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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만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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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omon_s house 작성일2010-06-1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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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일없어 어슬렁어슬렁 하다 시집 한권을 읽었습니다.
평소 시에 큰 취미 없지만, 인터넷이나 책에서 인용된 시 한편 두편 읽던 기억을 떠올려
도서관에서 빌려진 일 별로 없는 듯 깨끗한 낯짝 만인보 한권을 빌려(1986년에 시작으로 올해로 30권이 완간되었다 합니다. 연작 시집입니다) 저도모르게 한권을 뚝딱했네요.. 어렵지 않고 재미있어요.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아픔이 있습니다.
정말 추천드립니다.


'대기 왕고모'

들길로 시오리길 대기마을에서
왕고모 올 때는 길 가득합니다
그 왕고모가 할머니 죽은 날
오자마자 큰 몸뚱이 들썩이며 울부짖었읍니다
땅도 치고 허벅 치고 울부짖더니
성님 이게 웬일이여
나하고 회현장에서 만나
국수가 오래 불어터져서 우동 된 놈 사 먹고
또 언젠가는 막걸리 한 사발에
국 뜨거운 국말이밥도 사 먹던 일 엊그제 같은데
하마 5년 6년 썸뻑 지나갔구려
작년 가을 왔을 때
성님 하는 말이 몇 달만 있으면
이놈의 병 썩 물러가서
내 사대삭신 훨훨 날아다닐 것이라고 하더니
어디로 날아가셨소그려 아이고 성님# 아이고 성님
인제 가면 언제 오려오
개똥밭에 쇠똥밭에 살아도 이 세상이 좋은데
성님 저승 가서
그 큰 저승 가서
어느 회상에 찡겨 사시려오
아이고 대오 아이고 아이고
이렇게 사설깨나 늘어놓으며 애통해하다가
콧물 한번 훑어내고 문득 뒤돌아보니
거기에 송말에서 시집 온 재종동생의 댁 보고는
이제까지의 청승 다 어디 갔나 싶게
아이고 송말사람
자네 얼굴 한번 환하네그려
애들 잘 크지
논 한 배미 또 사들였다며
그 우물 새로 앉히고 자네 집 운이 돌아왔네그려
슬픔이란 것이 하나도 슬픈 것이 아니라
다음 고개 넘어가면
안 보이는 골짜기 개울 아닌가 한판 판소리 아닌가
참 초상집 이런 아낙 들어서야 그나마
술맛 있고 사자밥 밥맛 있지
안 그런가


ps. 인터넷이나 다른 책에서 한편 두편 읽는 것만으로 이 시를 제대로 느낄 수는 없을것 같아요. 연작시집인 만큼 각 시들이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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