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원리가 만능인가? - 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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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2
등록일
2004-01-2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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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노숙자
 
제 목    시장원리가 만능인가?
 
우리나라에서 신기술을 개발하고 신제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가시밭길을 걷는 길이다. 사업에 도전하는 사람이 적은 마당에, 기업가의 아쉬운 입장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려는 세력은 너무 많다고 판단되고, 아직도 무지가 지배하는 세태를 읽을 수 있다.

이공계가 사업을 하게 되면 누구나, 금융이나 마케팅, 유통 분야 종사자의 야만에 한번쯤 휘청거리게 되어 있으며, 정부의 방관에 놀라게 된다. 기술과 기업을 육성하려는 근본 취지와는 정 반대로 운용되는 정치 경제 시스템을 보면서, 그들의 각성없이 과학기술 발전이 가능할 것인지 회의를 가진다.

현재 정부가 대원칙으로 삼고 있는 시장원리라는 정책은 신기술 육성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는데, 현실적으로는 힘있는 정치인이나 관료의 도움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이 매달리게 만들고 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여러가지 규제와 불합리성 때문에,  정치인이나 관료의 특별한 도움없이 신기술은 살아남기 어렵다.

이공계 진로의 하나인 기술 창업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정치 경제 등 타 분야의 변화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바이며, 기술입국은 과학기술인에게만 맡겨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공직자가 눈을 뜨기 바란다.

(은행 대출 약속을 믿지 말라)

은행 담당자의 대출약속을 믿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 철썩같은 약속을 별안간 뒤집는 경우가 있다. 본점 지시를 핑계로 대면서 대출을 중지시키고 피하다가, 마감 시간 지나니 사채를 소개해 주겠다는 은행원도 있다.

모든 은행이 다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행의 공신력을 과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번의 자금 출렁임으로 도산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경우, 은행마저도 믿지 말아야 살아남을 수 있고, 제2금융권 회사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수표를 발행하지 말라)

어음수표를 사용한다는 것은 목에 밧줄을 걸고 사는 것과 같다. 어음수표제도를 충실히 이해하고 도움을 줄 사람은 없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공인회계사라 할 지라도 제도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회계 재무분야의 지식을 구할 수 있다는 것과, 자동차는 다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회계 재무분야의 자동차 태반은, 시동만 걸리고 움직이지는 않는 차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 좋다. 모르는 게 많으면 위협을 느끼게 되고, 기술 업무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수표에 부도가 나면 사장은 바로 구속되기 때문에, 결국 회계제도까지 스스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공계 CEO는 차라리 어음수표를 발행하지 않는 것이 낫다.

(정부의 판로개척 지원을 믿지 말라)

판로 개척을 지원한다는 제도는 있다. 그러나 실효성은 없다. 판로개척이야 말로 신기술 개발자가 가장 목말라 하는 부분인데, 우물을 가리키는 화살표는 여기저기 많이 붙어 있다. 그러나 마지막 화살표는 땅을 가리킨다. 직접 땅을 파라는 것이다.

오랜 기간 화살표를 따라간 노력이면, 그동안 우물 하나 팔 시간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허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조달청 등록을 권유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없는 거 보다 낫다는 얘기지, 책임지고 팔아준다는 말은 아니다. 순진한 이공계가 정부의 가이드를 따라가지만, 많은 사람이 딱하다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케팅 전문가는 없다)

우리나라에 중소기업의 신기술을 팔아 줄 마케팅 전문가는 없다. 그러나 마케팅 서적을 발행한 전문가임을 과시하면서, 기술 마케팅을 대행하겠다는 기관은 있다. 이 분들 역시 시간만 뺏는 경우가 많다.

마케팅 분야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아무나 만나면 안 된다. 마케팅을 미끼로 접근해서 특허정보나 기술내용을 파악하고 빼돌리는 경우를 조심해야 한다. 자칫 대량으로 판매를 일으키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요약 자료를 내어 주기가 쉽다.

그러나 많은 마케팅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판매에 확신이 서는 순간 직접 제조를 검토하기 시작한다. 직접 제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기밀 유지는 보장되지 않는다. 결국 순진한 이공계는 잠재 경쟁자에게 정보를 친절하게 제공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시장의 경직성과 가격 상승)

신기술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매우 높다. 이로 인해 마케팅 비용이 증가하며, 판매량은 감소한다. 예를 들어, 변동원가가 고정원가의 100% 이상 차지하고, 판매량이 목표의 1퍼센트에 불과하면, 가격을 200 퍼센트 이상 인상할 수밖에 없다.

