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조선의 천재' 장영실과 정약용을 기억하며 - 신동호

글쓴이
sysop
등록일
2002-02-26 00:22
조회
6,494회
추천
6건
댓글
0건
동아일보에 제가 쓴 컬럼입니다.

이 커뮤니티에 나온 목소리를 담느라 노력했습니다.

 

 

이공계 기피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40년 전 경제개발계획 시작 이후 과학기술자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칭송돼 왔다. 하지만 IMF 사태 이후 해고, 취업난, 박봉에 크게 시달리면서 불만 세력으로 탈바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자 홀대는 올 대학입시에서 극심한 이과 기피를 초래해 서울공대는 초유의 미달 사태에 직면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공돌이'(공대 출신의 비속어)와 '과학도'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내 아이는 절대 공도리 안 시킨다. 공부가 어렵고, 배를 곯고, 직업수명이 짧고, 천대받으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직 우대해야 선진국 가능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핸드폰 만들어 먹고사는 나라다. 그런데 국회의원, 장관, 공무원은 문과 출신이 거의 다 해먹는다."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기술직 차별은 이공계 기피 사태를 계기로 '문과와 이과 문화의 정면 충돌'로 비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조선 이래 우리에게는 과학기술로 도약할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기술직 천대가 매번 발목을 잡았다.

만원짜리 지폐에 인쇄된 '자동제어 물시계' 자격루를 만든 장영실은 노비였다. 세종 시대의 찬란한 과학 문명은 '기생의 아들'을 궁궐의 연구실로 불러들여 종3품까지 승진시킨 세종의 발탁 인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장영실은 자신이 만든 세종의 마차가 행차 중 부서지는 바람에 장형 80대를 맞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고독한 조선의 천재'가 능지처참 바로 밑의 극형을 견뎌냈는지, 다행히 살았다면 언제 어디서 눈을 감았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다.

17세기 실학 사상의 등장은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근대화를 앞당길 두 번째 기회였다. 하지만 45근의 힘으로 2만5000근의 돌을 들어올리는 거중기를 발명해 수원성을 축조한 정약용을 비롯, 대부분의 실학자가 꿈을 펴지 못하고 유배되거나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


공무원고시 문과만 대거 등용

지금의 세 번째 기회는 어떠한가. 많은 언론이 기술 변혁에 발맞춰 정부의 공무원 채용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행정고시로 233명, 기술고시로 41명을 뽑았다. 5대 1의 문과 대 이과 채용 비율은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현정권이 지역 차별은 어느 정도 없앴지만 훨씬 더 뿌리가 깊은 기술직 차별은 없애지 못했다.

우리의 행정고시와 비슷한 일본의 공무원 1종시험에서는 지난해에 기술계 263명, 사무계 241명을 뽑았다. 오히려 기술계가 많다. 6T를 범국가적으로 개발하겠다고 해놓고 '문과 출신'만 대거 등용하는 정부가 '과학기술자를 우대한다'고 외쳐댄들 누가 믿겠는가.

목록


과학기술칼럼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141 "Engineer = Nobody," in Korea?! - 단풍잎 sysop2 01-26 6584 38
140 싸이엔지와 전문연구요원제도.. - 박상욱 sysop2 01-26 5762 30
139 그래서 "윤리의식/윤리강령"이 있고 지켜져야 "전문가"집단이 되는거죠 - 단풍잎 sysop2 01-26 6199 34
138 일종의, 대학 교수들을 위한 변명 - 조준호 sysop2 01-26 7809 66
137 이공계 기피현상과 신분사회 - 노숙자 sysop2 01-04 7349 36
136 현장직님의 글을 읽고: 현장실무와 연구개발의 조화 - 이봉춘 sysop2 11-05 6397 67
135 진로조언: 삼성전자 vs. 정부출연 (경험담) - 공돌이, 허당 sysop2 11-05 17979 38
134 '이공계는 없다.' 이공계 위기론의 실체. - 김하원 sysop2 11-05 6742 39
133 산학협력에 기반을 둔 이공계 대학 교육 개혁 방안 - 정우성 sysop2 09-04 5397 33
132 대학 도서관에 대한 단상. - 조준호 sysop2 09-04 7069 32
131 침묵의 미덕을 깨뜨리고, 모르면 배우자 !! - anasta sysop2 09-04 5738 27
130 진로조언: 생생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 배성원 sysop2 06-27 8315 34
129 기업의 언론플레이에 대처해야 - 이재원 sysop2 06-27 6039 33
128 어떤 중이 되어야 할까요? - 샌달한짝 sysop2 06-27 5492 34
127 시간 많이 지났다. - 배성원 sysop2 06-27 5970 35
126 state-of-art - 인과응보 sysop2 06-27 6724 33
125 과학기술인 출신 정치인이 시급하다. - 최희규 sysop2 06-27 5020 33
124 과학기술 중심사회, 과연 가능한가? - 최성우 sysop2 06-27 5231 32
123 노무현 정부는 독일을 바라봐야 합니다. - 과학기술강국 댓글 1 sysop2 06-27 6654 33
122 대중화론이니 인식개선론의 허구성 - Steinmetz sysop2 06-27 5089 36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