을 끄는 데에 성공했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쓰일 수 제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디맨은 유압 장치를 이용하여 최대 350kg의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었지만, 로봇 자체의 무게가 팔 부분만 해도 700kg에 달했기 때문에 실용화되기 어려웠고, 끝내 경량화되지도 못하였다. 워킹 트럭 역시 힘을 제공하는 유압시스템이 항상 외부와 연결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실제 전쟁터에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1971년 이후 군 당국과 제너럴 일렉트릭과의 계약이 종료되고 자금지원이 중단됨에 따라, 외골격 로봇의 원조들은 기술적 가능성을 선보이는 것으로 끝났다. 1960년대에는 마이크로프로세서나 소형화된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의 시대였으므로, 기계적인 유압시스템만으로 사람의 힘을 증폭하여 기계와 로봇을 움직이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셔는 기계와 인간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사이버네틱스 기술을 일찍이 구현한 선구자로서 그가 개발한 것들의 의미를 결코 간과할 수 없으며, 오늘날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것이다.

                                                        By 최성우

이미지1: 랄프 모셔가 제작한 하디맨의 시제품
이미지2: 1939년 뉴욕 박람회에 등장했던 로봇 엘렉트로와 로봇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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