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매카시즘과 과학자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3-02-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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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른 쪽들을 살펴 보았으니 '과학과 정치' 시리즈를 속개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이라는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과거 매카시 시대의 분위기로 복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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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X파일II

과학과 정치(4) - 매카시즘과 과학자들

최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모든 것이 이 손안에 있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이 서류뭉치에는 국무장
관에게 오래 전에 그 정체가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무부의 고
위관직에 있으면서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 수립에 관여하고 있는 2백5명의
공산주의자의 명단이 있습니다."
1950년 2월, 미국 공화당 소속 초선의 젊은 상원의원인 조지프 매카시
(Joseph McCarthy; 1908-1957)는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한다발의 서류뭉치
를 흔들면서 충격적인 폭탄선언을 하였다. 1950년대 미국사회 전역을 광적
인 반공주의의 공포로 몰아넣은 이른바 매카시 사건의 시작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모 대학총장이 "우리 사회 곳곳에 OO파가 있다."고 주장한
'한국판 매카시 사건'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진영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스탈린 치하 소련의
극좌 공포정치나 나치독일의 히틀러의 극우반공 독재정치에 크게 다를 바
없는 극단적 공포정치가 행해졌다는 것은 큰 충격이자 역사적 오점이 아닐
수 없다. 매카시즘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소련, 동유럽, 중국 등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세력권의 팽창, 구식민지 제국들의 민족해방운동 등으
로 인하여 미국이 대표하는 자본주의 세력권이 크게 쇠퇴해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천성적 선동가였던 매카시는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시 "수많은 미국 청년
들이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총에 맞아 죽어 가는 판에, 미국 사회 각
분야에 숨어있는 친공, 좌익 분자들이 적국의 공산당을 돕고 있다." 라고
열을 올리면서 미국 국민 전체를 반공히스테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
로 인하여 미국 사회 최고의 지성인들과 유능한 공직자들, 과학자, 예술가,
작가, 방송인 등 각계각층의 수많은 인물들이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쫓
겨나거나 박해를 당하였다. 유명한 배우이자 작가, 감독이었던 찰리 채플린
도 매카시즘의 대표적 희생자의 한사람이다.
조작된 주장과 근거 없는 비난으로 수많은 미국시민들을 무고하게 희생시
킨 매카시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등 전, 현직 미국대통령에게까지 용공분자
의 굴레를 씌우려는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미국 상원의 징계로 국내치안
소위원회 위원장직을 박탈당한 후 1957년 5월 48세의 나이로 사망함으로써
매카시즘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매카시즘이 미국 사회에 남긴 깊은 상처
와 그 역사적 교훈은 오늘날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국 과학기술계에서도 매카시즘의 파장이 결코 작지 않았다. 방위산업과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거의 300만명에 이르는 과학자, 기술자, 기능인들
에게도 체제 수호라는'충성서약'을 강요하였고, 이에 실망하거나 반발한
유능한 과학기술자중 상당수가 미국을 떠나기도 하였다. 탁월한 과학자로
서 적지 않은 피해를 본 경우로,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ling;
1901-1994)을 먼저 꼽을 수 있다.
폴링은 당시 이온구조화학 분야에서 1인자로 꼽히는 저명한 화학자로서,
양자역학이론을 화학에 적용시켜 오비탈 이론을 세웠으며, 화학결합에서
중요한 전기음성도 개념을 제시하였다. 폴링은 또한 DNA의 구조 연구를
놓고 왓슨(James Watson), 크릭(Francis Crick), 윌킨스(Maurice Wilkins)
등의 다른 과학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50년에는 단백질의 나선구조를 밝히기도 했고, DNA 구조가 나선
모양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상당한 연구를 진행시켰다. 폴링은 1952년 영국
왕립학회가 주관하는 DNA 관련 심포지움의 연사로 초청받았으나, 그를
'용공주의자, 혹은 사상이 의심스러운 반미분자'로 간주한 국무부는 여권
발급을 거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내는데 결정
적인 단서를 제공한 프랭클린(Rosalind Elste Franklin; 1920-1958)의 DNA
X선 회절사진을 볼 수 없었고, 그 결과 1953년에 쓴 논문에서 DNA가 3중
나선구조라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함으로써 결국 왓슨과 크릭에게 최후의
승자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폴링은 한때 국방관련 연구를 하기도 했지만, 오펜하이머 등이 주도한 원
자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후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반핵 과학자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에 반애국적, 사회주의적인 인물로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가 1954년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되
