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우선인가 인적자원이 우선인가? - 호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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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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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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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호섭이
 
제 목    시스템이 우선인가 인적자원이 우선인가?
 
오늘은 집에 혼자 있는 관계로 깊이 없는 본인의 생각을 두서없이 끄적여 보려고 한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아마도 둘 다 중요하다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것은 각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무엇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해외인재 유치를 통한 인적자원 보강이라는 한국 대기업의 전략이 과연 유효적절한 것인가라는데 문제를 제기하기 위함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미국은 적절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므로 보다 뛰어난 인재만 있다면 보다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고 한국은 시스템이 부적절하므로 시스템만 갖춘다면 훨씬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즉, 한국의 대기업이 인재유치에 80%, 시스템 개선에 20%의 에너지를 쏟는 것 보다는 시스템 개선에 80%, 인재유치에 20%를 쓰는 것이 비용-효과 측면에서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미 확보한 연구원으로부터 최대한의 성과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연구원을 적절히 대우해주고 연구원의 피로도를 최소화시키고 연구능률을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그럼 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보자. 나는 한국과 외국의 대학원 및 회사 회사를 모두 다녀보면서 과연 시스템이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나름대로 심각하게 바라봤다. 이런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내가 다니던 우수한 인재가 모였다는 한국의 대학원의 랭킹이 세계 100위에도 못 든다는 소릴 듣는 반면에 내가 다니던 또 다른 외국대학은 그보다 못한 학생들을 가지고 세계랭킹 10위권이란 소릴 듣는다는 사실이었다. 분명히 내가 다니던 한국의 대학원은 나와 동등하거나 나보다 우수한 학생들이 힘겨워하면서 연구에 열중하던 곳이었고, 외국대학은 학생들의 수준이란게 평균적으로 한국의 대학원보다 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세계랭킹 10위권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이 뿐만 아니라 내가 다니던 한국의 대기업 L사의 우리 파트는 틀림없이 인재로 가득찬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최고라는 소릴 못 듣는 형편이었지만, 지금 다니는 미국회사는 인적자원이 한국의 L사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분명히 이 분야에서 세계최고라는 소릴 듣고 있고 그만한 실적을 내고 있다. 나 역시 분명히 한국의 대학원에서 더 피로하게 일했고 한국의 L사에서 역시 피곤하게 일했지만 이상하게도 상대적으로 널널하게 일하는 미국에서 훨씬 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렇게 내가 겪은 바로는 지금 한국의 문제점은 인재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넘쳐 나는 인재를 하나로 묶어서 효과적으로 연구하게 할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천재를 데려다 놔도 일할 여건이 엉망이고 부장이 꽝이라면 천재는 지쳐가고 원했던 성과는 안나오게 되는 것이다. 과거 수십 년간 외국의 명문대에서 학위하고 귀국한 숱한 인재(?)들이 현재 한국의 이공계를 움직이고 있건만, 왜 한국은 아직도 이런 수준인가? 가장 큰 이유는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지금도 시스템이 나아지고 있으니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일 테고, 또 하나는 시스템에 대한 노하우가 거의 없는 박사학위자가 귀국자의 대부분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여기에 부가하여 설령 시스템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사회 여건상 실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대학원을 살펴보면, 모든 권력을 교수가 쥐고 있어서 행정자체가 교수의 편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고, 학생지도도 교수 맘대로 하게끔 되어 있고 심지어 학생의 미래에까지 교수가 상당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정이니 가히 교수의 권한이 하늘을 찌를 지경이다. 이런 시스템하에서 일이 합리적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대학원생은 힘들게 열심히 일하지만, 상당부분의 시간은 연구와 관련 없는 곳으로 버려지고 대학원생도 지쳐가게 마련이다. 일단 배정된 교수 (학생의 교수 선택권이 상당부분 제한되어 있다는 의미에서의 배정)는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바꿀 수 없으므로 대학원 입학은 노비문서에 도장 찍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올 법 하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은 대부분, 교수가 학생의 생사여탈권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은 교수가 맘에 안들면 얼마든지 교수를 바꿀 수도 있다. 즉, 교수의 학생에 대한 지배력은 한국에 비해 아주 적다는 이야기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어떻게든 교수가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해서 학생들로부터의 인기를 유지하는가가 교수 자신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된다. 즉, 학생의 사기를 올리고 어떻게든 학생의 연구를 북돋우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행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회사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상명하복식으로 되어있고, 이것이 가끔 어떤 분야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구에 있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명하복식 체제에서는 관리에 대한 권한 및 책임을 지는 윗사람들이 아랫사람들의 피로도를 줄이고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데 인색하게 마련이다. 그냥 명령하면 되는데 뭣 때문에 힘들여 시스템을 개선하려고 하겠는가? 그리고 역시 대학과 마찬가지로 힘있는 윗사람이 편한 방향으로 시스템이 재편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도 회사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연공서열에 의한 문제다. 내가 미국회사에 들어와서 놀란 것은 우리 파트의 부사장 디렉터 그룹리더 그리고 중하위권 연구자의 나이가 정확히 한국과는 반대로 되어있었다는 점이었다. 부사장 41세, 디렉터 42세, 그룹리더 46세, 어떤 연구원 54세. 이것은 대부분의 구성원이 54세의 연구원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고 41세의 부사장을 시기하지도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반면 내가 겪었던 한국 L사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능력 없는 사람이 나이가 되서 부장에 앉아 무한권력을 행사함으로써, 나이 젊고 유능한 일반 연구원들의 창의성이 극도로 제한되었다는데 있었다. 능력 없는 상사는 능력 있는 부하를 경쟁자로 취급하여 닥달하게 마련이고, 자연히 능력 있는 부하는 회사를 떠나게 마련이다. 최소한 연구소에서는 30대의 부장이나 50대의 평연구원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 열거하기 불가능할만큼 자잘한 일들 (ex. 출장비 정산, 물품 구매, 프로젝트 수행 등등등)에 한국회사는 미국회사에 비해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동시에 연구원을 피로하게 하고 연구능률을 떨어뜨린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구체적인 것은 너무 길어 쓰지 않기로 한다.



