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생의 경우... - Simon

글쓴이
sysop2
등록일
2004-03-02 14:54
조회
5,8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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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건
댓글
2건


이름    Simon (2004/02/26, Hit : 822, Vote : 7) 
 
제목  어떤 선생의 경우...
 
 

저의 지난 지도교수는 외국인입니다.
조상이 동구 유럽권 계통인데 북미로 이민온 3세대 시민권자이지요.
그 양반이 학위를 마치고
자신의 관심 분야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름도 많이 날리고 저명한 저널의 편집장 등을 역임했지만,
그의 단 한가지 약점이 있다면...
지난 20여년간...조교수 - 부교수 - 정교수가 되어
Tenure를 받기 까지...

명성에 걸맞는
Fund 조달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얘기인 즉,

미국에서 지난 80년대 후반이후 격렬히 몰아친
NSF나 NIH 류의 "정통 순수 혈통형 연구자금" 조달에 있어서,
자신의 주 연구 분야가 요새 뜬다는 "Bio - " 였음에 불구하고,

하필 "치과 계통" 이라,...
그리 큰 돈을 끌어올 이유도,
Fund 시장도 그 규모가 원채 작았습니다.

그러나, "치과" 계 연구를 하면서도,
꾸준히...유사 연구 분야인
정형외과계 연구 Proposal을 쓰려 했고,...

소위 100만불, 200만불 규모의 거대 Proposal의 승인이 있을 그 날을 손 꼽으며 살았지요.
그러나,....
"치과 계통"에서는 알아주는 최고 연구자일지 몰라도,

시장 규모가 더 큰 "정형외과" 분야에서는
계속 Fund 따오는 데 실패했고,...
결국 작은 몇 개 몇 개의 연구비로

내실있는 연구를 해 왔습니다.  그 와중에...그 와중에 무슨 일을 했느냐.

1)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는 박사 학위를 따고 40 다 되어 결혼해 아이들이 늦둥이)
자신이 석사를 마쳤던 좋은 학교에 유유히 입학시키고,
2) 재직 중인 학교 근처에 단란한 가정을 꾸밈과 동시에...
3) 자기 집에서 3시간 거리의 아담한 시골에...이쁜 별장을 짓고

방학이면 가족과 함께 책 보고...아들이 하이틴 시절이 될 때 함께 골프치고
누가 누가 잘 했나...그런 이야기를 본인 학교 웹페이지 "학력 소개란" 밑에
써 놓습니다. 골프 잘 치는 것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실험실에만 틀어 박혀 있는 외곬수"가 아님을 널리 알리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지요.

지금 50대 후반인 그는...
결국 몇 차례의 실패 끝에...
마침내...생애 최초로 ...
100만불 이상 가는 Fund를
NIH에서 따 왔습니다.

20여년 재직 생활 중에...딱 한번
100만불 level에 달하는 연구비를 조달한 그는,
자신의 학교 실험실이 아닌,

공동 연구자인 머얼리 서쪽 지방 학교
여류 과학자 실험실에
그가 받게 될 거의 모든 연구 지원비를 쏟아 부을 작정입니다.

왜?

공동 연구자가 맘에 드니까.
덕분에 그는....방학이면 서쪽 해안가에 가서,
" 운전하며 생각하기 " 를 취미로 행복하게 연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과 미국의 환경, 교육 및 연구 여건을 직접 비교할 수 없지만,
황교수님 만큼 훌륭한 업적을...
몇 백만불 어치의 fund 지원 없이도

야금 야금 모아 모아 수립해 왔고,
마침내 생애 최초로...
저간의 명성에 맞는 거액의 연구비를 받고 나서,

"이제 다 이루었다."

라고 과감히 모든 것 버릴 수 있는 용단의 자세를 보여 주었습니다.
"나의 최선을 다해 연구를 하는 것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기...
를 병행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연구만 매달리는 것 보다 훨씬 어렵고, 지치는 일이지만,
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믿는다."

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그가 100만불 규모의 fund를 따 와서 존경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fund를 따는 데 성공하기 전
그를 떠나야 했으니까. (현실은 ... 이상과 존경 그 이상으로 냉엄합니다.)

그러나, 그가 설령 지금 100만불 짜리 fund 못 따 왔다손 치더라도,
그를 존경합니다. 그의 생활 하나 하나와 연구자로서의 자세 및 열정이
삼위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말이죠.

가족도 다 버리고, 오로지 일만하고 연구만 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입니다. 내 본업인 일, 연구 위에
가족과 주변 이웃이라는 factor가 들어 옴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방해?" 혹은 "불확실성"이 삽입되겠습니까?
인생이라는 과학 위에.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교과서 위에 그 이름이 남길지 몰라도,
결코 진정한 승자라고 칭해질 수 없습니다.

