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과학과 문화 - 김형주 소장

글쓴이
김덕양
등록일
2003-05-31 11:24
조회
3,0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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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부 과학칼럼에서 퍼왔습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http://www.most.go.kr/most/column_info.jsp?gubun=1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그들(청소년)이 쓰는 문화와 정보를 전달하는 거의 모든 수단을 발명하고 개발하고 개선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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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PC, 구체적으로 Apple II, IBM XT등이 일반적으로 보급될 무렵인 1980년대 말경에는, 지금과 같이 화려하고 사용하기 쉬운 GUI (graphic user interface) 와 internet 환경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정보가 특수한 환경의 전산 전용시설도 아닌 일반 가정에 분당 수 십 메가 바이트씩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기는 무척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때 -그러니까 약 15년 전쯤- 이전에는, 필요한 문헌 또는 논문을 찾기 위해서 전화번호부 두께의 책, 수 백 권으로 이루어진 CA (Chemical Abstract)를 뒤지고 이 학교, 저 연구소를 오가며 복사실에서 줄서서 논문을 복사하고 하는 일이 멋진 실험을 하고자 꿈꾸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인 일과 중 하나였다. 언제부터인가 끄윽-끄윽 하는 요상한 접속음을 내는 modem을 사용하게 되고, 이제는 다양한 방식의 LAN (local area network)을 거쳐 한편당 수 십장에 달하는 필요한 논문을 마음대로 자기 책상위에서 인쇄하고 읽을 수 있는 그런 편리한 시절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 같다. 얼마간의 사이에, 생활과 밀접한 과학기술은 많이 변했으며 또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환경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때의 그 전화번호부들에 대한 기억은 이제 그것을 해본 사람들 에게만 존재하게 되었고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e-mail과 internet, mobile phone등을 사용한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요즘 집 앞의 우편함에는 편안한 편지 한 장 대신에 늘 관리비, 세금고지서 및 카드 요금 청구서만 잔뜩 들어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근래의 이와 같은 빠르고 많은 정보의 검색과 전달 수단은 분명히 우리의 생활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또한 cable TV와 다양한 인쇄 매체의 디지털화로 인하여 가상현실이 곧 실제현실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생기는 부작용은 가상현실로부터 발생한 대수롭지 않은 가상적인 것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그러한 문화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그 문화에 지배당하고 있다. TV, internet등을 통하여 흔히 볼 수 있는 시각중심적인 다발성 혼합정보의 전달은 이에 대한 선별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 이외에는 그것의 적절하고 유용한 전달과 활용을 담보 할 수 없다. 또한 상업주의의 발달로 그와 같은 문화적 코드를 갖는 상업적 우상은 이미 청소년의 진정한 우상이 되어 버렸다. 이 우상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무엇인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늘 그 문화와 그 우상에게 간편하게 빨리 그리고 시각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이제 세대차이는 이러한 정보 및 문화에 대한 접근방법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따라 존재하는 것 같으며 그 길을 모르는 세대는 점차 사회로부터 자의반 타의반 소외되고 만다. 그리고 그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자가 사회의 주류로 부각되었다. 또한 그 문화에 대한 접속과 이를 통해서 얻는 정보획득만이 그 길을 아는 자들의 유일하고 한정된 취미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간편하고 신속하게 접속되고 검색되는 그들의 문화와 우상은 언제나 화려하다. 운동선수가 되고 외국으로 건너가서 수십억의 돈을 불과 1년 사이에 벌어들일 수도 있고, TV 방송에서는 그 귀중한 공중파를 사용해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에 대한 심층취재로 매일 1시간 이상씩 방송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스스로 공인이라 칭하는 연예인이 되어 개인적인 신변잡기 따위로 신문과 방송의 1면을 장식할 수 도 있기 때문에 립싱크 그룹의 백댄서가 될지언정 과학기술자는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체득한 정보는 이와 같은 상업적인 우상도 결단코 쉽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그들이 얻는 정보와 문화는 획일화 된 문명의 결과일 뿐이지 그 문명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일반화된 과학자의 상징은 SF 만화 영화에 나오는 하얀 실험복을 입은 흰머리 수북한 전형화된 강박사 나 김박사에 다름이 아니다. 또 그들에게 있어서 과학기술자 -흔히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는 고단한 삶을 유지하는 기름과 시약이 묻은 작업복 차림의 고리타분한 특정 사회구성원에 불과하다. 또한 그들이 보는 과학기술자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연봉이 수억원을 넘지도 않으며 외제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거리를 질주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입는 작업복과 실험복은 고가의 소위 명품도 아니며 밤마다 TV를 틀면 나오는 골프 중계방송의 주인공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자는 현재 잊혀져가고 있다. 그들이 쓰는 문화와 정보를 전달하는 거의 모든 수단을 발명하고 개발하고 개선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화하는 것은 과학기술자들이 결코 아니다 라는 것을 그들은 또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폐간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학생과학’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창간호의 표지 인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비행사인 김경오 여사가 장식하고 있다. 아마 70년대 초반으로 기억 한다. 잡지의 내용은 혹시 기억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직접 청계천을 뒤지며 구해야하는 부품, 예를 들어 저항기, 콘덴서, 트랜지스터 등을 이용해서 라디오와 전자식 피아노를 만들어 보거나 또는 발사판을 구해서 비행기 날개와 동체를 직접 만들고 날려 볼 수 있도록 자세한 설계도와 제작 방법을 안내하는 내용이 잡지에 한가득 들어 있었다. 필자의 경우 이 잡지를 보고 고생 끝에 단파라디오 한대를 조립해서 서울에서 라디오 프랑스방송의 신호를 수신했을 때의 황홀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많은 젊은 학생들이 이와 같은 잡지를 통해 과학과 기술에 관련된 취미생활을 할 수 있었고 잡지에 소개된 나름대로의 최신 과학지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겪어본 사람은 조그만 모형비행기 한대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이 sand paper를 사용해야하고 단파라디오의 안테나 코일을 감기 위해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나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며 자연스럽게 과학과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나 이질감이 사라지게 된다. 요즘은 그런 문화가 없다. 모형비행기도 거의 완성품 단계인 ARF (almost ready to fly)로 생산되기 때문에 사포질 한번 하지 않고 날릴 수 있고 간단한 FM 라디오의 회로도 한 장 쉽게 구할 수가 없는 대신 다른 나라에서 조립, 완성된 워크맨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설계도나 회로도를 구한다 하더라도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수능 교육과 학원 생활에 치어있기 때문에 직접 무엇인가 해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좁고 막힌 도로를 꽉 차지하는 검정색 대형차의 트렁크에 골프채 싣고 돌아다니는 ‘성공한’ 어른들을 보며 그것이 성공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에, 불과 몇 달 사이에 음원 채취로 작업한 립씽크 그룹의 음반이 기획사의 선전으로 수십만장씩 팔리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문과 방송의 1면 기사가 수백억원의 부정한 돈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의 검정색 대형차와 골프채와 수백억원의 돈만이 곧 성공이며 우상이다. 그리고 현실과의 괴리감에서 비롯된 억압된 감정을 가지고 가상의 현실 속에 갇혀 젊은 시절을 지낸다. 그리고 점수에 따라 등급별로 나뉜 특정등급의 대학에 들어간다. 그리고 계속 그 변질된 문화를 탐닉하게 된다.

