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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둘러싼 국제적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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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작성일2021-12-3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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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물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분쟁 또한 매우 뿌리가 깊다. 물을 남보다 먼저 차지하기 위한 다툼은 예로부터 개인 간이건 집단이나 국가 간이건 가리지 않고 일어났고,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서도 자기에게만 이롭게 멋대로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제 논에 물 대기(我田引水)’라고 비유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물을 둘러싼 국제적 분쟁은 끊이질 않고 있는데, 특히 나일강이나 메콩강처럼 여러 나라를 가로질러 흐르는 긴 강의 경우 문제가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일강의 하류에 위치한 이집트는 어느 나라건 상류에서 강물을 남용하거나 강의 흐름을 바꾸려 한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고, 실제로 공중폭격 직전의 일촉즉발 위기까지 겪은 적이 있다. 
 중국에서 발원하여 동남아의 여러 나라를 거쳐서 남중국해로 흘러가는 메콩강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국이 메콩강 상류에 여러 개의 댐을 건설한 이후로 하류에 위치한 캄보디아와 베트남 등이 물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로 세계적으로 가뭄 등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물을 둘러싼 분쟁 역시 갈수록 격화되는 추세이다. 
 예전부터 물이 부족했던 중동 및 이스라엘 인근 지역은 실제로 물로 인하여 전쟁이 일어났고, 수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낳은 시리아 내전 및 역시 물 부족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뿐 만 아니라 물 부족과 가뭄이 여러 다른 국제적 분쟁들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물의 흐름을 추적하면서 이것이 국제 정치관계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온 지리학자에 따르면, 지난 ‘아랍의 봄’과 같은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도 호주와 중국의 가뭄, 이에 따른 국제 밀 가격의 폭등 등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이다. 즉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오늘날, 특정 지역의 가뭄과 이상고온에 따른 흉작 등이 나비효과에 의해 마치 도미노처럼 다른 연쇄적인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물 문제가 전 세계의 정치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인공위성의 지속적인 관측 결과 상당수가 사실로 드러났다. 미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는 2002년부터 이른바 ‘중력복원 및 기후 실험(Gravity Recovery and Climate Experiment)’ 위성, 즉 그레이스(GRACE)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독특한 인공위성을 통하여 지구상에서의 물의 흐름과 그 양을 정밀하게 추적해왔다. 그레이스 위성은 단면이 사다리꼴인 두 대의 위성으로 구성되는데, 폭풍우 등으로 인하여 물이 갑자기 많아진 지역에서는 그 무게로 인하여 위성이 아래로 끌리기 때문에, 가속이 되면서 두 위성 간의 거리가 변하게 된다. 따라서 위성들의 위치 변화를 정밀측정하여 계산하면 지표면에서의 미세한 중력변화를 통하여 물의 분포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의 그레이스 위성은 예상 운용 연한을 훨씬 넘긴 지난 2017년에 퇴역하였고, 2018 년부터는 그 후속 위성으로서 성능이 더욱 우수한 그레이스-포(GRACE-FO)가 궤도를 돌면서 빙하의 융해 등 지구상에서 물의 변화를 추적하고 있다. 그레이스 위성의 탁월한 점은 지표면의 물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땅속에 있는 지하수의 변화량까지도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지하의 대수층에는 강과 호수 등 빙하가 아닌 액체 상태로 지표면에 존재하는 모든 민물의 양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은 지하수가 있고, 그중 상당수는 오랜 세월 동안 고여 있는 이른바 화석수(化石水; Fossil water)이다. 약 백여 년 전부터 엔진 펌프를 통한 지하수의 개발과 이용이 본격화된 이후로 현재 농업용 관개수의 반 정도가 지하수로부터 얻어지며, 이러한 지하수가 전 세계 식량 공급량의 1/5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레이스 위성으로 세계 곳곳에서 지하수의 변화를 측정해본 결과, 일부 분쟁지역 등에서 지하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즉 지난 2006년 무렵 500년 만의 대가뭄을 맞은 시리아에서는 농부들이 대수층에서 지하수를 과도하게 끌어 쓰기 시작하였고, 그레이스 위성으로 시리아 지역을 실시간 관측한 결과 지하수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고갈되어 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중서부 지역 등 그동안 지하수가 매우 풍부하게 고여 있었던 곳들까지도 최근 지하수가 크게 줄어들거나 일부 메말라가는 것으로 밝혀져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센트럴 밸리는 미국 농작물의 1/4 이상이 생산되는 곡창지대인데, 제트추진연구소(JPL)의 과학자들이 그레이스 위성으로 대수층의 상황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그동안의 가뭄과 지하수 사용량의 증가로 그곳 대수층의 일부가 저류 기능을 영구적으로 상실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 연구 결과는 미국 지구물리학회의 저널에 게재된 바 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큰 규모인 오갈라라 대수층(Ogallala Aquifer)마저도 일부 지역은 위기에 처해 있다. 오갈라라 대수층은 미국 텍사스(Texas)주부터 사우스다코타(South Dakota)주까지 중서부의 8개 주를 가로질러서 형성된 거대한 대수층인데, 남쪽 등 일부 지역은 이미 지하수가 고갈되어 농부들이 농사를 포기하였다고 한다. 캔자스(Kansas)주의 세인트 프랜시스(St. Francis) 역시 오갈라라 대수층 위에 위치하며 주민들은 소에게 먹일 곡물 등을 대대로 재배해 왔는데, 앞으로 더는 농사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즉 지난 40-50년 동안 지하수를 마구잡이로 끌어 써 온 결과 그곳 지하 대수층의 1/3이 이미 메말라 버렸고, 그동안 빼서 쓴 물을 다시 보충하려면 무려 6천 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꼭 미국 사람들만이 자국의 대수층에서 지하수를 퍼서 쓰는 것은 아니고, 이 역시 국제적인 물의 흐름이나 물 분쟁과 관련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른바 가상수(假想水; Virtual Water) 및 물 발자국(Water Footprint)의 개념과 함께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By 최성우

이미지1: 중력복원 및 기후실험 위성 그레이스(GRACE)의 모습
이미지2: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인 미국의 오갈라라 대수층 ( ⓒ 570aj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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