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넘게 끌어 온 DDA 협상이 결렬되었다는군요. 협상 재개 여부도 불투명..

언론 기사를 보니 중국, 인도가 농산물 분야에서 반발해서 결렬되었다고 하던데.. 갸우뚱입니다. 인도 사정은 잘 모르겠는데, 중국은 농산물을 충분히 자족하고 있고 그 가격도 쌉니다. EU의 비싼 와인, 치즈, 튤립을 거부하느라 그리 힘을 뺄 것 같지 않은데요. (언론에서는 식량안보, 농업보호 이런 얘기 하던데... )

사견입니다만 농산물 얘기는 핑계라고 봅니다. 자국 농업을 보호해야 한다, 이거 하면 농민들이 들고 일어설텐데 감당 안된다 이런 얘기는 속마음과 사실이 어찌되었건 국제 정치에서 잘 써먹히는 핑계입니다. 중국, 인도는 산업화에 갈 길이 바쁜 나라들입니다. 산업화 단계에서 필요한 정책은 유치산업보호, 허술한 지적재산권(특히 외국 지재권에 대해), '자격' 기술자를 값싸게 양산할 수 있는 허술한 자격제도 등등입니다.

DDA는 유형의 재화에 대해 관세 장벽을 낮추는 것 뿐 아니라 지재권 등 무형의 재화와 인력에 대해서도 장벽을 낮추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DDA를 비준한 나라는 외국 엔지니어에게 시장을 개방해야 합니다. 자국내 자격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정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중국과 인도는 농업을 핑계로 "(장하준 식으로)사다리 걷어차기 안 당하기" 에 나선 것이고, 협상 결렬을 통해 성공한 것이죠. 모방과 리버스엔지니어링을 통해 양적 팽창을 이루고, 그로부터 질적 성장을 위한 체력을 비축하는 시간을 번 것입니다.

한국 외교부는 DDA 결렬에 대해 일단 아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예전에 게시판에도 썼는데, 한국은 이미 [사다리를 올라간 나라]가 되었습니다. 2차대전 패전국들-패전하기 전까지는 선진국들-을 빼면 사실상 20세기에 선진국행 막차를 탄 나라이고, 고소득국가 신입생쯤 됩니다. 한국은 어차피 지재권 보호나 상호 자격등 기본 제도(institutions)에서 책임있게 선진국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입장이며, 어느 정도 기반도 갖춰져 있습니다.

원래 하려던 얘기를 얼렁 하고 마무리합니다. 한국의 과학기술인들에게는 DDA 결렬이 상당히 안타까운 상황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첫째, 시스템 선진화를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가 연기되었고, 둘째, 선진국 과학기술인들에게 시장이 '활짝' 열릴 경우 그들과의 경쟁을 통해 오히려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급 기술인력에 대한 높은 인건비가 자연스러워지면서 처우 개선 효과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후진국 출신 엔지니어링 회사가 들어올 이유는 별로 없으니까요. 셋째, 중국의 지재권 제도가 정비되면 '한국 베끼기' 한 것들을 잡아내서 보상을 받을 길이 열리고, 차후에도 기술 수출액이 늘어날텐데요. 넷째, 공학교육인증-호불호가 엇갈리는 부분입니다만-제도가 확대되고 한국 학경력과 자격이 선진국에서 인정되면 취업 길이 훨씬 넓어집니다만. 다섯째, DDA로 공산품 관세가 낮아지면 한국의 제조업 분야에 조금이나마 플러스 요인이 되겠지요. 그러면 제조산업에서 일하는 과학기술인들에게도 조금이나마 플러스가 되겠지요.

여담으로는, DDA가 잘 되면 각종 제도 정비나 정책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정책 바닥'에 일감이 늘어났을텐데 하는 사심도 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