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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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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ritia 작성일2013-01-06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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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가 아무런 사회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부속 기능으로 전락하게 되고..." (pp. 128)

 
최장집 교수가 쓴 얇은 에세이집?이다. 이 책의 앞부분 2/3 는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신용불량자 등을 찾아가 만나며 쓴, 미시적 관찰의 기록들이며, 뒤쪽에 세 꼭지의 종합 논의가 붙어 있다. 169쪽에 지나지 않아 후루룩 읽을 수 있고 또 술술 잘 읽히지만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고 생각은 후루룩 넘기기 힘들다.

이 책은 '경제 민주화'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는 여야 정당의 슬로건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등장할 뿐, 직설적으로 '경제 민주화란 이거야' 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경제 민주화'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최장집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민중에서 시민으로]를 읽고 나서 그 연장선상에 이 책을 놓으면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노동의 문제를 전면에 세우는 것은 최장집으로서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일이다. 이후 한국의 민주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천착하며 잠시 제쳐 두었던, 그러나 잊은 적 없었던 주제이다. 최장집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민주주의의 발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었다. 혹자는 (특히 조선일보는) 최장집이 노무현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고 친노는 그를 변절자라 욕하기도 했다. 진보 진영을, 좀 더 정확히는 386이라 불렸던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들의 패권주의와 NL계열이 장악한 민노당의 '노동 외면'을 '아프게' 비판했다는 이유였다. 정년을 목전에 두고 학문적으로 절정의 존경을 받아야 마땅했을 시기에 '최장집은 원래 PD니까' 라며 이념적 바이어스가 낀 것처럼 폄하되기도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민주화'란 일반적인 용어가 아니었다. 바로 '한국에서 일어난 민주화'를 콕 찝어 말한 것이었다. 즉, '민주주의의 구현'이라는 일반론이 아닌, '군사독재의 축출'을 말한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민주화'는 이루었는데, 과연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민중에서 시민으로]에서 '민중'이란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이끌어 낸 저항세력으로서의 사람들을 칭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이 되어야 한다. 시민은 시민권을 갖는다. 군사독재 시절 시민권은 극도로 제한되었다. 대표자를 직접 선출할 수 없었고, 반정부 인사들의 피선거권도 박탈되었으며, 언론의 자유도 없었고, 시민의 정치와 정책 참여는 제한되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참정권과 자유권도 없는 상태는 제대로 '시민(citizen)'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상태이다.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민중이 시민이 되어야 한다.

시민권은 '권리들을 가질 권리(the right of rights)'이다. 기본적인 시민권이 확보되지 않으니 '사회권'(social right, 또는 사회적 시민권)는 사치품에 해당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사회권을 제외한 개인의 기본권과 정치적 시민권의 구성요소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나갔다. 경제 발전을 지속했고, 김대중 정부에서 (비록 자유주의적이긴 하나) 복지국가의 시동을 걸기도 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에서 최장집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다시 한번 비판한다. 진보 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권 확충을 외면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발전을 충분히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장집은 MB정부에 대해서는 거의 '논외'로 취급하고 있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시민권이란 "경제적 불평등의 축소", "분배적 정의"에 관한 것이며 "경제 과정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례에 부여되는 가치와는 독립적으로... 사회의 성원이기 때문에 권리를 부여받는 것"(pp.126)이다. (사실 사회권은 사회정책 분야에서는 기본 이론이기 때문에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 조금 새삼스럽긴 하다)

최장집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양극화를 낳고 노동자들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더욱 소외시켰다는 점에서 사회권을 증진시키지 못했으며, 따라서 시민권을 강화하지 못했고, 따라서 민주주의를 (기대한 만큼)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모피아로 상징되는 경제/기술관료들에 굴복한 것인지, 학생운동 출신들의 '중산층 출신들이 주도한 노동운동'의 한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집권하고 보니 보수화되는 현상' 때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 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견이 없는 fact이다.  

한국의 소위 민주 진영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불평등을 애써 분리해 왔다. 민주 진영에게 다시 정권을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정치적 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차별화를 하기 어려우니 그제서야 '우리가 그점은 미처 신경을 못 썼소' 라고 궁색하게 말하며 '경제 민주화'를 들고 나왔다. 이제서야 주소를 제대로 찾은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 예산의 6~7%에 불과했던 복지예산이 2013년 100조를 넘어 정부 예산의 30%를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고, 복지국가로 진행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따져 봐야 하는 개념인 '사회적 시민권'을 챙겨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따라서 '경제 민주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진보를 위해서 꼭 필요한 - 또는 진보 정권 10년의 좋은 기회를 다 까먹고 뒤늦게 들고 나온 - 어젠다였던 셈이다.

... 그런데, 보수 진영에서 같은 어젠다로 '물타기'를 하고 나왔다. 쟁점을 고작 '재벌의 순환출자 규제 방법'으로 몰아가는 데 성공하면서 이 물타기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복지국가로 진입하는 대목에서, 사회적 시민권의 개선이라는 과제는 밀려났으며, 에스핑-안데르센이 강조한 사회권으로서의 보편적 복지는 물건너가고 시장주의적 선별적/차별적 복지에 무게중심이 놓이게 되었다. 최장집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한번, 제자리걸음이다.(국민의 48%는 아마도 뒷걸음질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부속 기능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 주장에 관심있는 사람은 최장집도 참조한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 민주주의]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최장집의 주장을 이번에도 외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노동? 그걸 왜 민주주의랑 엮어?' 라고 편의적으로 일갈하면 될 것이고 아마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간편하게 나누어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민주주의란 공산주의의 반대개념이고, 즉 민주주의란 자본주의를 말한다 이렇게 일체론적으로 배워 온 대중에게는 혼란스러운 논의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압도하고 왜곡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며 한국에서도 체감되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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