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여성 과학자들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4-04-1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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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한 리제 마이트너(위)와 로절린드 프랭클린(아래)


최근 우리 과학기술계에서는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학기술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이 성차별과 편견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여성과학기술자들도 점차 자기 입지를 굳히고 역할을 확대해가고 있다.

그런데 사실 여성과학기술자에 대한 차별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구 선진국에서도 유능한 여성과학자들이 차별과 홀대를 받거나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사례가 상당히 많다.

우리는 성공한 ‘여성과학자’ 하면 으레 퀴리 부인, 즉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934)를 떠올린다. 일생에 한 번 받기 어려운 노벨상을 두 차례나 받은 그가 현대 물리학사에 끼친 업적을 생각하면 퀴리 부인은 탁월했던 여성과학자로 추앙받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파리 과학아카데미에서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남편이었던 피에르 퀴리(Pierre Curie; 1859-1906)의 도움과 후원이 없었더라면 과연 그 정도로 성공했을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퀴리 부인의 큰딸 이렌 퀴리(Irene Curie; 1897-1956) 역시 성공한 여성과학자다. 비록 중성자의 존재와 핵분열 원리의 발견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과학사상 대발견을 일보 직전에 아깝게 놓치긴 했으나, 이렌 퀴리 역시 인공 방사성원소에 관한 연구로 남편 프레데릭 졸리오(Frederic Joliot; 1900-1958)와 함께 1935년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퀴리 모녀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비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했던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두 여성과학자,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 1878-1968)와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te Franklin; 1920-1958)이 그 예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아와

1930년대 무렵에는 원자핵물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많은 과학자들이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에 몰두했다. 일류 과학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 뜻밖에도 최후의 승자는 그전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독일의 오토 한(Otto Hahn), 마이트너, 슈트라스만(Fritz Strassman)의 연구팀이었다. 그들은 페르미(Fermi)팀, 졸리오-퀴리(Joliot-Curie) 부부팀 등 당대의 대가들을 제치고 우라늄 원자핵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핵분열의 원리를 명확히 밝혀냈다.

당대의 일류 과학자들을 제치고 독일의 연구팀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다른 연구팀과는 달리 물리학자와 화학자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학문 분야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 팀’이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더욱이 나중에 연구팀에 합류한 슈트라스만은 전문 분석화학자로서 그들의 연구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핵분열 및 연쇄반응의 메커니즘을 명확히 밝혀낸 것은 물리학자였던 마이트너였다. 우라늄 실험도 그녀가 오토 한에게 제안해서 시작된 것이었고, 마이트너와 그의 조카 프리시(Otto Frisch)는 우라늄의 원자핵이 단순히 분열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거기서 방출된 세 개의 중성자가 다시 다른 우라늄 원자핵을 때리는 연쇄반응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면서 질량결손에 의한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아내었다. 이것이 바로 원자폭탄의 원리이며, 또한 원자력발전에도 널리 응용되는 우라늄 연쇄반응의 메커니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트너는 자신의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불운하게도 여러 차례 노벨상 수상자 심사에서도 탈락했다. 그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나찌 독일의 박해와 인종 차별을 받았다는 점도 그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보른, 크렙스 등 여러 저명한 ‘유태인 과학자’들이 결국은 업적은 인정받고 대부분 노벨상을 수상한 것을 감안하면, 마이트너는 ‘여성과학자’였기 때문에 끝내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마이트너와 오랫동안 함께 연구했던 오토 한은 핵분열 원리 발견의 공로로 194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으나, 마이트너와 슈트라스만은 수상자 대열에서 제외되었다. 슈트라스만은 공동연구 당시 나이도 젊은 조교 정도의 신분이었으므로 그렇다 쳐도, 마이트너는 처음에는 오토 한 밑에서 일하는 방문연구원의 신분이었으나 나중에는 거의 대등한 공동연구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심사위원회에서는 학문 분야간 연구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여러 차례 후보로 오른 그녀를 번번이 탈락시켰다.


