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 타워에서.. '엔지니어'라 불러다오! - 임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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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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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0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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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의 명물중의 명물은 CN 타워다.

어차피 시간이 없어서 2시간 거리의 나이아가라 폭포도 못가보는 마당에 CN 타워도 못 올라가보면 서운할 뻔 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캐나다의 상대회사측에서 CN 타워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큰 회전 레스토랑(높이 351m)에서 저녁식사를 하자고 한다. 다른 것은 사양해도 이런 것은 사양 안 한다.

CN 타워가 갖고 있는 기네스 기록은 'World's Tallest Building and Free-Standing Structure'이다. 가장 높은 타워는 말레이지아의 쿠알라 룸프르에 있는 95층의 페트로나스 쌍둥이 타워(the 95-storied Petronas Twin Towers in Kuala Lumpar)로 452m인데, CN 타워의 관망대 높이는 이 보다 5m 낮아 447m로 세계 2위다. 하지만 CN 타워 꼭대기에 있는 안테나의 높이는 이 보다 훨씬 높아서 정확히 553.33m이다. 기네스 북에서는 안테나나 국기봉의 높이는 안 쳐주기 때문에 CN 타워가 세계 1위를 놓친 것이다. 하지만 이 기록도 조만간 중국에 의해 깨질 전망이다. 중국이 페트로나스보다 14m 높은 466m 짜리 타워를 상해에 건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CN 타워가 갖고 있는 다른 기네스 기록은 다음과 같다. (뭐 기록을 억지로 만들어 내기 위해 이것 저것 의미를 부여한 것 같기도 하다)

World's highest public observation gallery - Sky Pod at 447 m (1,465 ft.)
World's highest bar - Horizons Cafe at 346 metres (1,136 ft.)
World's longest metal staircase - 2,579 steps
World's highest glass floor - 342 metres (1,122 ft.)
World's highest and largest revolving restaurant - 351 metres (1150 ft.)
World's highest 'wine cellar' - 351 metres (1150 ft.)

그런데, 유명한 타워인 만큼 들어가는 데에도 유명세를 한다. 다음 사진은 타워 들어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보안 검색 장치인데, 한 명씩 들어가면 제트 바람을 불어댄다. 이렇게 해서 옷이나 몸에 붙은 미세 화약 성분을 이온화학적으로 탐지해내는 것인데, 얼마나 민감하냐 하면 완전밀봉된 액체폭탄을 살짝 한번 만진 사람이 25번 손을 깨끗이 씻어도 여기에 탐지될 정도다. 분자 한 두 개만 있어도 탐지가 가능한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인데, 캐나다 벤처회사가 이걸 만들었다고 하며, 이 회사의 화약 탐지 기술은 세계적이라는 후문이다.

Pa170027.jpg
액체폭탄도 찾아내는 엄청 민감한 보안검색 장치

저녁식사에는 이 회사의 사장을 제외한 회사 중역들과 2명의 엔지니어가 자리를 같이 했는데, 이 엔지니어의 과학기술적 식견이 대단하다. 앞의 정밀 화약 탐지장치도 이 사람이 설명해서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캐나다에서는 정밀 자력계 (precision magnetometer)로 다이아몬드 광산을 찾아내는데, 상당히 성공적이라는 설명이다. 캐나다같이 땅은 넓고 얼음이 뒤덮여 있어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서는 이런 기술이 매우 효과적이고 경제적이겠다 싶다. 우리 나라야 직접 채집용 삽 들고 다니는게 빠를지도 모르고...

타워 레스토랑 음식값이 얼마나 비싼가 하고 살짝 보니, 40-50 C$ 즉 우리 돈으로 3-4만원 수준이다. 비싸긴 하지만 이 곳의 특수성을 감안해볼 때 바가지 요금은 아니다.

여기서 보니 토론토가 밴쿠버보다 경제활동이 보다 활발한 게 한 눈에 느껴진다. 이 사람들 설명으로는 퀘백시의 돈과 사람이 요즘 토론토로 몰려들고 있어, 토론토가 북적대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토론토에는 고층빌딩도 엄청나게 많고, 밤인데도 빌딩들이 70-80%가 훤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밤에 야근들을 이렇게 열심히 하나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보니,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든다. 첫째는 캐나다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에너지 절약정신이 없어서 사무실 불을 잘 안 끈다는 것이다. 둘째는 아마도 밤에 청소들을 하기 때문일 것이란다. 다음은, 관광목적상 훤히 밝혀놓지 않았을까 한다. (설명이 거의 창작소설 수준?) 캐나다는 전기에너지를 원자력에 의존하는 비율이 80%정도나 되니, 비교적 전기 에너지를 풍족하게 쓰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은 사실같다. 그러고 보면 원자력 의존비율이 50%정도되는 우리 나라도 원자력의 안전만 지켜질 수 있다면, 생활의 풍요와 산업경쟁력 향상을 위해 잘한 선택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레스토랑이 한 30분에 한 바퀴 정도 도나보다. 조금 있으니까 빌딩은 사라지고 한반도보다도 더 큰 온타리오 호숫가 전경이 나타난다.

