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과 디지털의 만남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4-05-13 18:54
조회
7,0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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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컴퓨터 HAL은, 우주선 승무원의 입술 움직임을 보고 대화를 알아 차린 후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따뜻한 디지털의 세계

디지털과 감성, 얼핏 들으면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문명의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은 결코 차갑고 딱딱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디지털은 때로는 지극히 부드럽고 포근한 이미지로 다가올 수도 있고, 다양한 감성을 잘 담아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미래의 과학기술에서는 인간의 감각과 정서를 어떻게 디지털적으로 잘 융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매우 핵심적인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세는 인공지능, 감성공학, 휴먼 인터페이스, 컴퓨터 기술 등 여러 관련 분야의 발전과 상호 작용에 힘입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컴퓨터가 도처에 널려 있다

30여년 전에 소설과 영화로 나온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는 인간에 가까운 지능과 감성을 지닌 컴퓨터가 소개된다. 오늘날의 컴퓨터 수준은 아직 이것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인간의 마음과 정서까지 읽는 감성 컴퓨터(Emotions Co-mputing)는 머지 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여러 기술들이 개발중인데, 예를 들면 ’감성마우스'는 쓰는 사람의 손가락으로부터 체온, 심박동, 습도를 측정해 감정 상태를 파악하고, ‘감정 탐지장치(Affect Detection)’는 눈썹과 입 모양으로 사람의 표정을 읽는다. 모니터 앞에 앉은 사람의 시선을 추적하는 ‘눈동자 탐색장치'는 마우스가 아닌 시선으로 커서를 움직일 수도 있다.

또한 감성의 정도를 측정하는 각종 센서가 더욱 개발되고, 인간의 뇌파까지도 컴퓨터에 잘 전달할 수 있다면 감성컴퓨터는 더욱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것이다. 특히 데스크탑, 노트북 등과 같은 형태가 아닌, 근래 개발중인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ing)', 나아가서는 “컴퓨터가 도처에 널려 있다”는 의미인 '유비퀴터스 컴퓨팅' 기술에 힘입어, 이는 더욱 앞당겨질 수 있다.


디지털에 감정을 싣는다

컴퓨터와 함께 하루 일과의 많은 부분을 보내는 현대 사회에서, 감성컴퓨터는 사용자의 감성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좋은 감성을 유지하거나 나쁜 감성은 줄임으로써 생활에도 커다란 활력과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분이 나쁜 상 상태에서 인터넷에 들어갔다면 기분이 좋아지는 웹사이트로 안내하거나, 상쾌한 음악, 그림 등을 보여줄 수 있다. 컴퓨터로 동영상을 볼 경우에는 사용자가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느끼면, 자동으로 재빨리 건너뛸 수도 있다. 채팅을 하거나 이메일을 보낼 때에도 문자, 이미지 정보와 함께 순간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함께 보내는 것도 가능해진다. 인간의 감성을 디지털로 융합하는 기술은 컴퓨터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그 밖의 수많은 제품과 기술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며, 바로 이를 위한 ‘감성공학(human sensibility ergon-omics)’이 크게 주목받고있다.

감성공학이란 여러 제품 설계 등에 인간의 특성과 감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공학기술을 의미한다. 즉, 인간이 오감으로 느끼는 감정과 기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학문으로서, 상쾌함, 불쾌함, 안락함, 우울함 등 애매모호하고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상태를 데이터로 처리하여 소비자의 감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거나 환경을 제공하는 데에 적용하고 있다. 감성공학이 분석해내야 할 대상으로서의 인간 감성이란, 외부의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감각이나 지각으로 인해 인간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체험 및 복합적인 감정이 모두 포함된다.


미래의 핵심 화두, 감성 디지털

이처럼 인간의 감성을 반영하여 제품을 만들면 여러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기분이 울적한 날에는 오디오가 사람의 기분을 미리 파악하고 그에 맞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 또한 TV 장면에서 꽃이 나오는 거기에 맞는 꽃의 향기가 나는 텔레비전 등도 생각할 수 있다. 근래에는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개발에서 인간의 생체적, 심리적 적합성을 반드시 고려하여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휴먼 인터페이스를 중시한 제품, 컴퓨터의 음성입력 모드 연구 등도 감성공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감성공학은 다른 공학분야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감성 공학이 크게 발달하면 뇌과학, 인간공학, 인지과학, 산업디자인, 로봇공학, 퍼지, 신경망 등의 새로운 컴퓨터 분야, 가상현실 기술 등의 여러 분야들도 큰 도움을 얻고 관련 첨단제품들이 더욱 쉽게 실용화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으로 관련 과학기술분야의 발전이 감성공학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감성과 디지털, 바로 미래 과학기술문명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최 성우 : 과학평론가이며, 저서로는 '과학사 X파일',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 등이 있다.


- 삼성웹진 DIGITALL 2003년 3월호 'Sense' (Digital + style) -
Sense는 미래를 부른다

  • 장성희 ()

      우와 정말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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