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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건축가 류춘수씨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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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원 작성일2003-10-1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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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류춘수는 흔히 가장 한국적인 건축가로 평가된다. 이와 같이 평가되는 배경에는 그의

주택 작품을 중심으  로 보이는 토속적인 재료 사용과 공간 구성, 형태미 등이 있으나, 한층 더 근본적으로는 그의 건축이 1946년 경북  봉화에서 출생한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시골에서의 배경과 향토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한국적 건축의 표현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건축적 스승이었던 고 김수근 선생이 전통의 현대화나 한국성의 구현을 위해 각  고의 노력을 기울인 때가 부여 박물관의 왜색논쟁 이후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류춘수에게 있어서 전통이란 학습  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태어나고 현재의 그를 있게 만든 진행형의 삶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의 수필집에서 인용한 아래 글에서 나타나듯 그에게 있어서 '한국적'이란 의미는 특정한 건축적 개념이나  관점에 얽매이기 보다는 일상적 생활경험과 삶에 자연스레 배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 그 추억과 분위기는  건축이나 디자인을 초월하는 것으로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 지난 10월 마지막 주말에는 고향을 다녀왔다. …놀던 냇가, 오르던 산, 다니던 학교, 살던 집―남의 눈에는  평범한 길과 산천이지만 그곳에 사연이 있는 이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황량하고 가난한  들판이라도 조국 산하이기에 그리운 것이며, 시골 어느 변두리 다방이라도 그곳에 추억이 있으면 그 분위기는  디자인을 초월한다. …나는, 우리는, 그 모습이 변해 가는 우리의 산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미력한 스스로가 부끄럽고 건축이, 도시가, 그 주변 경관이 모두 우리의 손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착각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일모(一毛)를 잡고 구우(九牛)를 논하지 않는가?" 

 이와 같이 유연한 입장은 서구 미학과 교도적 모더니즘의 틀에 갇혀 전통이나 한국성의 문제를 외면하던  동시대의 대부분 건축가들과는 달리 그에게 한층 더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게끔  하였다고 생각된다. 

 전통과 현대의 다양한 접목 
 그가 '공간'시절 담당하였던 한계령휴게소(1979), 갈현동 소나무집(1982) 등에서 부분적으로 보이던 목재의  사용이나 전통적 건축요소의 활용은 삼하리주택(1986)을 기점으로 한층 더 적극적인 전통과 현대의 접목으로  나타나고 있다. 

< 삼하리주택> 경기도 1986 재료, 색상, 스케일 등 한옥의 전통미가 현대적인 방법으로 표현된 목구조 건축    삼하리주택은 김수근 선생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수행된 그의 대표적인 주택설계이다.이 주택은 그 당시  건축계에서 거의 잊혀지고 있던 가구식 목구조와 한옥의 현대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그를 가장 한국적인  건축가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경기도 장흥의 한적한 농촌에 들어선 삼하리주택은 가구식 목구조의 칸 구성  과 한국적 스케일을 적용하는 가운데 맞배지붕 처마 마루 한식창호 등의 전통적 건축요소를 도입하고 있으나,  단순히 전통적인 건축요소의 차용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감각과 해석을 통해 현대적 한옥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규모와 기능, 평면 및 형태 속에 치밀한 공간 구성과 디테일 처리,의미의 풍요로움이  함께 숨어 있다. 이 주택은 대지 중앙에 육자형으로 놓인 건물이 앞 뒤 마당을 연결하는 개방된 현관부를  중심으로 목구조의 본채와 콘크리트조 의 부속채로 양분된 상태에서 두 채의 처마선이 연결된 모습을 취하고있다.  폭이 좁은 대지의 중앙에 건물이 위치하여 마당을 분리하고 있는 형상이지만 오히려 건물로 인해 앞 뒤 마당이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매우 역설적인 상황이다. 

 이같은 상황은 본채와 부속채의 층수&구법&용도&위계 등이 대비되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일체감을 주고  있는 관계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삼하리주택 이후 하남주택 (1992)남한산성주택(1993)중심서원(1996) 등의  작업에서도 건물의 기능이나 프로그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 건축의 현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그의 건축에 고유한 특질을 부여하였을 뿐 아니라 국내 건축계에도 전통과 현대의  접목에 있어서 다양한 방향 모색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보편성과 합리성을 지향하는 건축 

 류춘수의 건축이 이와 같이 한국성과 동양적인 감성에 뿌리박고 있지만, 동시에 그의 건축은 현대의 구조 기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현대성과 서구적인 합리성을 함께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건축이 다루고 있는  폭과 시각은 매우 넓은 편이다.  그의 작업은 소형 주택에서 지하철 역사, 대형 체육시설, 초고층 사무소에 이르는 다양한 규모와 기능을 다루고  있을 뿐아니라 인테리어&조경&단지 및 도시 분야로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지역적으로도 일본&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거의 모든 나라와 유럽에 이르기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초기 스케치에서 최종 실시설계 수준의 치수 정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에서  정리되어 실무 스태프들에게 전달되곤 한다. 

