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우리를 이렇게 기억해도 괜찮은 걸까

입력 2015. 1. 8. 09:27 수정 2015. 1. 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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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27] 세대간 오해 불러일으킨 영화, 이해의 계기가 될 수 있길

[오마이뉴스 김성호 기자]

▲ 국제시장

메인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뜨거운 찬사와 냉정한 비평이 엇갈린다. 혹자가 '기성세대에 바치는 감격적인 헌사'라 말하면, 다른 이는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불편한 신파극'이라 답한다. 인터넷사이트 일간베스트가 적극 나서서 영화를 띄운다며 논란이 제기되더니, 대통령과 여야 유력 정치인의 감상평이 이어지고, 대구 교육청의 단체관람지침 의혹까지, 지난 한 달 간 영화판을 뜨겁게 달궜다. 한 유명 영화평론가가 자신의 SNS에서 이 영화를 비판한 일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평론가와 대중의 비평이 크게 엇갈리며 많은 논쟁이 빚어지기도 했다. 올 한 해 수많은 영화가 분위기를 몰고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 영화만큼 논쟁을 일으킨 작품은 적어도 내 기억엔 흔치 않았다. 이 모두가 개봉 4주차에 접어든 1월 첫째 주까지 박스오피스 부동의 1위를 점유하고 있는 <국제시장>의 이야기이다.지난 12월 17일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신작 <국제시장>은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1월 7일자 기준으로 836만여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와 같은 흥행세라면 2015년 첫 천만 관객도 노려봄직한 속도다. 2009년 <해운대>를 통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감독으로 유명세를 탄 윤제균 감독은 이후 대중들의 입맛에 맛는 작품을 만들 줄 안다는 평가와 지나치게 상업적 면모만 부각시키는 연출자라는 극단적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지난 반 세기를 덕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아우르는 대작영화를 가지고 돌아와 배급사 CJ 엔터테인먼트의 지원을 등에 업고 겨울 영화판 평정에 나섰다.

<포레스트 검프>와 <국제시장>, 어떻게 다른가

<국제시장>은 세간의 평처럼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94년작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한다. 지능지수가 떨어지는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불굴의 의지와 엄청난 운, 따스한 마음씨를 가지고 미국 현대사의 격동의 물결을 헤쳐온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포레스트 검프>와 그 설정과 전개가 흡사한 점이 적지 않다.

흡사한 점은 이뿐 아니다. 영화적 완성도와 관객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포레스트 검프>가 격동의 역사 속 논쟁점이 있는 부분을 미화하고 불편한 지점을 외면하는 수구적 성향의 작품이란 비판이 이어졌던 점도 <국제시장>과 흡사한 부분이다.

하지만 두 작품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장르다. <포레스트 검프>가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역사적 사건들을 비현실적으로 희화화하며 가볍게 넘어갔다면, <국제시장>은 공감을 살 수 있는 사건과 동질감을 느낄 만한 인물을 통해 감동을 주입한다.

일부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거나 지나치게 가볍게 보이게는 했을지언정 판단은 온전히 관객에게 맡겼던 <포레스트 검프>와 달리, <국제시장>은 특정 세대와 인물을 미화한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국제시장>은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관객들에게 신파의 방식으로 호소하는 프로파간다적 영화인 것이다.

파독광부에서 베트남전까지...덕수를 이끈 동력은?

▲ 국제시장

흥남부두에서 아버지(정진영 분)와 덕수

ⓒ CJ 엔터테인먼트

<국제시장>은 흥남철수 때 아버지와 헤어져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남으로 피난 온 덕수(황정민 분)를 주인공으로 한다. 덕수는 열살 무렵의 어린 나이부터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가족의 생활비와 동생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쉴 새 없이 일을 해온 인물이다.

영화는 한 사람이 모두 겪어내기 어려운 현대사의 굴곡을 덕수로 하여금 모두 거쳐내게 한다. 그는 흥남부두에서 극적으로 탈출하며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잃는다. 남으로 내려와서는 어머니와 두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독일과 베트남으로 연이어 떠나 외화를 벌어들이는 역군으로 활약한다. 독일에서는 광산 붕괴로, 베트남에서는 전쟁 속에서 몇 차례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다.

