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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과학'이 신용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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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군 (208.♡.179.15) 작성일2009-02-1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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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과학을 때어놓고는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첨단과학의 지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간단히 사용하는 가정용품조차도 몇백 년, 몇 천 년 간 이어져 내려온 과학 기술의 도움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물건이지요.


이러한 과학 지식은 어째서 다른 지식(점성술, 관상, 종교 등등)을 제치고 가장 믿을만한 지식이 되었는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고 넘어가 보도록 하지요.


과학(영어로는 science, 독어로는 wissen schaft)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 어원이 지식, 앎에 관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모든 지식을 다 과학이라 정의하는 것은 옳지 못한 분류입니다. 예를 들자면 토마토가 열려 있다는 사실 자체는 과학이라 정의되지 않으나 토마토 잎의 광합성에 따른 녹말의 생성과 토마토 내부의 온갖 효소, 토마토가 생기는 과정 등은 과학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학은 넓은 의미로는 학문 전반을 가리킵니다. 즉 어떠한 지식이라도 그러한 지식이 ‘학문’이라는 틀 내부에 속박되어 있다면 그 지식은 넓은 의미에서 과학이라 부를 수 있지요. 예를 들자면 인간의 사회 자체는 무어라 정의하기 어렵지만,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는 사회과학이나, 심지어 어떠한 종교에 대해 연구하는 종교학 등도 넓은 의미에서는 과학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좁은 의미의 ‘과학’이란 자연과학만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럼 자연과학이란 무엇일까요? 자연과학은 기본적으로 사물의 본질이나 존재의 근본 원리에 대해 논하는 철학적인 방식의 형이상학이나 신학적인 지식을 배제하고, 실존하여 실험으로 확인하거나 관측할 수 있는 형이하학적인 지식을 정립해놓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연과학의 정의에 대해서는 많은 철학자의 논의가 있었는데, 아직 완벽히 정립되지는 않았으나 예를 들자면 기술을 과학으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과학은 이론적인 대 반해 기술은 실용적이며, 기술이 없이는 과학이 진보하기 어렵지만, 과학이 없더라도 기술은 진보할 가능성이 있기에 그다지 일반적인 시각은 아닙니다. 저는 과학이 기술이거나 기술이 과학인 것이 아니라 서로 공생관계인 서로 다른 두 학문이라 봅니다.


이러한 자연과학은 일반적으로 가설 연역적입니다. 물론 많은 실험을 통해 알거나 하는 귀납적인 면도 있으나 매우 기본적인 몇 가지 실험 등의 결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연현상을 관찰하여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맞는다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일들을 실험으로 관측하여 ‘이 가설은 맞는 가설이다.’라는 것을 확인하는 연역적인 방법을 취하기에 이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실험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그 실험은 같거나 비슷한 상황에서 오차범위 내의 결과가 항상 나와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언제든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지식’이 됩니다(양자역학은 결정론 자체를 부정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실험의 정의는 이러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전하를 띈 두 점 입자가 서로에 의해 받는 힘이 F=kQq/r^2 이라는 쿨롱의 법칙을 ‘가설’로 설정하고 나서, 만약 이가 맞는다면 가우스의 법칙 등이 필연적으로 성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전까지 알고 있었던 지식과 새로 세운 가설에서 연역적으로 추리해내고 그에 따른 실험을 함으로서 이를 확인한 예가 있지요.


또한, 과학은 서로서로 이론과 가설을 비판하고 검증하면서 자라나는 학문입니다. 자신이 새운 가설이나 이론은 우선 논문의 형식으로 잡지나 저널 등에 발표하며 그 이론이나 가설이 동료 과학자에 의해 검증, 비판되고 만약 틀렸다면 자신의 잘못을 수정하는 피드백의 과정을 거치는데, 자신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그에 대해 비판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는데 많은 거부감을 지니지 않으며, 언제든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더 믿을만한 지식이 되어간다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과학은 객관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양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직선 도선에 많은 양의 전류가 흐르면 주변의 입자가 큰 힘을 받는다.’라는 식의 주관적인 개념이라면 정확히 어느 정도로 많은 전류가 흘러서 어느 정도 큰 힘을 받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떠한 양을 정의하여 그 양만큼 흐르면 다른 어떠한 양만큼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예상함으로써 그 이론이 맞고 틀림을 알 수 있지요. 이 점은 과학이 믿을만한 지식이 된 가장 큰 이유라 생각하는데, 점술과 같이 ‘다 잘될 것이다.’라든지 ‘가까운 시일 내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등의 주관적인 예측은 맞고 틀림을 예상하기 어렵지만 ‘이 돌을 초속 5m/s로 던지면 몇 초 동안 몇 미터를 이동할 것이다.’와 같은 과학의 객관적인 예측은 직접 확인하기 쉽기에 우리에게 믿음을 줍니다.

댓글 1

tHere님의 댓글

tHere 220.♡.0.121

  어떤 가설이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일지라도
다양한 실험치와 허용하는 오차범위내에서 정합을 하는 경우
어쨋던 과학적 지식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겠지요.

실험치와 비교해 보지도 않고 '가설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먼저 나서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지극히 가설이 의미하는 바를 간과한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CODATA 등에서 다루는 물리상수를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각종 실험치와 표준값사이의 차이를
오차라는 말 대신에 표준불확도(Standard Uncertainty)라는 말로
나타내고, 이를 표준값으로 나눈 것을 상대표준불확도(Relative Standard Uncertainty)로 표현하는 것이 통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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