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 박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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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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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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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김정란, 진중권, 홍세화 이 네 사람의 이름에서 무엇이 느껴지는가?

이들이 만드는 잡지가 있다. 그 제목은 "아웃사이더"

 

여기서 갑자기 잡지책 선전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그나마 용감한 독설가 또는 비판가인, 그래서 다소간 비판적 지성으로

보여지기도 하는 그들이 "아웃사이더" 라고 자의반 타의반 자칭하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더랬다.

 

"아웃사이더들이 아웃사이드에서 인사이드를 비판하면 인사이드가 바뀔까?"

 

핏. 택도 없을 것이다. 왜 그들은 굳이 자신들을 바깥으로 자리매김했을까?

안에 그냥 있으면 안되나? 안에서 비판하고 안에서 노력하면 안되나?

그들 생각에, '인사이드'는 자칭 주류인 기득권측의 세상이고, 인사이드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기분나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스스로 아웃사이더라고 칭하는 순간 변화와 개혁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남이 노력해주었으면 하며 말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일제시대의 독립투쟁에 대해 우리가 반쯤 알고 반쯤 모르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리저리 옮겨다녔지만 아무튼 긴 기간 상하이에 있었다.

그 임시정부는 여러 개의 망명정부중의 하나였지만 비교적 성실히 투쟁을

이끌었고 결정적으로 해방후 남쪽의 정권을 창출하였기에 임시정부의 대표격

으로 교과서에 등장한다. 우리 할아버지들은 왜 우리땅에서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나가서 했을까? 정작 한반도 내에서 한명이 일본인도 몰아내지

못하고, 민중을 위해 변변히 일한 것도 없이 말이다. 결과는? 해방이 되긴

되었으나 외세에 의한 해방이었다.

 

해방후 정권을 잡는 데 실패하여 교과서에 등장하는 지면이 대폭 줄었으나

분명 한국땅 내에서도 독립운동이 있었다. 3.1운동이나 6.10만세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등 큰 사건도 있었지만, 지배층인 일제에 맞서 계급투쟁적

성격을 띤 독립운동도 있었고, 무장투쟁도 있었고, 지식인들에 의한 지속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한국어가 없어지지 않고 한글이 명맥을 유지하고 사람들이

독립을 열망하게끔 만든 것은 국내의 투쟁이었을까 해외에서의 노력이었을까?

 

과학기술인 게시판에 웬 독립운동사냐고 하겠지만, 난 국내에서 일제와

몸으로 부딪히며 투쟁한 국내파들을 훨씬 높이 평가한다. 바깥에서 아무리

일본아 나가라 하고 소리쳐 봐야 안쪽에까지 들리지도 않는다.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에 대해, 또 일부 과학기술인들이 전체 과학기술인들에 대해,

아웃사이더임을 자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인들은, 나라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참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관심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관심이 있더라도

'나랑 상관 없는 일이려니' 한다. 정치권에서 무슨 난장판이 벌어져도, 동네

신문 가판대 아저씨나 택시 운전사들만큼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저 맡은바

연구를 잘 해내고 내 식구 굶지만 않으면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알바 아니다

라는 투다. 이것이 동아일보 신동호 기자님이 언급한 '중인정신'이다.

 

다음은 부시가 '악의 축'이라는 말을 한 뒤 나온 MBC 뉴스 기사중 일부이다.

 

....<전략>...미국 과학자 연맹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의 경우처럼 미국 이 화약고같은

지역에 무기를 공급해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며 무기공급 철회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냈습니다....<후략>

 

과학자 연맹이 도대체 무기공급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탄원서를 냈을까?

우리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내용의 문장이라 오타가 아닌가 의심되기까지 한다.

여기서 미국 과학자 연맹은 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 ( www.fas.org )이다.

이 단체의 관심분야는 너무나 다양해서 대체 어떤 과학에 기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학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단체이다. 온갖 인류의 당면 문제점들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과학기술인은 분명 고급 지식인이다. 공부를 아주 많이 한 축에 든다. 그 공부가

사회학이나 경제학이나 법학이 아니더라도, 분명 머리를 많이 쓰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 '무식한 공돌이' 라는 관용어구가 있었다. 부르디외를 모르고,

하버마스, 기든스를 읽지 않는다고, 철학도 모르고 사조도 모른다고 무시한다.

'교양'과 '상식'이 없다고 비웃는다. 생방송 "퀴즈가 좋다"의 문제는 90% 이상이

인문/사회 지식에 기반한다. 기계공학 박사는 기계공학도 잘 알고 인문사회 지식도

잘 알아야 '유식한 학자' 라는 말을 듣지만, 베르누이의 정리가 뭔지 f=ma 가 무슨 의미

를 갖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외국 할아버지 이름을 줄줄 읊고 한자어를 쓰면

'유식한 학자'라는 말을 쉽게 듣는다. 불공평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사람들은 자동차 보닛 아래 뜨거운 엔진이 돌아가는 원리는 모르면서도 알려고 하지도

않고, 고장나면 기술자 누군가가 고쳐주려니, 내년쯤 되면 누군가 신기술을 개발해

새 엔진이 얹힌 새 차가 나오면 사야겠거니 하고 생각한다. 고양이가 어떻게 복제되어

태어나는지는 모르면서 내 고양이도 한번 복제해볼까 하는 생각만 한다. 그들에게

과학기술인은 어찌보면 다른 세상 사람이고 신기한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당연하다. 이런 결과는 매우 당연한 것이다. 과학기술인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왜 필요하고 어떻게 되는 것인지" 대중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대중과

대화하려하지 않았고, 사회의 움직임에 참여하려 하지도 않았다. 은행원들이 동료

몇명이 정리해고 당하는 것에 반발하여 은행 문을 닫아버리고, 의사들이 동네 병원 몇개

망할까봐 머리띠메고 시위하던 때에도, 회사가 어려우니 연구원을 줄이겠다는데

"에구 나만 안짤리면 되지" 했다.

 

우리는 그동안 철저히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자리매김해 왔던 것이다. 그간 시도되었던

몇몇 과학기술자 단체의 결성은 결과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 단체들이

'안그래도 아웃사이더인 과학기술자들 중에서도 아웃사이더'로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내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내부의 정서를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아웃사이더들의

아웃사이더가 되었고 결국 과학기술인들은 구심점을 갖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특정한

단체의 색깔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우리는 일단 모든 과학기술인을 보편적으로

대변하는 거대한 용해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용해로를 우리가 사는 사회의

안쪽으로 디밀어 넣어야 한다. 소수의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에게 휘둘릴 이유가 없다.

 

과학기술인들이 '인사이드'로 진입할 때, 사회 내에서 우리의 자리를 잡을 때,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고, 사회발전과 유기적으로 융합하는

과학기술을 낳아서, 궁극적으로 합리적인 하나의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모임이, 불평과 비판만 하는 또다른 아웃사이더들의 모임이 아닌, 인사이더로서의

과학기술인 단체의 씨앗이 되길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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