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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8. 11. 월요일

펜더








 





영화 <고스트라이터>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이 하나 있다(영화적인 부분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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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대필도 하나의 ‘출판 분야’로 분류해서 대필 작가도 ‘작가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니, 작가 대접이 아니라 한 분야의 고수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대필(代筆)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필을 한다. 자서전이나 회고록과 같이 반쯤 ‘공인된’ 대필뿐만 아니라, 일반 서적도 대필이 많다. ‘강사’ 중에서 대필을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강연업계 관계자 한 명이 내게 한 말이 있다.


“이놈의 나라는 뭘 그렇게 못 배워서 안달이야? 의무교육 12년에 대학 4년, 16년이면 충분히 배운 거 아냐? 사회나와 취직해도 뭘 그리 배우려고 그래? TV 틀면 뭔 놈의 강사는 그리 많이 튀어나와서 뭘 그렇게 배우라고만 해? 그냥 좀 쉬면 안 돼?”


강사들의 경우는 의무적으로(아니, 생계를 위해서) 책을 써야 한다. 자신의 강연 원고를 모아서 책을 내든가, 강연 할 주제를 모아서 책을 내든가 어쨌든 책을 내야 한다. 그래야지만, 강연을 계속 돌 수 있기 때문이다(나 역시도 강연 원고를 모아 조만간 책을 한 권 내려고 한다).


책을 낸다는 건 강사들에게 있어서는 카드 명세서를 받는 것과 같은 ‘일상’이다. 물론, 그 책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1년 이상 진득하게 주제를 가다듬은 괜찮은 책도 있겠지만, 강연을 돌기 위해 ‘최소한의 형태’로 만들어진, 그러니까 습자지보다 내용이 더 얇은 책도 있다(그 나마도 자신이 썼다면 다행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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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명세서를 받아든 우리들의 일상


함량미달의 책들...(나 역시도 내가 쓴 책이 ‘양서良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순 없지만, 최소한 대필을 하지 않았다) 그 책들 중 상당수는 대필이다. 말 그대로 ‘찍어내는’ 책들이란 소리다. 자기계발서 몇 종류를 얼기설기 짜깁기 한 다음 핵심이 되는 문구하나 박아넣고(입에 착착 감기는 문구), 강의할 때 써 먹었던 에피소드를 양념처럼 뿌리면 책이 하나 나온다. 물론, 이걸 2주 정도만에 뽑아다 주는 대필작가들이 있기에 이 대필작가를 활용하는 것도 무방하다(아니,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다. 강사 중에서 필력이 딸리는 이들도 많으니 말이다).


비꼬는 것도 아니고, 푸념하는 것도 아니다. 명강사가 꼭 명저자일 거란 편견은 버리자.(결정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인기강사인 경우 한 달 평균 40회 이상의 강연을 뛰는 이도 봤다. 개인 스케줄만 관리하는 비서를 둘 정도인 그들이기에 물리적으로 책 쓸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들의 강연 PPT나 원고, 녹화영상을 대필작가에게 넘기고 책을 의뢰한다. 이 경우 이걸 대필로 봐야 할까?) 어떤 이는 강의를 잘하고, 다른 어떤 이는 글을 잘 쓸 수도 있지 않은가? 중요한 건 유령 작가, 그림자 작가라 불리는 이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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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대필’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부터는 일반적이지 않은 대필에 관해 말해보려고 한다. 아니,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논문 대필’에 관한 이야기다.



1. 논문은 대필해선 안 되는 걸까?


논문은 학문의 성취를 증명하는 글이다. 이걸 대필한다는 건 단순히 ‘글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학위를 사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수능 대리시험의 그것과 동일선상에서 말할 게재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정론(正論)이다. 그럼 현실은 어떨까?


가끔 사회 저명인사들의 <논문 표절>에 관한 뉴스가 떠들썩하게 퍼져 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서 남의 논문을 표절하냐? 안되더라도 그냥 쓰지.”


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혼잣말을 한다.