 한 건축가가 주택 설계에서 고도의 구조 기술적 경험과 지식을 요구하는 막구조물이나 초고층 건축의 설계까지  소화하면서 인테리어&조경&도시분야&해외로까지 작업 영역을 넓히고, 계획 단계에서 최종 투시도에 이르기까지  손수 마무리하기를 즐겨한다는 것은 수월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점차 전문화되어가고 있는 현대의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비경제적이고 불합리한 작업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작업방식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렇듯 폭 넓은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의  건축이 기능과 구조&기술이 지니는 합리성과 보편성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건축가의 장인기질은 공간 형태적인 해결 능력과 대등하게 구조 기술적인 해결능력을 의미한다.  흔히 작품 성향이 강한 건축가들이 건물의 기능이나 구조 기술적 문제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그의 건축은 기능이나 구조 기술이 요구하는 합리성과 합목적성의 해결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에게는  추상적인 건축의 개념이나 건축설계 작업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는 수단으로서 구조와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조와 기술기능이 무시된 예술로서의 건축은 존재하지 않는다. 류춘수 건축이 지니고 있는 한국성과 현대성,  동양적 감성과 서구적 합리성간의 보완적 균형은 90년대 들어 계획된 대형 프로젝트인 중국의 868타워와 2002년  서울월드컵경기장 계획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992 년 국제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중국 해남시의 868타워는 86층의 호텔 사무소동과 68층의 아파트동으로  구성된 대형 복합건축물로서, 실시설계가 거의 완료된 상태에서 사업 시행자 측의 사정으로 인하여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한국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국제적인 입지를  가져오게 했으나, 프로젝트의 수행을 위한 사전 준비와 투자 이후 사업의 돌연한 중단으로 몇 해 동안  그에게 어려움을 주기도 한, 영광과 상처가 함께 깃들인 프로젝트다. 868타워는 63빌딩 LG 트윈타워 KOEX 등  국내의 초고층 건축물들이 거의 모두 외국의 계획안을 바탕으로 건설된 것에 비해 국내 설계사무소의 자력으로  계획단계에서 실시설계까지 수행되어 해외에 계획된 첫 초고층 건축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868 타워>중국 해남, 1992 높이와 기능이 다른 두 개의 타워는 동양의 음양적 조화사상에 따라 전혀 다른  조형 으로 대비 아닌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현대의 여러 첨단기술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초고층 복합건축물이 국내 설계사무소의  자력으로 계획되어 해외에 수출되었다는 의미 못지않게 초고층 건축물에 대한 동양적 사고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층수와 기능이 다른 두 동의 타워는 86층의 호텔 사무소동이 가벼움 매끈함 표피성  단순미를 표현하고 68층의 아파트동은 육중함 거칠음 근육미 운동감을 표현하고 있는 가운데 건물 상부에서  브리지를 통해 두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이렇듯 두 동의 타워에 서로 대비되는 조형과 재료를 채용하면서  하나의 전체로서 음양적 조화를 꾀한다는 디자인 의도는, 서구적 개념 일변도의 현대 초고층 건축물에  대한 대안으로 동양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금세기 최후의 프로젝트, 2002년 월드컵 서울경기장 
868 타워 이후 와신상담 끝에 설계 공모에서 당선된 2002년 월드컵 서울경기장은 한국성과 상징성,현대성과  합리성이 함께 구현된 류춘수 건축의 본보기다.상암경기장에 반영된 조형적 개념은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팔각 모반형의 하부 스탠드와 전통 방패연의 모습이 추상화된 지붕의 막구조를 통한 한국적 조형미를  도입한 것으로, 월드컵 경기를 개최하는 국가의 주경기장 으로서의 지역성과 상징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대형 체육시설에서 요구되는 구조적 효율성과 기능적 합리성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 

" 희망과 성원과 소망을 담아 띄워보내는 이미지의 구현물로서 단순한 형태를 모방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과 의도를 표현하는 것, 그리고 구조와 기능에 합당할 것"을 디자인의 전제로 한 월드컵 서울경기장은  결코 몇 달간의 고된 작업의 결과가 아니다. 그는 1986년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의 지붕구조에 세계 최초로 ' 케이블 텐션 구조(cable tensionstructure)'를 미국의 저명한 막구조 전문가인 가이거 박사와 함께 수행한  이래 국내외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서 막구조의 도입을 시도했다.  그 결과 강촌휴게소(1990)영등포 구민회관(1992)에서 국내의 기술진에 의한 초보적인 단계의 막구조 설계  및 제작 시공을 실현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말레이시아 사라와크 종합운동장 계획안(1989), 인스브르크  스키점프 스타디움 계획안(1991)과 같은 본격적인 막구조 건축들은 모두 미완의 계획안에 그쳤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볼 때 서울월드컵경기장은 막구조에 대한 10여년간에 걸친 그의 부단한 집념의 결과이자,  한국성과 현대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쫓아온 그의 건축 역정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류춘수의 건축을 정리해 볼 때, 그의 건축의 특질은 한국성과 현대성의 공존에 있다.  현대성은 일반해 국제해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의 건축의 폭이 넓고, 전통과 하이테크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은  흔히 이질적이거나 이원론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두가지 요소가 요소가 결합되어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즉 그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라는 것을 건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가 '空間(SPACE)'을 넘어 그려 온 '異空(BEYOND SPACE)'에 그는 몇발작이나 다가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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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론도 이러한 세계적인 건축물을 우리에게 선사해준 주인공에 대해선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는 알아줘야겠죠?

댓글 1

freedom님의 댓글

freedom

  저는 김수근 건축가를 좋아합니다. 김수근 건축가의 유명한 건물 꼽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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