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부국강병론(2) 이공계 인재관리 시스템이 문제다 - 임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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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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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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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임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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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과학기술 부국강병론(2) 이공계 인재관리 시스템이 문제다.
 
우수한 인력밖에는 자원이 없다는 우리나라가, 사실은 제대로 된 인재 양성 시스템을 못 갖추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입국'으로써 선진국이 되려면 이공계 대학(원)을 졸업한 인력들이 사회활동을 통해 능력이 향상되어 50-60대가 되면 해당분야의 베테랑들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 있어서는 우수인력을 뽑아 쓰기만 하려고 하고 제대로 관리하질 않아 40대 중반만 되어도 명퇴를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선진국의 경우 해당분야에서 최소 15-20년은 근무해야 고급인력으로 인정받는 것과 비교해도 이러한 현상은 과학기술입국의 최대 걸림돌입니다. 이는 이공계 기피의 한 원인일 뿐만 아니라, 기술의 깊이가 천박하여 시스템 산업 등 부가가치가 매우 큰 대형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도 됩니다. 최근 삼성, LG 등 대기업에서 이러한 인재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부단한 재교육과 핵심인재관리를 표방하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선진국형 인재관리 시스템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선진국 인재관리 시스템의 큰 특징은, 관리자(Manager)와 전문가(Specialist)로 나누어 따로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두가지의 진로는 이공인들이 가야할 양대 산맥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나라 이공인들은 관리자보다는 전문가가 '본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학교에서 문제풀이와 공식외우기 등의 전문가 교육만 받는 것이, 그리고 이른바 '쟁이의식'이 그 원인을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누가 과장, 팀장, 부장, 본부장, 사장, 회장을 하고 마켓팅, 기획관리, 연구개발, 생산의 책임을 맡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외국 회사를 기준으로 볼 때, 통상 대졸자의 경우 입사 5년 정도 지나면 자신이 어느 쪽으로 갈지를 정합니다. 연구소로 치면, 선임연구원이 될 때 정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눈치와 두뇌회전이 빠르며, 글쓰기와 기획능력이 우수한 사람들은 관리자 양성과정으로 들어갑니다. 대신, 대인관계 같은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고, 한 분야에 집중해서 일하는 것을 잘 하는 사람은 전문가의 길을 갑니다.

관리자 코스에 들어가면 전문가 코스에 들어간 사람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높은 교육을 받고 힘든 업무를 맡게 됩니다.  일단 작은 과제 관리자(Project Manager)나 보조관리자로부터 시작해서 큰 사업책임자나 임원으로 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이나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성과에 따라 진급과 보수가 엄청나게 영향을 받고, 능력이 없다고 평가받으면 보직해임이나 실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리자 코스 3-5년차에 재평가를 해서 관리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싶으면 전문가 과정으로 되돌리기 때문에 '해임'같은 극단적인 경우는 잘 발생하지 않습니다.

전문가 코스에 들어간 사람들도 업무교육이나 진급교육을 통해 1년에도 여러 차례 전문 직업인으로서 필요한 교육을 꾸준히 받기 때문에, 나이가 든다고 해서 '놈팽이'가 되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특히 나이가 50 전후된 사람들 중 능력이 출중한 전문가들은 Mentor라고 해서 '스승'의 지위를 부여받아, 회사내의 후진 양성이나 회사를 대표한 전문가로서 대외활동 등을 합니다. 통상 부사장급 정도의 연봉과 지위를 받기 때문에 보직여부와 관계없이 명예와 부를 거머쥡니다.

이렇듯 전문가를 우대하는 이유는, 관리자는 우리로 치면 부장, 이사, 사장, 회장 등으로 진급을 하면서 의사결정 및 인사 등에 있어서 큰 권력을 갖는데 반해, 전문가는 진급이 제한되고 특별한 권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모두가 무리하게 관리자가 되려고 할 것이고 이는 조직 전체로서는 큰 손해입니다. 따라서 전문가 중 극히 일부(100명중 3명꼴)를 우대해서 '전문가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려놓아 전체 전문가 조직을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봉체계를 보면 나이가 50-55세가 되기까지는 대략 나이에 비례해서 연봉이 늘지만, 이 때를 정점으로 해서 연봉이 감소하기 시작하여 정년인 65세가 될 때까지는 대개 연봉이 꾸준히 줄어듭니다. 따라서 55세 전후가 되면 연봉이 연금의 60-70% 정도가 되기 때문에 일이 적성이 안 맞는 사람들은 조기에 은퇴를 하기도 하지만, 65세 정년이 되어서도 일이 좋은 사람들은 비정규직으로 재취업을 하기도 합니다.