“진짜 저 사람이 썼을까?”


강신주 박사가 상담을 하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심하고 쓰면, 석사 논문은 한 달이면 쓰지 않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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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 of '논.문.표.절'


다들 황당한 반응이었는데, 난 이해가 간다.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인데, 글재주가 없고 시간이 없다면, 논문을 외주로 주면 된다. 인터넷만 들어가면 논문 대행, 에세이 대행, 논문 도우미 같은 이름으로 수많은 대행 알바가 설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글 좀 쓴다하는 후배들 중 논문 대행 알바 한 번 안 해 본 놈을 못 봤다.


“xx야 이번 주에 서울 올라가는데 한 번 볼래?”


“아, 형 정말 미안해. 논문 학기 들어가는 사람이 많아서... 나 이번에 3개 돌리고 있어.”


“네가 쓴 논문 모아보면, 지금쯤 박사 3~4개는 달았을 거다.”


가난한 작가, 그 중에서 대학물을 먹고 좀 똘똘하다 싶은 애들은 한 번 이상은 이 ‘논문 대필’의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그래도 예전에는 ‘제법’ 비용을 받을 수 있었으나, 요즘은 시장가가 엄청 떨어졌다. 한 때는 석사 논문도 제법 돈이 됐는데, 요즘은 젊은 애들, 그것도 글판이 아닌 다른 판에서 ‘알바’ 개념으로 들어오는 애들과 이들을 모아서 차린 전문업체가 등장하면서 석사급은 100만 원 선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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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업계에 한 번 발을 내민 이들끼리는 '무관의 제왕'과 같은 풍모를 보인다.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 공부의 ‘결과물’인 논문을 정작 본인은 쓰지 않고, 타인에게 맡긴 게 아닌가? 재미난 사실은 그 ‘타인’들이 평생 1편의 대필만 한 게 아니란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인문학부터 시작해 이공계, 경상계까지 폭넓게 해치우는 이들도 있다(이런 경우 이 사람은 박사학위 3~4개는 딴 것이 아닐까?).


가끔 내 가치와 상식이 붕괴될 때가 있다(가치와 상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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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는 ‘본격적인’ 대필과는 거리가 있는 의뢰가 들어오곤 했다. 그걸 받을 때마다 같지 않게 ‘꽤’ 심각한 자괴감(!?)과 고민을 했었다. 돈을 주면 뭐든 쓴다지만. 논문은 이야기가 달랐다. 이건 수능 대리시험과 같은 범주의 이야기가 아닌가? 놀라운 사실은 이걸 의뢰한 사람도 의뢰 받는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이다.


“난 글을 못 써. 그런데 돈 버는 재주는 있어. 그럼 안되는 글 쓰느라 끙끙 앓느니 그 시간에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글 잘쓰는 사람에게 논문을 의뢰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아?”


워딩 그대로이다. 내게 석사 논문을 의뢰했던 사람이 던진 말이다. 한동안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였다.



2. 글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


지금도 시간을 쪼개 대학원에서 학문을 연마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있다. 저마다 뜻한 바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 학업에 매진하는 ‘건전한 학생’들. 그러나 개중에는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지금도 직장인이 석사와 박사를 한다고 할 때마다 난 내 ‘개인적 경험’ 덕분에 그 순수성을 의심하곤 한다(어디까지나 개인적 경험에 의한 주관적 판단이다. 지금도 바쁜 시간을 쪼개 학문의 뜻을 이어가는 많은 만학도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K라는 사람이 있다. 지방에서 제법 헛기침 좀 하고 사는 인물이다. 이 분이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다.(나름 유지로서 잘 살고 있다. 지금도 그 형의 ‘정확한 직업’이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잘 먹고, 잘 입고, 잘 쓰며 산다. 마당발이라 공무원부터 시작해 뒷골목 분식집 아줌마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형이 대학원을 갈 이유는 없는데...”


“JC나 로터리 들어갔을 때 이미 견적 나온 거 아냐?”