획기적인 발전에 여성과학자의 역할 돋보여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Elste Franklin; 1920-1958)만큼 엇갈린 평가와 숱한 논란이 뒤따르는 여성과학자도 드물다. 많은 과학사(史)가들은, 그녀가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히는데 결정적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불운하게 역사의 뒤안길에 파묻히고 말았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그녀가 노벨상을 도둑맞았다고 까지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면, 왓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의 DNA구조 발견은 앞에서 언급한 핵분열원리의 발견의 경우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점이 많다. 둘 다 이후의 인류 역사를 뒤흔들 정도로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이라는 점, 둘 다 학문 분야간의 연구가 뒷받침되었다는 점, 당대의 세계적인 석학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점,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선발 주자들을 막판에 제친 의외의 인물들이었다는 점들뿐만 아니라, 연구에 여성과학자가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점, 게다가 그 여성과학자는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벨상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점까지 공통적이다.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여 물리화학을 공부하였고, 대학을 졸업한 후 고체의 결정구조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다가 파리로 건너가서 X선 회절법이라는 새로운 연구기법을 배웠다. 영국으로 돌아온 프랭클린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King’s College)의 존 랜돌(John Randall)의 연구실에서 X선 회절에 관해서 계속 연구하다가, DNA에 관해 연구하던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와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그 후 줄곧 DNA의 구조를 밝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으나, 내내 심각한 불화를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큰 이유 중 하나가, 윌킨스와 프랭클린은 별도의 연구그룹을 이끌던 동등한 동료의 위치였고 랜돌도 그녀에게 DNA프로젝트 책임을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윌킨스는 그녀의 위치를 자신의 실험조교 정도로 잘못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사소하게는 케임브리지에 여성연구자를 위한 휴게시설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는 등, 전반적으로 여성에 대해 차별적이었던 풍토도 그 원인으로 작용했던 듯하다.

왓슨(James Watson), 크릭(Francis Crick)이 경쟁자였던 윌킨스(Maurice Wilkins)와 함께 1962년도 노벨 생리의학상까지 받게 된 불후의 업적인 DNA의 이중나선구조 발견은 프랭클린이 찍은 DNA의 X선 회절사진이 결정적 단서를 제공했다. 뛰어난 과학자이자 ‘역사에 있어서의 과학(Science in History)’의 저자인 저명한 과학사가 버널(J. D. Bernal)은 프랭클린의 X선 회절사진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X선 사진”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프랭클린은 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4년 전인 1958년 4월, 암으로 37세의 아까운 나이에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그가 그때까지 살아 있었다고 해도 3인까지만 공동수상이 허용되는 노벨상 수상규정과 여성을 차별하는 풍토 때문에 노벨상 수상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왓슨 역시 프랭클린과 그다지 좋은 사이가 아니었으나, 자신의 저서 ‘이중나선(The Double Helix)’의 후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녀를 기렸다. “여성을 한낱 심오한 이론에 지쳤을 때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그런 존재로만 흔히 생각하기 쉬운 과학의 세계에서, 그녀와 같은 고도의 지성을 갖춘 여성이 그토록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한 것은 때가 너무나 늦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치의 병을 알면서도 수주일 앞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한탄 한마디 없이 고차적인 연구에만 헌신적인 정열을 기울여온 그녀의 그 용기와 성실성을 우리는 너무도 뒤늦게 인식한 것이다.”


최성우 (한국과학기술인연합)

- Popular Science 2003년 10월호 -

  • 히카루 ()

      글 잘읽었습니다, 흥미롭고 또한 마음이 아프고 복잡하네요..^^;
    제 홈피에 글을 복사했습니다.
    그리고 링크된 홈피에 방문했는데 바탕화면이 너무 눈 아프더군요..색깔이요...@.@ 바꾸시는 건 어떨지.........제 사견이었습니다.

  • 최성우 ()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링크된) 제 홈피는 오래 전에 개편 준비까지 다 해 놓았는데, 지금껏 못하고 있습니다...

    히카루님의 홈피는 어디인지 (쪽지로라도) 제게 알려 주시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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