 
 

  송세령 넵. 우리사회를 자세히 한번 둘러보면 수많은 "적토마"들이 당근이나 씹으면서 짐이나 나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2002/09/24 x 
 
  송세령 그러면서도 마부는 "적토마"를 선호하지 "당나귀"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항상 합리적이고 수평적인 사고는 무시하고 "멀티플레이어"만 강조하죠. 2002/09/24 x 
 
  송세령 몇년지나면 "적토마"는 자신이 "적토마"라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당나귀"가 되어버리죠. 2002/09/24 x 
 
  muroi system에 관한 책이면 지만원 박사의 책을 추천합니다. 직설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분이지만, 그래도 책의 내용만큼은 추천합니다. 2002/09/24 x 
 
  소요유 지난 30년간의 교훈은 과학기술계도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한국이나 일본사회가 서구사회에 비하여 '사회적으로 각종 에너지 소모가 많은 사회'입니다. 그 이유를 여러가지로 분석해봐야 겠지만 지난 수십년간의 결론은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의 변화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 문제입니다. 망하고 다시 일어나는 방법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혁명은 쉽지만 개혁은 어렵다는 말도 많이 합니다. 혁명이아니고 개혁이라면 결국 시간이 걸리는 일이테고, 따라서 현실적인 기반을 직시하고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게 우리가 할일이 아닐까합니다.  2002/09/24 x 
 
  임호랑 그래서 제가 제안하는 것 중하나가, 이공인을 소수정예의 관리자 그룹과 다수의 전문가 그룹으로 나눠서 인재육성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시스템 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임무지향적 Agency를 중심으로 연구소들과 대학, 기업이 한데 엮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수의 관리자들이 중심이 되어 합리적인 시스템을 운영하면 됩니다. 그 다음은 다 나와있는 시스템공학, 동시공학 등을 적용하면 됩니다. 서구사회가 이렇게 되어있다는 것이 제 분석결론입니다. 2002/09/24 x 
 
  백수 인적자원이 있어도 받아들일 시스템이 엉망이면 인적자원을 써먹을 수가 없죠. 이것들의 우선순위는 명확합니다. 제가 아직 백수신세를 면치못하는 이유의 하나도 바로 시스템입니다. 실무부서에서 채용협의가 다 끝나도 마지막 인사부서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규정을 들이대며, 이것 깍고, 저것 깍고,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채용불가 판정을 내리더군요. 시스템이 인재들의 사기를 북돋아 일을 하게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재들의 사지를 잘라내고 기를 팍 죽인다음, 데려다 부려먹겠다는 데야 어찌할 도리가 없답니다. 당해본 사람외에는 이해하지 못할겁니다. 대한민국이 설마 그럴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귀국했다가 아직 실직상태랍니다.  2002/09/24 x 
 
  백수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죠. 경력을 산정할때, 사기업체의 경우 80% 만 적용한다라는 규정을 본적이 있죠. 안믿어도 그만입니다. 그렇게 계산하여 경력이 만약 4 년 11 개월이 나왔다고 합시다. 이것을 4 년으로 인정한답니다. 5 년이 아니고, 그러면서 하는 말, 한달만 더 일하다 오지. 인재를 하루라도 빨리 데려다 쓸 생각을 해야 할 인사부서에서 한달 더 있다가 오라는 말을 하는 곳이 대한민국이랍니다.  2002/09/24 x 
 
  정문식 그렇습니다. 과연 시스템의 개선 없이 대기업들의 소위 '해외 인재 스카우트 작전'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기업들은 해외 인재를 못 스카우트해서 '아우성'인데, 정작 유학생들은 국내 기업을 기피하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다 아시겠지만, 기업들이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되지도 않을 스카우트 작전을 계속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 번 추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002/09/24 x 
 
  김덕양 시스템 개선이 한표 입니다. 어려워도 한걸음 더 돌아서 가는 방식으로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깨달아야할텐데. 현재 정부나 기업에서 하는거 보면 당장 가시적인 효과만을 노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2002/09/25 x 
 
  김용국 시스템 개선에 두 손 들어 드립니다!! 얼마전 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이 한 말 중에 '30대 후반~40대 초반의 해외 인재'를 눈을 크게 뜨고 찾는 다고 했었죠. 문제는 이런 인재들이 뒤틀린 시스템에서 견디지 못하고 제 능력을 발휘 못 한다는 데 있는 겁니다. 뭔가 하려 치면 "윗 분"들께서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엑스표를 들어 버리니까요. 2002/09/26 x



2002년 9월 24일 회원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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