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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과학상 토양마련부터/ 최성우 [02.11.17/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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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g 작성일2004-02-2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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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를 비롯해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선정, 발표된 지가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신문, 방송 등에서는 수상자와 노벨과학상에 대한 관심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아무래도 이웃 일본에서 3년 연속 과학분야 수상자를 배출했을 뿐 아니라, 올해에는 특히 독특한 이력의 인물들이 물리와 화학 두개 부문에서 노벨상을 받은 데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한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한 현실이 대비된 듯하다.

일부 언론과 과학계 밖에서는 우리나라도 이제 세계 10위권에 근접한 경제규모를 이루고, 연구개발비 규모도 예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과학기술자들의 분발을 촉구하거나 질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 과학기술자들은 마치 '아직까지 노벨상도 못 받은 죄인'이라도 되는 양 움츠러들면서 노벨상을 속히 받을 수 있는 연구전략과 계획 등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인식의 소치일 뿐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주객과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벨과학상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듯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육성한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현대 과학기술 연구의 특성상 한 두 사람의 천재적인 과학자가 개인적인 능력만으로 받을 수 있거나, 로비 따위를 동원해 받을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한 탄탄한 과학기술 기반과 체계적인 연구개발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고서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꼭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제대로 된 토양과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과학기술계의 노력 뿐 아니라,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나아가 국민적인 관심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치권, 정부기관, 민간기업, 언론계 할 것 없이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고 이공계 출신들에 대한 대우도 보잘 것 없다. 그 결과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깊어지고, 이공계 대학원은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노벨과학상은커녕 차세대 과학기술의 단절과 국가적 연구개발 시스템의 붕괴를 우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나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거의 유일한 전문지식인 집단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수출품이 지금 이 나라를 먹여 살리게 된 것도 바로 과학기술인들 덕분이 아니던가. 21세기 지식산업기반사회를 이끌어갈 중추적인 집단 역시 바로 과학기술인들이다.

일시적인 미봉책이나 사탕발림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인을 우대하는 정책과 사회적 분위기를 확립하고 창의적인 연구개발을 북돋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서울 정도의 경제성장세를 보이면서 곧 우리의 최대 경쟁국이 될 이웃 중국은 과학기술인들을 우대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에 최고 자리에 오른 후진타오와 장쩌민 전 총서기를 비롯해 정치국 상무위원 등 국가 최고지도층이 거의 전부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공계를 홀대하고 기술을 천시하는 정부와 언론, 사회 지도층이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과학기술자들에게 분발을 촉구할 염치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만연하고 과학기술자들이 자기 자식은 절대로 이공계에 안 보내겠다고 하는 나라가 과연 노벨과학상을 받을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다 함께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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