흔히 아인슈타인이 악처를 두었다는 둥,
개인 사생활이 형편없었다는 둥,
그런 예를 듭니다.

요즈음은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부엌에 가서
설거지할 줄 알아야 하는 그런 과학 세계입니다.

그런 일 안 하고 연구만 하겠다는 것은
21세기 과학기술의 암묵적 동의 사항,
"룰"을 어기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선생과 어느 학회에 가서...
그가 먼저 집에 간다고 하길래...
주차장까지 마중이라도 나가는 셈 치고,
그의 차 옆까지 따라갔습니다. 그의 말:

" 다시는 이런 짓 (배웅) 하지 말거라.
  이곳까지 날 따라 걸어올 시간에
  차라리 저기 보이는 숲 속에 가 맑은 공기를 한번 더 쐬렴. "

그 학회는...
일주일 동안 열리는 것으로 몇몇 노벨상 수상자와 기타 연구자들이 함께했고,
학생 1인당 몇 천불 하는 그런 거액의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 거액을 절 위해 썼냐고 액수를 추후 알게 된 후 너무 충격적이고 근심이되어,
물었지만 엉뚱한 대답만 돌아올 뿐:

" 이번 주 토요일 운동장에서 축구시합 있다던데 보러 갈거냐 ?  "

물론 저는 축구 봤습니다. 잠시 지나가면서 였지만.
우리는 그런 " 스승 "을 원합니다.

"여유 없어도, 스스로 여유를 찾을 줄 아는 스승"
그런 스승 밑의 선배를 통해 후배들이
그런 정신을 배울 줄 아는 실험실.

너무 큰 기대인가요?


 
 

 
 
glengould (2004-02-26 13:41:42) 
 
아...참 좋은 선생님이군요. 이 말밖에 안 나옵니다. Simon님 글은 여기저기서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요. 오늘 글은 참 감동적입니다. 제겐 참 꿈 같은 얘기네요. ^^ 
 
 
 
dizzy (2004-02-26 14:22:34) 
 
저도 이런 선생님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_^ 
 
 
 
고스트 (2004-02-26 15:04:09) 
 
제가 추구하는 삶과 같네요. 현실이 안따라주지만...
제 스승은 이 글의 선생님과는 영 딴판이지만 제가 이글의 선생님처럼 되고싶다는 욕심이 막 생기네요..^^ 
 
 
 
???(과학도) (2004-02-26 15:39:41) 
 
잘 읽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픈 삶이군요.. 
 
 
 
정문식 (2004-02-26 20:04:57) 
 
이상적인 스승님이십니다. 물론 '여유'를 허용하는 사회 풍토도 한 몫 했겠지여... 아직도 '안 되면 되게 하라'가 인생 철학인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어려울 듯 합니다.(당장 '농땡이' 피운다고 하거나, '쓸데없는' 짓거리 한다고 지청구가 들어오겠져...) 아무리 '양적 증가가 질적 전화를 가져온다'고들 하지만 하지만, 얼마나 세월이 지나야 한국도 '질적 전화'를 추구하는 사회가 될지 아득하군여... 
 
 
 
김선영 (2004-02-27 00:55:11) 
 
과학자도 사람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좋은 글이네요. 점점 사회가 각박해져가고 효율이라는 미명아래 여유라는 것을 잃어버리는 요즘에 좋은 스승님입니다. 
 
 
 
cantab (2004-02-29 12:28:57) 
 
제 지도교수도 비슷한 분이었죠. 주5일 9 to5에 철저해서 가정에 충실하면서도 연구과제 잘 물어오고 (제가 있던 학과 최상위권) 또 연구도 잘해서 남들은 평생 한편 내기도 어려운 Science와 Nature에 10년새 각 한편씩 (제 전공은 공학에 가까워서 이런 저널에 가기는 쉽지 않죠) 내고 (Science에는 단독 저자로 나가셨죠) 별로 많지 않은 월급 받아서도 꽤 넓은 집 한채 갖고... 연구결과가 뛰어난게 있어서 신문과 방송에도 크게 보도되고 했습니다. 전세집에서 하루 4시간 자면서 오로지 연구실에서만 살면서 이룬 성과가 갖는 의미가 뭘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황교수의 업적이 업적 자체로서 훌륭한 것은 인정합니다) 


회원게시판에서 2004년 2월 26일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now&page=3&category=&sn=off&ss=on&sc=on&keywor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813

  • 미지수 ()

      소름 끼친다..^^

  • 김세훈 ()

      이런 선생을 찾기보다 자신이 이런 선생이 되어야겠죠. 모범이 될만한 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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