“아... 그렇구나.”


정치에 뜻이 있었다. 정치에 뜻이 있다면, 당연히 학벌세탁이 필요했을 것이다. 2년 뒤 날 보자는 형의 연락이 왔다.


“OO아 형 좀 도와줘라.”


“제가 사업에 대해서 뭐 아나요?”


“아니... 내가 이번에 논문 학기라...”


“......”


형의 표현으론 ‘도와달라’는 것이다.


“내가 글에 좀 약하잖아. 논문은 내가 쓸 거지만, 네가 좀 도와줘야 해. 아주 많이...”


그 형은 날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시절에 난 몇몇 나이 든 대학원생들로부터 이런 청탁을 받았다. 도저히 내가 짬을 낼 수 없기에 논문 작성법이나 논문검색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료는 어떻게 찾는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했지만 이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옆에 청룡도가 있는데, 뭣하러 부엌칼을 뽑아드냐?”


지금도 그 형이 말한 ‘청룡도’란 말이 귓가에 왱왱거린다(형 말대로 청룡도라면, 그 청룡도를 석사 논문 따위를 위해 쓰는 게 맞는 걸까?).


“형 그러지 말고, OO대 앞에 한 번 가보시죠? 아니, 그러지 말고 인터넷 검색해보면 대필 해 줄 사람 널리고 널렸어요. 100~200만 원 석사 논문 하나는 뚝딱 나와요.”


스마트폰으로 직접 논문 대필업자들을 찾아줬다(네이버에만 들어가도 논문 대필 관련 업체가 수두룩하게 깔려있다). 그 형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그 주변 인물들도 날 찾았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형은 ‘장래’를 생각해서 믿을 만하고 안전한 사람에게 논문을 의뢰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이 형 건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난 계속해 논문을 거절했다. 몇 번은 정색을 하고 거절을 했지만, 형은 자신이 ‘까였다’란 자존심의 문제로 논문 문제를 생각해 1천만 원을 제시하며, 어디 끝까지 가보자란 생각으로 덤벼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내 수중에 1천만 원이 들어올 것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논문 1편의 공정가가 이미 책정된 상황에서 10배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길(?) 생각은 없다. 아니 그 전에 논문을 쓸 생각도 없다. (이 ‘논문’건에 있어서는 여러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차마 다 공개할 순 없다. 미안하다)



3. 석사논문은 장난이다.


논문 대필업체나 논문 대필에는 함정이 있다.


“석사면 2주면 한 편 나옵니다.”


의뢰와 동시에 전화통화가 이어지고, 학과와 논문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며칠 뒤 논문 초고가 파일로 날아온다. 의뢰인은 입이 귀에까지 걸린다. 여기서 1~2번의 수정만 더 거치면, 논문이 통과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어보고 싶다.


“빠르단 생각이 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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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다...


아무리 석사급이라도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서는 자료 조사를 하고,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방향을 정하고, ‘최소한의 소요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업체에서는 이런 물리적인 시간을 다 무시하고 논문을 가져다준다. 이유가 뭘까? 


간단하다 ‘짜깁기’다. 업체들은 자신들의 인력풀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 인력들이 2주 만에 논문 한 편을 만들어낸다? 자기들만의 데이터베이스를 자랑하지만, 그 데이터베이스의 수준이란 건 알만하다. 대부분 KISS(한국학술정보)로 대표되는 몇몇 논문검색시스템과 각종 학회지를 우라까이 하는 것이다(가난한 대학원생에게 하청을 주고, 중간에서 뜯어먹는 개XX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내 논문’이 아닌데, 그 논문에 공을 들이겠는가? 싼 게 비지떡이다. 특히 인기학과인 경영, 정치외교, 경제, 행정 등등의 논문은 산처럼 쌓여있다. 예를 한 번 들어볼까? 행정학회에서 매달 내놓는 짧은 논문과 학술제에서 내놓는 발제들만 모아도 어지간한 논문 하나는 나온다. 여기에 각 대학 학술제나 매년 쏟아지는 논문들만 짜깁기해도 훌륭한(?) 논문 한 편이 나온다. 하청을 받은 대학원생이나 ‘업자’들은 짜깁기를 기반으로 논문을 만든다. 아니면 물리적으로 2주라는 시간 안에 논문 한 편이 나올 수 없다.