자신의 검정고시 시험도 포기하고 동생의 대학진학을 위해 파독광부로 지원하는 에피소드는 덕수가 어떤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모의 작은 수입품 가게 '꽃분이네'를 인수해 장사를 이어나가며 아내와 홀어머니, 동생에게 책임을 다하는 그는 북에서 헤어진 아버지와 동생을 찾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행사에도 참여한다.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만큼 굵직한 사건들을 온 몸으로 겪어나가며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남이자, 형이고, 오빠이며, 아버지인 동시에, 남편인 것이다.

버거운 책임과 힘겨운 의무를 묵묵히 다하게끔 덕수를 이끄는 동력은 헤어진 아버지의 당부와 그로 인한 책임감이다. 그는 상실된 부성을 대신해야 하는 아들이며, 자신 때문에 동생 막순이를 잃어버려 가족의 이별에 책임을 느끼는 원죄적 인물이기도 하다.

구원받던 나라에서 구원하는 나라로...한국 상징하는 덕수

영화 <국제시장> 한장면.

ⓒ CJ엔터테인먼트

영화의 오프닝에서 철수하는 미군에게 한국 사람들을 태워달라 애걸하는 한국인 통역의 모습은 이후 광산붕괴 장면에서 독일인 담당자에 애걸하는 영자의 모습으로, 베트남에서 덕수 일행에게 배에 태워달라 호소하는 주민대표의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베트남 주민들을 배에 태우고 도피하는 과정에서 덕수는 총격을 당해 다리를 절룩거리는 후유증을 얻는다.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장면으로, 덕수를 한국 현대사의 알레고리로 이해할 때, 한국인이 타인에게 구원을 간청해야만 하는 존재에서 주체적으로 타국민을 구원하는 상황으로 변화했음을 상징한다.

이는 이창동 감독의 역작 <박하사탕>에서 주인공인 영호가 1980년 광주에서의 사고로 다리를 절게 되는 장면과 대비해서 보면 더욱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덕수와 영호 모두가 각기 한국 현대사의 알레고리적 인물임이 분명하고, 두 인물이 총격에 의해 다리를 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박하사탕>이 한국 현대사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1980년 5월의 광주로 보고 여기서 얻은 상처로 평생 영호를 절룩거리게 했다면, <국제시장>에선 덕수가 베트남의 죄 없는 주민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LF, 영화에선 '베트공'으로도 표현)의 학살로부터 구하는 과정에서 총격을 당하게 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상처에 대한 책임이 공산주의 세력에 있음을 명확히 한다.

덕수가 장애를 얻는 과정과 결과가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흥남철수에서 중공군의 공격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어야 했던 한국인이, 역시 외세가 개입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에서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죄없는 민중을 구하는 것. 이는 자유민주주의 전선에서 일익을 담당할 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어야 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물론 덕수라는 한 인물의 상처를 곧 한국의 상처로 등치시키는 건 비약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더불어 영화가 현대사의 모든 부분과 인물을 다룰 수 없는 만큼 비판이 과도하다는 주장에도 일부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지난 반 세기를 한 인물의 삶을 통해 되새기는 영화에서 주인공을 현대사의 알레고리적 인물로 해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안이한 생각이며 영화가 다루지 않은 부분과 다룬 부분 사이에서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제기될 만한 지점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힘을 잃는다.

기성세대 위로 넘어 젊은세대에 부채감 안기는 방식

▲ 국제시장

국제시장에서 구두를 닦는 덕수와 달구

ⓒ CJ 엔터테인먼트

덕수는 한국이 공산주의 세력과 대항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상실과 다리의 상처를 입은 희생자이며 베트남에선 민간인 신분의 구원자였고 귀국해선 정치색이 없는 산업화의 역군이었다. 영화가 스스로는 정치나 이념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역사의 굴곡 속에서 끊임없이 어려움에 봉착하고 이를 개인적 노력으로 이겨내는 덕수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알레고리적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애쓴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덕수는 철저한 희생자이며 가족과 국가를 일으킨 공로자이고 베트남 민중을 구한 구원자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작은 가게 하나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며 사회에선 꼬장꼬장한 늙은이 취급을 받고 가족들에게도 친근한 어른이 되지 못한다. 모아둔 돈도 없고 다리를 저는 보잘 것 없는 노인일 뿐이다. 영화는 덕수의 희생과 현재의 괴리를 통해 비애감을 증폭시키며 선배세대에 위로와 향수를 선사하는 걸 넘어 젊은 세대로 하여금 일종의 부채감을 느끼게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영화가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공정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베트공은 아이를 포함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테러를 자행하고 민중을 학살하는 잔학한 반군일 뿐이었을까?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인은 자유민주주의의 구원자로만 기억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어째서 영화는 수십년에 걸친 독재정권 시절을 외면하고 있을까?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왜곡되어 있는 건 아닐까? 덕수의 세대는 한국의 뒤틀린 오늘에 책임이 없는 희생자인 것일까?

