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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기박사 글, 태극기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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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공 작성일2022-12-3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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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타레이> 에필로그에 얽힌 사연입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여주인공이 들고 있는 신문에 ‘괴뢰군 돌연 남침을 기도’가 큼지막히 보인다. 사람들은 이 기사를 보고 비로소 한국전쟁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되었고, 영화는 그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신문 왼쪽에 ‘국력은 과학력’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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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을 알리는 1면에 같이 실린 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당시 신문을 찾아보았다. 실제 이 신문은 1950년 6월 26일자 동아일보였다 (두번째 사진). 이후 찾아낸 내용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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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컬럼의 필자는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규남이다. 당시 서울대 교수로 문교부 차관이던 최규남은 나중에 서울대 총장을 거쳐 문교부장관이 되었으며, KIST를 설립해 대한민국의 초기 이공계 교육에 헌신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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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남은 당시 인텔리 계층의 인문계 과목 편식을 우려하며 이공계 학문과의 통합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 컬럼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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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는 ‘왜정시대’에 시작된 문과와 이과의 구분으로 인해 이러한 불균형 교육이 시작되었다며, “(전략) ... 자연과학에 혐오감을 가지고 공부하기를 기피하던 학생이 고등학교에 와서 자연과학의 과목이 거의 없는 문과를 마치고 또다시 대학 문과에 입학하여 순수한 문과계의 학문만을 학습하여 가지고 교문을 나온 그네들은 자연과학에 아무런 교양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과학에 대한 이해조차 없는 반신불수의 대학 졸업생들이다. ... (중략) ... 이와 같은 인문계통 졸업생이 사회에 나와서는 정치 경제 법률 기타 모든 중요방면에 지도자격으로 군림하여 이공학부 출신의 기술자를 부리는 지도적 지위를 점하게 된다. ... (후략)”라고 통렬히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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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컬럼의 마지막은 ‘계속’이라며 마무리되지만, 심각한 전황으로 서울이 함락되며 다시는 계속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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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70년 전 대학자의 이러한 우려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직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문과와 이과를 나눠서 가르친다. 이러다 보니 과학은 인문, 예술과 떨어져 있다는 그릇된 상식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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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판타레이>를 쓰기 시작한 중요한 계기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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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태극기 휘날리며’를 본 것은 LA 어느 작은 영화관이었다. 관객의 상당수는 백발이 성성한 미국 노인들. 왜 그들이 자막이 딸린 한국영화를 보러 왔을까를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화를 보다가 객석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참전용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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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는 조금 특별했다. 탑승을 기다리는 LA 공항 대기실에는 수많은 미국 노인들이 있었다. 매년 우리 정부가 초청하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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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자리에 앉은 노인은 긴장했는지 연신 가뿐 숨을 내쉬었다. 그는 끊임없이 ‘지금 한국은 어떤 모습인지’를 물었다. 20대 청년이던 그가 마지막으로 본 서울은 폐허였고, 이후 시골에 살면서 한국 관련 뉴스는 거의 보지 않았다고. 무엇때문인지 그는 10시간 비행 내내 자리를 뒤척이며 한숨도 못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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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다가오자 기장이 영어로 방송을 했다. “참전용사 여러분께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서울 상공을 한바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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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곳곳에 탄성이 들리고, 마침내 내 옆자리 노인은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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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지난 70년 동안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최규남이 외치던 ‘국력은 과학력’이라는 구호가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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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들이 보인 눈물처럼 놀랍게 바뀐 우리의 현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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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탕트 #한국전쟁 #태극기휘날리며 #새로쓰는책의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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