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망해도 경제대국인 이유 - ca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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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2
등록일
2003-05-2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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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camus
 
제 목    10년을 망해도 경제대국인 이유
 
작년 여름에 학교 대표로 일본 동북대( Tohoku Univ. 東北大 )에서 개최된 AEARU student camp에 참가했습니다. AEARU란 Association of East Asian Research Universities, 즉 동아시아 연구 중심대학 협의회로, 한국, 일본, 중국 동북아 3국의 소위 연구중심대학들 -_-;; 이 모인 단체입니다. ( 한국에서는 KAIST, 서울대, 포항공대 세 학교가 가입되어 있습니다. )

6박7일의 캠프 동안 동북아 삼국의 쟁쟁한 brain들 ( 물론 -_-;; 저는 아닙니다만;; )과 팀이 되어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고, 서로 토론하고 경쟁했던 경험은 무척 인상깊었고 지금 생각해도 참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 때 같은 팀이었던 친구들과는 지금도 자주 연락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일본, 중국 친구들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여기서는 일본에서 겪었던 일 하나만 쓸까 합니다.

캠프 이틀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말그대로 찌는 더위 속에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닌 하루였습니다. 오후 일정의 마지막 코스로 간 곳은 동북대 내의 전기 통신 연구 센터였습니다. 다른 곳과는 달리담당자가 굉장히 유머 있고 영어도 잘해서 비교적 들을만 하더군요 ^^;; 뜻밖에도 이곳에서 굉장히 인상깊었던 일을 겪었습니다. 우선 국립대인 동북대의 연구센터에서 너무나도 널리 사용되는 핵심 전자 부품들이 개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동북대는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명문 국립대 중 하나입니다만, 일개 대학에서 그런 세계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HH-- 형 안테나였습니다. ( HH-- 는 그림입니다;;; 모니터를 살짝 돌려서 보십시오..) 야기 안테나라고 부르는 텔레비젼용 안테나가 이 동북대의 야기 히데쓰구(八木秀次)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사실!! 재밌는 것은 2차 대전중에 이 야기 안테나가 영국군의 레이더에 이용되었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레이더를 개발하지 못했던 것이 태평양 전쟁에서 상당히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역사적인 발명이 적국의 핵심기술에 응용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여하튼 이러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야기 안테나는 연구자의 사진과 함께 잘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전자 레인지의 핵심부품인 마그네트론이 이 연구센터에서 개발되었다고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_-;; 그 내용은 일정에 쫓겨 제대로 정리를 못한 관계로 생락하겠습니다. __;;

사실 저런 업적보다도 더 인상깊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자국의 과학자를 소개하는 담당자의 진심어린 목소리였습니다. 그 목소리에서, 저는 일본인들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과학기술자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습니다.대체 한국의 어느 대학에 이런 과학기술인 기념관이 있단 말입니까. 한국의 어느 과학기술자가 이렇게 존경을 받고 자랑스럽게 소개되고 있단 입니까. 일개 대학의 연구 센터에서 이러한 세계적 업적이 나온 것도 놀라웠지만, 과학기술자들을 우대하고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역사가 100 년이 넘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러한 성과는 결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풍토 차이가 현재 양국의 국력차로 이어진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어릴 때부터 항상 우리는 그렇게 배웠었죠. "일본은 우리의 선조들이 선진 문물을 전해줘서 키운 나라다"라고. 그 말의 이면엔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쟤들을 제낄 수 있다라는 근거없는 우월감이 있었던 것이 아닐런지요.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고 얼마든지 앞지를 수 있다고 믿었던 왜인들의 나라는 과학기술 수준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마인드에서도 일찌감치 우리를 앞질러 있었습니다. 경제대국, 과학기술대국 일본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앞선 마인드는 어린이들에 대한 과학교육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때마침 Open campus라는 대학 개방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캠퍼스 곳곳에서 진행되었던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주제의 과학 교실들. 깔끔하고 잘 갖춰진 실험기구들과 철저히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탄탄한 내용 구성 등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신경을 쓴 그들의 과학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는 제가 어릴 때 받았던 한국의 과학교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침침한 실험실과 녹이 슬대로 슬어버린 삼발이, 그런 낡은 기구들조차 자주 만져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 제가 기억하는 한국의 초등 과학 교육이었습니다.

얼마전 삼성의 시가총액이 소니의 것을 앞질렀다 하여 언론에서 호들갑을 떤 적이 있었지요. 벌써 1년 전 얘기입니다. 10 년동안 침몰해가는 일본과, IMF의 힘든 시절을 지나고 월드컵까지 멋지게 치뤄낸 한국. 게다가 외신들은 또 얼마나 한국을 띄워주고 있었습니까. 하지만,10 년을 망해도 여전히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이웃나라와, 급속도로 발전하며 우리의 입지를 좁혀오는 인구 13억의 거대한 나라. 우리는 그들 사이에 끼어있는 약소국에 불과합니다. 이제 겨우 국민소득 만 불에... 남들이 3만불 가까이 되어서 겪었던 이공계 기피를 겪고 있고, 당장 눈앞의 돈벌기에 급급한 한국의 기업과 정부는 과학기술을 말그대로 내팽개치고 있습니다. 이공계인들에게 이미 저주받은 땅이 되고 있는 한국의 실정은 10년 후 한국의 위상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하지요. 일본이 80 년대 들어서면서 이공계 기피를 겪었다고 하지만, 우리처럼 대우나 사회적 인식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공부를 기피하는 풍조에 기인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이공계기피와 우리의 그것은 엄연히 수준이 다른 것입니다. 지금도 저 나라에선 존경받는 직업 2위가 과학기술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선진국들이 겪었으니 우리가 이공계 기피를 겪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은 대단한 착각에 빠져있습니다. 이제 소득 만 불인 나라에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한국에서 가졌다 잠시 묻어두었던 많은 생각들이 타국에서 제 머릿속을 어지럽게 헝클어놓았습니다. 10 년 불황이라며, 외국인인 저에게조차 걱정을 늘어놓던 일본 친구들.. 그렇지만, 과학기술자들을 우대하고 자국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앞으로 위기에 빠질 것은 이 나라가 아니라 한국이란 생각이든 것은 저 뿐이었을까요.

