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IT·과학

이공계 박사 8천명 해외로 유출된다

입력 : 
2010-07-19 16:51:46
수정 : 
2010-07-20 14:19:27

글자크기 설정

연구 자율성 낮고 보상체계 미흡…산업기술 발전에 적신호
국내 정부 출연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산업공학박사 C씨(42)는 최근 미국이나 유럽 연구기관으로 옮기려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구 외 업무가 과도한 데다 보상 시스템도 만족스럽지 않아 일한 만큼 보람을 갖기 어려워서다. 국내 대기업 연구원 출신 K씨(41)는 5년 전 미국 뉴욕주 유학길에 올랐다. K씨는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귀국 대신 안정적인 연구 여건이 보장되는 미국 현지 연구소에 취직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이공계 고급 두뇌의 국외 유출 현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국내 산업기술의 미래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한 해 배출되는 박사보다 더 많은 수가 국외로 나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매일경제신문이 입수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국내 이공계 박사의 해외유출 특성 및 요인 분석'에 따르면 국내에 재직 중인 이공계 박사 9만7000여 명 가운데 8.4%인 8100여 명이 실제 국외로 이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9년 이공계 박사학위 취득자의 1.34배에 달하는 수치다.

또 이공계 미국 박사학위자들이 현지에 잔류하는 비율도 계속 커지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하는 두뇌유출지수도 갈수록 하락해 2010년의 경우 10점 만점에 3.69로 57개국 중 42위에 머물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국가별 대학연구원 100명당 미국 내 학자 연평균 증가율(1997~2008년)을 보면 한국은 7.6%로 여전히 개발도상국 상태다. 이와 함께 과학영재교육원, 과학고 등 과학영재의 해외 유학 의향도 80%에 달하고 있어 고급 두뇌의 국외 유출(Brain Drain)이 갈수록 심해질 전망이다. 김진용 KISTEP 부연구위원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분석한 '이슈 페이퍼'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국외로 나가 돌아오지 않으려는 이공계 박사는 30~40대 젊은 학자가 많은데 기업 재직자는 연구자율성과 독립성이 낮다는 점, 공공연구소 재직자는 성취감 결여, 대학 재직자는 연구개발 시간 부족 등이 주요 이유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경제 규모를 볼 때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해야 할 위치인데도 이공계 박사들의 국외 유출 수준이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과 같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며 "현재 국내 이공계 박사들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열악한지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그는 또 "일부에서 지적하는 두뇌순환이라는 개념이 성립되려면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오는 사람도 그만큼 있어야 하지만 일방적인 두뇌 유출에 따른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백성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국내에 이공계 박사들이 일할 안정된 자리가 너무 없다. 국내에서 연구원으로 평생 일할 만한 곳이 없다 보니 대부분 교수 직만 노리는데 교수 직은 한정돼 있으므로 (국내에)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는 박사도 많다"고 국내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내 이공계 박사들은 의사나 변호사 등과 비교한 상대적 박탈감이 적지 않고 사회적 지위, 보상체계, 안정성 등 경제적 원인이 가장 큰 국외 이주 원인으로 나타났다.

이공계 박사 전체의 36.4%가 국외 이주 의향이 있는 가운데 정규직은 33.6%, 비정규직은 67.5%로 분석됐다. 정규직 가운데 직장 유형별로 보면 대학 재직자의 29.4%, 기업 및 공공연구소 재직자의 44.5%가 이주 의향이 있어 기업과 공공연구소 박사들의 불안정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

특히 대학 재직자 중 자신이 희망하는 연구개발 투입 비중과 실제 차이가 25% 이상 발생하는 박사의 50.6%가 이주를 바라고 있으며 기업과 공공연구소 재직자 중 30대의 61.3%가 이주를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공계 박사의 처우 개선을 위해 △성과중심의 보상체계 강화 △특허권의 개인 소유 방안 검토 △기술사업화 방식의 다양화 △기업의 연구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정책 △공공연구소의 중장기 연구과제 부여 등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심시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