우수한 문화의 소비를 위해서는 보다 우수한 문화의 생산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우수한 문화는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평화롭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문화의 생산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자의 참여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욱 필요한 것은 상업주의와 정형화된 편리주의 그리고 시청률에 찌 들은 각종 문화 생산자와 그 문화의 전달자들의 새로운 개혁이다. 상업주의에 물든 현재의 문화에서는 재료비가 1000원 들어간 마분지로 만든 모형비행기는 날지 못한다. 마치 졸업한지 30년 지난 고등학교 동창회에 낡은 티코를 타고 나타난 ‘성공’하지 못한 친구를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수한 문화의 생산을 위하여 과학기술자는 지금처럼 난해함과 권위와 위엄과 실험실만의, 사회에서 격리된 과학을 문화의 형성과정에 전달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자가 우수한 문화의 생산을 위하여 전달하여야 것은 흥미와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사회적인 생활과학이다. 금으로 만든 비행기가 종이로 만든 비행기보다 하늘높이 오래 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과학에는 ‘명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영국의 BBC와 일본의 NHK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과학과 그 관련 프로그램에 할애하고 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과학과 기술과 문명의 진행과정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해 설명하는지 인지해야 한다. 현재의 이공계 지원에 대한 기피현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공계의 대학 입학 시 장학금을 늘이고 병역 특례를 늘이는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면 그 단맛이 사라짐과 동시에, 상업주의적 폐해와 연관된 또 하나의 실패한 사례가 될 지도 모른다. 어렵지만 깊은 통찰과 토론을 통하여 이 상업주의적 사회와 문화의 불합리를 개선하고 생각하고 수정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과 기술은 없다.

2003년 3월

한국바이오시스템 기술연구소장 김형주

  • 심종엽 ()

      진심으로 동감합니다.

  • 관전평 ()

      아시는 분은 다 아는 이런 이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관료들을 보면..

  • TRIGGER ()

      훌륭한 내용입니다

  • 황인용 ()

      무척 좋은 글이네요.

  • H2H ()

      좋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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