돌이켜보면 덕수는 가장으로서 자신이 맞닥뜨린 현실의 장벽을 모두 깨부수고 이겨내는 신화적 인물이다. 그는 흥남철수, 산업화 이전의 가난, 파독광부 생활, 월남전 등을 거치며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집안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그의 가족은 물론 국가 전체가 일어설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의 어제와 오늘을 보며 지난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그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기도 하고 위안받기도 하며 공감을 느낄 것이다. 동시에 그가 겪는 오늘의 대우가 부당하다 느끼고 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젊은 세대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극 중 외국인 노동자에게 시비를 거는 학생무리의 모습을 보며 이질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부모세대에 아이들을 맡긴 채 자기들끼리 훌쩍 해외여행을 떠나는 젊은 세대가 일반적인 모습이 아님을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용은 불안정하고 집값과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으며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서 결혼과 출산이 멀어져만 가는 이 시대에 부모에게 줄줄이 아이들을 데려와 맡기고는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과연 일반적인 것일까? 역사와 사회에 대한 몰이해가 세대간의 오해를 강화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것만 같아 몇몇 장면에서 아쉬움을 지우기 어려웠다.

영화는 역사적 수레바퀴에 짓밟힌 사람들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덕수와는 또 다른 산업역군들, 최소한의 근로여건도 지켜지지 않는 작업장에서 일하고 또 일해야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돌아보지 않는다. 노동의 문제는커녕 민주화의 문제 역시 관심 밖이다. 지난 60년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부정선거와 혁명, 쿠데타와 독재 등의 기억은 완전히 말소되었다. 단 한 번의 국기배례 장면이 그 모두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일까? 가장 호의적인 평론가도 긍정적인 답을 내놓지는 못할 것이다.

모든 흥행코드를 한 편의 영화 속에 구겨넣다

영화적으로 보아도 <국제시장>은 부족함이 많은 작품이다. 한 편의 영화 속에 모든 흥행코드를 넣어야 한다는 최근 한국 블록버스터들의 공감대를 이 영화도 나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정과 가족애, 책임감 등은 물론, 탄광에서의 재난액션과 시장에서의 추격액션, 파독노동자들의 만남 장면에선 춤과 노래, 여기에 멜로와 전쟁, 코미디 등의 장르적 흥행코드들이 말 그대로 '구겨넣어져' 있다.

베트남에서의 폭탄테러신은 <색,계>의 탈출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시장에서의 추격액션신, 베트남 정글에서 뱀이 나오는 장면은 수도 없이 봐온 성룡영화나 할리우드 액션물의 그것을 따온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사회에 유머지체현상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던 코미디장면들은 인터넷을 떠도는 짤막한 글이나 영화, 드라마들을 통해 익숙한 것들인데 그나마 오달수의 개인적 능력 덕분에 기본은 했다고 생각한다.

컷과 컷 사이가 너무나도 정직해서 촌스러움을 넘어 늙어있는 듯했던 연출 역시 식상하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부분적으로는 노련한 연출자다운 솜씨가 엿보이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아쉬움이 훨씬 많았다.

전반적으로 뛰어난 영화라고 보기 어려운 작품이었지만 분명히 특정 세대에게 호소력있는 영화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자주 극장을 찾지 않는 이들에겐 연출의 아쉬움이나 세련되지 못함이 오히려 정직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리라. 더불어 많은 장르적 재미를 한 영화에 밀어넣은 선택도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제나 그렇듯 영화엔 정답이 없는 것이다.

<국제시장>이 우리사회에 더욱 많은 건강한 담론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하며, 이로부터 세대간의 불화와 오해 대신 이해와 화해가 찾아오길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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