었을 때에도, 그에게 출국용 여권을 허락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벌
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폴링은 그후로도 다른 양심적인 과학자들과 함께 대기중 핵실험
금지를 위한 서명작업을 주도하는 등 반핵 평화운동에 열중하였고, 그 공
로로 1962년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만약 그가 1952년에 출국금지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3차례나 노벨상을 받는 전무후무한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얘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맨해튼 계획을 추진한 핵심인물로서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펜하
이머 마저도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소련의 첩자로 몰려서 큰 곤욕을 치
렀던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뛰어난물리학자일 뿐만 아니라 과학행정가로서도 탁월한 능
력을 발휘하여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조국을 위하여 중요한 일
을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서 연구하도록 독려하였고, 연구개발을 효과적으
로 조직화하고 과학자들을 잘 이끌어서 결국은 극비리에 원자폭탄을 만드
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한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목도하게
된 그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에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펜하이머는 "나는 이제 세계의 파괴자, 죽음이 되었다"는 힌두교
성전의 한 구절을 읊조리는가 하면, 트루먼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각
하, 제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해 트루먼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고도 한다.
그러한 오펜하이머가 전후에 추진된 수소폭탄 개발에 반대했던 것은 당연
한 귀결이었고, 맨해튼 계획에도 참여했던 헝가리 태생의 물리학자로서 나
치독일보다 소련을 더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수소폭탄 개발을 적극적
으로 주장했던 텔러(Edward Teller; 1908-)와 불화를 빚게 된다. 이 와중
에서 그는 소련의 간첩으로 몰려서 적지 않은 곤욕을 치렀고, 결국 텔러가
총지휘한 수소폭탄 개발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미국, 소련간의 군비
경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매카시즘의 광풍과 냉전하의 군비경쟁의 와중에서
목숨까지 잃은 희생자로서 로젠버그 부부가 있다. 소련에 핵무기 관련 비
밀을 넘겨주었다는 혐의로 결국 전기의자에서 처형된 이들 부부가 정말 간
첩행위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겨진 채 여전히 논
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극우적 분위기 하에서 자행된 여론몰
이로 인한 억울한 희생양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1949년 8월 소련이 'Joe1'이라는 이름의 핵무기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원자폭탄은 미국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온 미국인들은 엄청
난 충격을 받았다. 더 나아가서, 미 의회와 언론 등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
련이 그 정도 수준의 과학기술을 결코 보유하고 있을 리 없고, 그것은 누
군가의 스파이행위에의해서만 가능했을 것이라고 여론을 몰아갔다.
FBI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이 바로 로젠버그 부부였고, 증거는 수
사관의 회유에 넘어간 아내의 동생이 말한 빈약한 자백뿐이었지만 이미 희
생양으로 정해진 이들 부부는 로마 교황, 아인슈타인, 프랑스 대통령 등 세
계 지성들의 구명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1953년 6월 사형이 집행되고 말
았다.
처형 40주년인 1993년, 미국 변호사협회는 현직판사가 참여한 모의재판에
서 로젠버그 부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한다. 로젠버그 스파이사건의 진
원지였던 미국 로스알라모스의 연구소에서는 최근 중국계 과학자가 핵무기
개발에 관련된 비밀을 중국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기
도 하였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라는 얘기가 그다지 공허하지 않게 들
리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하다.

  • 사색자 ()

      최성우님의 이번 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항상 거론되는 것이 오펜하이머인데 -불쌍해라...저승에서도 귀가 간지러울듯...-, 철학과 과학기술이 서로 동반자적 역할이라면 철학의 견제와 모니터링이 파괴되어 나타난 가장 큰사건이 원폭투하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

  • 이동휘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덕양 ()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FBI 한테 곤욕을 당한 wen ho lee 의 자서전 성격의 책 my country versus me 읽어볼만 합니다.

  • 김하원 ()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수위원 중 한명이 반국가적 인물로 추적당해왔다는 기사가 ㅈ일보에 크게 실렸는데, 곧 한국판 매카시들이 나타날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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