신기술의 가치는 일정한데 가격만 올리는 것은,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가격 인상의 원인은 대개, 시장의 경직성, 즉 신기술에 대한 거부감과 그로 인한 판매 부진인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것을 경계하고 기피하는 보신주의 문화가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것이 신기술의 발목을 잡고 가격 인상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국산 기술 우대 정책 필요)

우리나라의 신기술 거부감이 다른 나라보다 높으면, 우리나라 상품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는 것이다. 환율만 조금 올라도 수출에 문제가 발생하는 무한 경쟁시대에, 우리나라 신기술의 가격경쟁력을 위하여 대책을 모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출신 국가의 시장 경직성에 따라 상품 경쟁력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다. 그리고 여러 요인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신기술 거부감이 매우 높기 때문에 신기술의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의 문화와 제도가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면, 이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심사숙고할 일이다.

과학기술 진흥과 이공계 살리기를 위해서는, 국산 신기술 우대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신기술을 만들어도 영업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해당 기술 부문은 폐지될 수밖에 없으며, 이공계 인력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을 살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국산 기술이 살아나면 일자리는 저절로 만들어진다)

기업을 붙잡고 하소연한다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산 신기술을 우대하고 판매량을 늘리는데 모두가 최선을 다 하여야 한다. 시장원리 때문에 방치해 두면, 시장원리에 따라 신기술은 고사하기 마련이고, 기업의 채산성 악화와 이공계 일자리 감소로 직결된다.

오랜 전통과 관행으로 인하여, 신기술 신제품이 시장에 발을 붙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는 이를 문화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지혜로운 제도를 창안하여 국산 신기술의 판로 개척을 지원할 것인지,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앞으로, 국산 신기술을 도입하는 공직자는 표창을 하고 특진을 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신기술을 도입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실제 징계를 거론하는 풍토부터 없애야 한다. 모든 공직자가 눈에 불을 켜고 신기술 신제품을 찾아 도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이공계 기업의 성공 사례가 널리 전파될 것이며, 순식간에 이공계 일자리가 넘쳐날 것이다.

(과학기술 진흥은 이공계만의 영역이 아니다)

과학기술 진흥을 위하여, 수많은 이공계 인력이 오늘도 맡은 바 소임에 충실하고 있으며, 이공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와 관행, 지원 시스템의 개선이 없이는 기술 입국을 이루기가 어렵다고 보여진다.

찾아오길 기다리기보다는 찾아가서 도와주겠다는 공직자의 자세와, 낯선 신기술의 성공이 국가의 성공으로 연결된다는 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임호랑 기업현장의, 산업경영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것 같군요. 실제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군요. 좋은 간접 경험이 되었습니다.  2004/01/19 x 
 
  노숙자 호랑님, 안녕하세요. 참고가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 2004/01/19 x 
 
  song 노숙자님의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중국의 공무원들을 보니, 담당구역의 업체를 수시로 돌아 다니면서 혹시나 부족한게 없나 열성적으로 살피면서, 공공 서비스가 필요할 경우 항상 24시간 대기하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것 같더군요. 아직도 일제시대 '관료주의, 행정편의주의, 무사안일주의'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공무원들과 많은 비교가 되더군요. 2004/01/19 x 
 
  whiteTiger 역시 현실은 더욱 치열하군요. 가슴 속에 품고 가겠습니다. 2004/01/19 x 
 
  노숙자 song님, WhiteTiger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논리가 정치,행정 쪽으로 전파될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요 ~ 2004/01/19 x 
 
  수험생 어음 수표의 1순위 개혁 종목은 뭐니뭐니 해도 건설분야가 아닐까요? 그쪽에서는 아직도 어음 깡~ 이 일반화 되어있습니다. 제 아버지도 그렇고.. 시스템만 문제가 아니고 그러려니 하는 인식을 바꿀 계기를 마련해야 할텐데 말이죠. 2004/01/19 x


 2004년 1월 18일 회원자유게시판에서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now&page=3&category=&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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