가볍게 사업 얘기가 끝나고, 화제가 이곳의 다양한 문화로 옮겨갔다.
토론토는 전 세계 문화를 거의 다 체험해볼 수 있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탈리아 음식이든, 스페인 춤이든, 중국 요리든, 일본 쑤시(초밥요리)든, 인디언 수공예품이든 모두 구경할 수가 있다고 한다. 그것도 그 나라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 가서... 그래서 주말마다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 가서 여러 풍물을 접하는게 이곳 사는 재미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캐나다 인디안들에게는 거의 면세에다 보조금도 지급한다는 얘기를 한다. 특히 캐나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법대나 의대도 인디안 출신들은 거의 원하면 그냥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한다. 왜 그러냐니까, 아무래도 그들의 주거지를 침략한 이민자들의 죄의식(guilty) 때문이 아니겠냐는 솔직한(?) 설명이다.

변호사와 의사 얘기 나온 김에 여기서 얼마나 인기가 있고, 보수는 어떤지 물어봤다. (이런 것 물어보는게 여기서는 예의에 벗어난다는 얘길 알고는 있지만, 물어도 될 분위기라서... ) 개인차가 있지만, 통상 변호사는 일반 대졸자에 비해 30%정도 보수가 더 좋고, 의사는 2배 이상이라고 한다. 의사는 직업의 특성상 고되게 일하고 많은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에 의사 보수가 보통 사람들의 2배이상이 되어도 별 상관을 안하는 반면, 변호사 보수가 왜 그렇게 많으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 있다고 한다. (글쎄 30%하고 2배가 많다??? 3배하고 20배가 아니고...)

그런데, 중역중 한 사람 명함에서 자신이 석사이자 엔지니어라는 것이 찍혀있어서, 호기심 많은 내가 그걸 그냥 넘기질 못하고 물어봤다. 엄청 고학력 사회인 우리나라 같으면 '석사'는 명함도 못내밀고, '엔지니어'는 천대받으니까 연구원이다, 과장이다 부장이다 이런식으로 바꿔 부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한테서 기상천외한 설명을 들었다.

캐나다에서는 함부로 "Engineer"라는 호칭을 쓰면 법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엔지니어가 되려면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 도제생활을 하는 Practice Engineer 생활을 하고, 별도의 자격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Professional Engineer가 되어야 비로소 "Engineer"라고 불리우게 된다는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아도 곧바로 엔지니어라는 호칭을 못쓰고 일정기간의 경력과 자격시험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끼고 있는 것과 같은 철로 된 반지를 엔지니어 협회로부터 받게 되는데, 이 반지는 한 때 캐나다에서 건축한 다리가 무너져서 많은 사상자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 사고 후 엔지니어들이 정직하고 철저하게 설계를 해서 이런 사고가 절대로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고 결의하여, 그 다리를 녹여서 반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한테는 그 초라하고 밋밋한 철제 반지가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신성한 상징인 것이고, 그래서 그 반지를 낀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럽고 명예스러운 것이다. 단지 명예로만 끝나는게 아니라,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딸 때,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것이 그 분야의 엔지니어 수가 몇 명이냐라고 한다. 즉 회사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회사의 보배인 것이다. 그러니 명함에 자랑스럽게 넣는 것이고 주위에서도 이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 사람들이 말하는 엔지니어는 기술사 정도가 아닌가 싶고, 우리나라 기술사들이 고졸 현장근무 15년 한 사람과 동급으로 쳐진다는 얘기를 접할 때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고졸학력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논리라면 고졸 사법서사 15년하면 변호사 자격증을, 병원 근무 15년 하면 누구나 의사자격증을 주는 것과 같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싶은 것이다. 삼풍 백화점과 성수대교가 그냥 무너진 것이 아니고, 대구 지하철 폭발사고가 그냥 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상투적으로 얘기하듯 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과 윤리의식이 무너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 2000년전에도 "요즘 세상은 윤리의식이 땅에 떨어졌다"고 했었다 - 현대 과학문명을 지탱해줄 제대로 된 기술자층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캐나다의 총 얘기로 화제가 옮아갔다.
캐나다에서 총을 사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총을 보유하고 이를 이동시 일일이 신고하고 확인받아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서라도 대부분 안 갖고 있다고 한다. 단 사냥하는 사람들은 이를 소유할 수가 있는데, 평생 살면서 자기들 주위에 총을 갖고 있는 사람을 구경한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총 소유는 드문 경우라는 설명이다. 매년 총기사고로 40명 정도가 사망을 한다고 하니, 미국보다야 엄청나게 낮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엄청나게 높은 사고율이 아닐 수 없다.

저녁식사를 마쳐가면서 물어보니 본부장(Director)이 49세의 중국계 캐나다인이다.
중국계라는 것도 그렇고 비교적 젊은 사람이 중역이라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 대목에 가서 우리나라도 한창 일할 허리의 나이가 노쇠한 점은 한번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나이와 관계없이 젊고 유연한 사고를 하며 실력있는 사람들이 이런 자리에 많이 앉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인터넷 한겨레 '영국 테마기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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