굳이 나이가 들지 않아도, 해마다 자신의 능력에 따른 업무를 manager와 상의해서 정하고, 연말에 일한만큼 평가받아 연봉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능력껏 일하고 일한만큼 받는다'는 풍토가 잘 정착되어 있습니다. 건강이나 학업, 적성 등의 이유로 일을 하기 힘든 경우, 해직같은 극단적인 형태보다는 연봉조정이라는 부드러운 형태의 '누이좋고 매부좋은' 방식을 취합니다. 따라서 능력이 부족한데도 동년배의 잘 나가는 사람하고 비슷해지려고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능력이 있는데도 도매가로 넘어가는 '억울함'도 거의 없는 게 선진 인재관리 시스템의 장점입니다.

관리자와 전문가로 분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가적 식견은 풍부하지만 관리능력이 떨어지는 관리자들이 전체 '물'을 흐리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합니다. 과제 기획능력의 부족, 판단의 미숙,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인 팀운영 등을 통해, 팀원들에게는 고통을, 기업/연구소에는 경영 악화를 초래케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함량미달 관리자 중에 연구소장, 사장이 나와  조직 전체가 불협화음과 침체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기존의 경영진들이 관리자를 제대로 양성하지 않고 이를 천부적 재능 정도로 인식해온 한국 기업/연구소/행정기관의 관행도 문제지만, 이공인 스스로도 두 마리 토끼를 쫓는 행태를 멈추지 않으면 이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이공인들은, 관리자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전문가적인 능력만 키우는데 20-30대를 보냅니다. 그러다가 40대가 되어서 나이도 있고 경륜도 있으니까 보직도 맡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경영진 입장에서도 따로 키워놓은 관리자도 없기 때문에 '어중이 떠중이 관리자'를 전문가 그룹에서 뽑아 씁니다. 그러다 보니, 과학기술의 장래를 기획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능력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일을 맡은 본인도 능력에 겨워 지치며, 그 밑에서 일하는 전문가 중에는 '실력'이 출중한데도 '관리능력'밖에 없는 관리자 지시를 받는다하여 불평불만을 갖기 쉽습니다.

이제는 대학에서부터 이공인들에게 리더십 교육도 시키고, 취업후에는 일부 인원을 발탁하여 관리자로 키우는 인재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사회적 인력수요를 볼 때 이공인 전체의 10%는 관리자로 양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과학기술 행정부처의 요직, 기업체의 기획실, 연구소의 경영진, 핵심영업직에 포진하고, 정부출연 연구소나 대학의 보직자, 그리고 기자나 기업대표로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40대 후반에 명퇴를 하는 풍토의 한 원인이 보직위주의 연공서열식 인력구조에 있는 만큼, 유연한 연봉제도를 정착시켜나가야겠습니다. 그래서 해직보다는 연봉조정을 통해 '능력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전문가 집단을 안정시킬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전문가 그룹의 경우, 보직보다는 높은 명예와 고액연봉으로 피라미드의 정점을 구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즉, 웬만한 직장에서, 무보직이지만 부사장 직급을 갖고 억대 연봉을 받는 전문가도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구조개혁 자체를 이공인 출신 관리자 그룹이 주도하고 인재육성도 해내야 합니다. 대학에서 후진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오로지 '기능직 전문가'만 키워서는 안됩니다. '이공계 관리자' 또는 리더십을 가진 이공계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기획력, 발표력, 문장력"을 교육해야 합니다.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장래의 기업 경영인, 연구소/대학의 수장, 핵심정부관료로서 법대나 경영대 출신 전문가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공계 관리자 혼자서 모든 영역을 다 취급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 대학/기업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고,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사회에서도 현실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체나 연구소, 관계에 있는 이공인들은 스스로 혹은 직장내의 활동을 통해 관리자와 전문가로 나누어 각자의 길을 충실히 갈 수 있도록 서로 인정해주고 도와줘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정원동결이나 높은 진입장벽이나 구축하는 의사와 변호사 단체가 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른 점이, 이공인 집단의 이익보다는 사회적 공익을 우선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공인은 우리 나라 지식인의 절반에 달하는 대집단으로서, 소수 기득권층이 아니라 우리 사회발전의 실질적 주역입니다. 이공인들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고, 그래야 과학기술입국도 되고 선진국도 되는 것입니다. 

한국과학기술인연합(www.scieng.net) 운영위원  임호랑


 
 

  최희규 지속적으로 호랑님이 말씀하시는 "관리자와 전문가 양성"론 전적으로 동감을 합니다. 뱀다리를 하나 붙이면, 연구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는 관리자 체질입네...' 하는 것들과 관리능력(기획 등의 능력포함)이 전무한 사람들이 "난 연구자야..."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에 변명을 제공할까봐 두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연구자와 관리자의 덕목을 두루 갖추고자 요즘 내공 많이 쌓고 있습니다. 내공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에 쑥쑥자라는 대나무적인 성격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 2003/03/14 x 



2003년 3월 14일 과학기술정책/칼럼 게시판에서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science&page=4&category=&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7

  • 익명좋아 ()

      시스템도 문제겠지만, 공대생들의 이기적 사고 방식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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