세계에서 재래식 전력으로 미국과 맞짱을 뜰만한 유일한 나라.. 이 어마어마한 실력을 갖춘 武의 나라와 그 옆에 살고 있는 배짱만 좋은 文의 나라. 아니.. 이젠 文마저 무너지고 "돈"에 대한 신앙밖에 남아있지 않은 나라. 광복된 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났건만.. 언제쯤 우린 진정한 기술 독립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들보다 먼저 고속 인터넷 회선을 깔고, 그들보다 먼저 IMT2000 을 시작했다고 자축하지만, 그 핵심 기술들, 핵심 부품은 모두 어디에서 났던가요. 기술이 종속된 나라는 경제도 종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재주를 부리면 부릴수록 두꺼워지는 것은 그들의 지갑이죠. 이 나라의 "소위" 지배 계급들은 아직도 이 거대한 적국을 넘어서기엔 너무도 약하고 어리석으며 세상물정을 모르고 있습니다. 립 서비스에 불과한 외신의 칭찬에 취해 무엇이 우리의 길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거죠.

도대체 이런 나라에 미래가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연구 센터를 나오면서 제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졌습니다.
                             



 
 

  최희규 "기술이 종속된 나라..." 가슴을 짠~ 하고 파고드는 군요... 2003/03/06 x 
 
  임호랑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술이 종속되니 경제뿐 아니라 안보도 문화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망하고도 불과 10년만에 경제를 복구한게 6.25때문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애써 해석하지만 더 근본적인 힘은 기술력에 있습니다. 왜냐면 정치, 경제적으로 일본이 패망했던 것이지, 기술인력은 고스란히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2003/03/06 x 
 
  cantab 독일역시 일본과 같은 사례입니다. 사람들은 라인강의 기적을 얘기하지만 독일인들은 그런거 없다고 합니다. 독일역시 빠른속도로 2차대전의 잿더미로 부터 부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과학기술력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2003/03/06 x 
 
  cantab 일본이나 독일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2차대전 중에 병력의 부족으로 고전하다 10대 후반의 소년들까지 전쟁터로 끌어가는 상황에서도 이공계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들에게는 징집영장을 발부하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기능인력도 징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존된 과학기술 인력들이 패전후 복구에 큰 공헌을 했음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알량한 병역혜택 (사실 혜택이라고 할 수 없는) 이라고 할 수 있는 얼마 되지도 않는 특례보충역 조차도 징집해서 사병으로 부리려 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좋은 대조를 보입니다. 병무청 관계자들은 특례보충역 없애서 1개 연대 정도의 병력을 더 확충하는게 국가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있나봅니다. 2003/03/06 x 
 
  로켓연구가 동북대는 일본내에서도 특수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대학이지요. 아마 한번 진지하게 연구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2003/03/06 x 
 
  김선영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에서도 패전후 독일에 대해서 나오더군요. 과학자들과 청년들이 같이 독일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나옵니다. 거기서 과학자의 사명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사회가 참 인상깊었습니다 2003/03/06 x 
 
  트리비어드 나라형편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외교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점점 궁지에 몰리는 기색입니다. 정말 걱정이 앞섭니다. 정치면이나 시민의식면에서 최근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에서는 그것만으로 선진국이 되는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정치민주화는 선진국으로 가는 필수조건일 뿐이지 필요충분조건이 아닙니다. 법무부만 개혁이 필요한게 아니지않습니까? 2003/03/06 x 
 
  회전목마 핑크플로이드 앨범중에 dark side of the moon (맞겠지요... ^^) 이라는 제목이 기억나는군요. 일본에 대해서 생각할때마다 느꼈던 것이지만....... 과거 문화에 굶주렸던 그들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은 문화를 건네받아서 어떻게 소중히 간직하고 발전시킬지를 아주 잘 알고있는 민족 같았습니다. 문화 빈국이라는 이면에는, 문화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소중히 키워나가는 소양이 있었던것이 아닐까요? 적어도 그들에게 이공계라는것이 돈벌 수단으로 잠시 쓰고 버리는 하찮은것은 아니었다는것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2003/03/07 x 
 
  이영민 과학기술인 기념 하니까 생각나네요. 동북대의 공대는 캠퍼스가 2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카타히라 캠퍼스에는 혼다코타로의 동상이, 아오바야마 캠퍼스의 아오바기념회관에는 마쯔모토하카루의 동상이 있지요. 마쯔모토하카루는 혼다코타로의 제자인데, 스승과 제자를 다 동상으로 세워놓다니.. 전 처음엔 이상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나니 '과연'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2003/03/07 x 


2003년 3월 6일 회원자유게시판에서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now&page=38&category=&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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