이 논문의 수준에 대해서는 논외로 치자. 자신의 힘으로 논문을 쓴다 하더라도 학문에 뜻을 두지 않은 이상 그 수준이란 건 대개가 다 비슷비슷하다.


5~6년 전부터 내게 논문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에서 언급한 지방유지들의... 처음에는 ‘도와달라’는 의미로 접근했지만, 그 ‘도움’의 수준이란, 연구주제 발표를 제외한(이건 본인이 해야 하니까) 모든 걸 해달라는 의미였다. 그때 그들이 내놓은 그들 대학의 논문들을 봤다.


“씨바...어쩌라고?”


욕이 나왔다(그 논문의 수준과 ‘제작기간’ 때문에. 글밥을 10년 넘게 먹다보면, 내 앞에 있는 ‘글’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대충 ‘감’이 온다. KISS를 돌려보면, 이 논문이 어디서 어떻게 우라까이를 했는지 느낌이 온다)


딱 2가지만 말하겠다.


① 지방 대학원, 직장 대학원생의 논문 심사는 ‘여유’가 있다.


②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학원을 가는 경우와 다른 목적을 가지고 대학원을 가는 경우로 나눠서 생각해 봐야 한다.


지방대학원에 다니는 직장 대학원생의 경우 논문 심사에 여유가 좀 있다(나만의 개인적인 판단일 수도 있지만, 학부생이나 ‘학문’에 뜻을 둔 이들보다는 확실히 여유가 있다. 논문 연구주제 발표에서도 상당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이들에 대한 교수들의 일종의 ‘배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직장인의 대학원 수료는 그야말로 ‘생존’의 의미가 강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현 직장에서 비전이 보이지 않고, 조만간 직장에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이들이 ‘스펙’을 생각해 타이틀을 따는 경우라 생각할 수 있단 말이다(정말 잘 풀리면 겸임교수자리를 노려보는). 그러나 자영업이나 기타 ‘생업’이 불분명한(주로 임대수입이 많은) 이들의 경우에는 ‘타이틀’이 목적이다. 혹시 모를 출마나 지방에서의 명망가로 살기 위한 장신구 정도의 위치인 것이다(아닌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내가 만나본 이들의 99%는 이런 목적이다).


“어휴 저한테 오시지 그랬어요? 제가 편의를 봐드렸을텐데...”


나름 이름이 있는 사업가가 A대학이 아니라 B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가 논문관련 사건이 불거져(뉴스에 거론될 정도로 꽤 큰 사건이었다) 오르락 내리락 했을 때 A대학 교수가 당사자와 내 앞에서 했던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편의’란 게 꽤 편리했다. 그 사업가는,


“젊은 사람들하고 교류하면서 나도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좋은 경험이다.”


라고 말을 했지만, 얼마나 충실한 수업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학문적 성취를 평가하는 논문을 그 사람이 쓰지 않았으니, 그 학위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란 건 확실하다. 그래도 그 사람은 대학원을 통해 인맥도 쌓고, 재미도 느끼고, 타이틀도 땄다(졸업이 아니라 수료가 됐지만). 한 번 학원의 맛에 빠진 그 사람은 이후에 '경영자과정'도 찾아가서 듣게 됐다. 만학도의 길이 열렸다고 해야 할까?(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각 대학교에서 의욕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경영자 과정’에 대해 소개하겠다. 겉에서 보면, ‘배움에 목말라 하는 만학도들의 용기있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상 뜯어보면, 정말 재미있다)


다음 회는 본격적인 ‘논문 생산’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번 회에는 변죽만 올렸는데,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논문 대필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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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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