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금지에 묶인 그들..기업보호냐 노예계약이냐

안승찬 2012. 4. 1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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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혐의 SMD 연구원도 2년간 전직금지 발목
결혼정보사, 증권사 등 곳곳서 계약서에 전직금지 조항
법원, 실질적 피해·보조금 지급 등 고려해 판단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12일자 20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기술유출 혐의로 지난 5일 경찰에 구속된 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 연구원 조모씨(46)는 회사 상사와 잘 맞지 않았다. 관계가 껄끄러웠다. 조씨는 이직을 결심하고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전직금지 조항이 발목을 잡았다. ☞"LG가 삼성 AMOLED 기술 빼갔다" 경찰 수사착수

조씨는 퇴직 후 2년간 경쟁사로 이직하지 못한다는 '전직금지' 계약이 되어 있었다. 경쟁사인 LG디스플레이(034220)가 조씨를 채용하면 SMD는 조씨를 상대로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수 있다.

조씨가 LG디스플레이가 곧장 옮겨가지 못하고 LG디스플레이 협력사에 위장 취업한 이유도 전직금지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는 조씨에게 컨설팅비 명목으로 1억9000만원을 줬다. 2년간 전직금지에 묶인 조씨에게 사실상 생활비를 지급했다. 조씨는 대가로 '대형 AMOLED TV 제조공정' 자료를 제공했다.

조씨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는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공정 분야의 핵심 전문가다. AMOLED 세계 1위 기업인 SMD는 지난 4년간 이 기술 개발에만 1조1000억원을 투자했다. 조씨 같은 전문가가 경쟁사로 이직하면 SMD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회사뿐이 아니다. 많은 기업이 근로계약서 상에 전직금지조항을 넣는다. 결혼정보회사, 증권사, 화장품 회사, 학원 등 업종도 다양하다. 모두 돈과 시간을 들여 키워놓은 인재가 경쟁사로 옮기면 회사가 실질적인 손해를 입게 된다는 이유를 댄다.

일각에서는 전직금지 조항이 개인의 선택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회사가 기술과 영업권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전직을 일정 기간 막으면 직원의 이직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

한 대기업 연구원은 "엔지니어들은 자기의 연구분야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직할 수 있는 회사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면서 "경쟁사 전직금지 조항 때문에 회사에 불만이 있더라도 그냥 눌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전직금지 조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사건마다 다르다. 회사가 실질적으로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정보와 관련된 것인지, 전직금지 기간 동안 보조금을 지급했는지 등을 보고 판단한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은 노키아지멘스로 이직한 LG에릭슨 연구원 4명을 상대로 제기한 전직금지청구소송에서 LG에릭슨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은 사원급 연구원들이지만, 전직금지 계약의 효력을 법원이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다룬 중장기 기술개발 계획, 3세대 이동통신 및 LTE 기술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이라고 했다.

2010년 서울반도체에서 발광다이오드(LED) 개발팀장으로 일하다 LG이노텍으로 이직한 직원에 대해서도 법원은 이직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반도체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는 데다 그간 보안 수당을 지급한 점, 퇴직한 직원에게 퇴직생활 보조금을 지급한 점 등이 반영됐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정상철 변호사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전직금지 청구 사건에 대한 판례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법원이 인정하는 전직금지 기간은 1~2년이 74%로 가장 많았다. 2~3년(12%), 3~5년(14%)도 있었다.

반대의 판결도 있다. 2008년 서울중앙지법은 김영편입학원이 경쟁학원으로 옮긴 강사 2명을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강사들이 학원에서 근무하며 얻은 지식은 회사의 고유한 이익이라기보다는 강사들 스스로 얻은 일반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청우의 곽용석 변호사는 "단순히 근로계약상 기재된 전직금지 조항만을 근거로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면서 "보호해야 할 이익이 있느냐의 여부, 퇴직의 경위, 전직금지 약정을 근거로 대가를 받은 적이 있는지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결정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안승찬 (ahnsc@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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