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끈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4-05-24 08:03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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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통합이론에 도전한다 - 초끈이론(1)

만물의 궁극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우주와 자연에 작용하는 가장 근본적인 섭리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자연철학으로부터 오늘날의 첨단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중요한 주제였다.
흔히 과학의 시조라 불리는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탈레스는 일찍이 ‘만물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고, ‘물, 불, 흙, 공기’의 네 가지가 가장 기본적이라는 ‘4 원소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같은 시대의 데모크리토스가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고전적인 원자론을 처음으로 언급한 이후, 근대 과학은 모든 물질이 각기 다른 원자들로 구성되어 고유의 성질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양성자, 전자, 중성자와 같이 원자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소립자들이 발견됨에 따라, 원자 역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궁극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근래에는 소립자 역시 물질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아니고 이보다 더 작은 쿼크(quark)라고 하는 입자가 존재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결과 등이 나온 바 있다.

만물의 궁극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졌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물질의 최소 구성단위를 당구공과 같은 구의 형태라고 생각해 온 점이다. 그런데 1970~80년대 이후 미국 칼텍의 이론물리학자 존 슈바르츠와 영국 퀸 메리 대학의 마이클 그린 등이 발전시킨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에서는 대담하게 발상을 바꿔서, 만물의 궁극을 끈과 같은 형태라고 본다. 즉 우주의 만물은 소립자나 쿼크와 같은 기존의 단위보다도 훨씬 작은 구성요소인 ‘진동하는 가느다란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바이올린이나 첼로에서 각기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이 현의 진동 패턴과 주파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끈들이 진동하는 패턴에 따라서 각기 입자마다 고유한 성질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최근 초끈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우주와 자연의 모든 원리를 통합하여 설명하는 이른바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주를 거시적으로 볼 경우에는 대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떠올린다. 시, 공간과 중력의 원리 등에 대해 설명하는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면, 태양과 지구의 운동, 머나먼 별빛의 경로 및 우주의 모습 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다. 상대성 이론이 보여 주는 거시 세계는 연속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측 가능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세계가 아닌, 원자 이하 단위의 아주 작은 미시세계를 기술할 경우에는 양자역학이라는 전혀 다른 이론을 적용해야 한다. 미시세계에서는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입자들의 운동 등을 확률적으로 밖에는 기술할 수 없고,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이 나타나는 등, 우리가 거시세계에서는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과는 매우 다른 물리적 현상들이 자주 일어난다. 즉 미시세계는 불연속적이며 예측 불가능의 세계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거시세계를 설명하는 상대성 이론과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은 서로 대치되어 있는 셈이며, 현대 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두 이론체계가 충돌을 일으키면서 양립되지 못한다는 점은 오늘날 물리학자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겨져 왔다.

초끈이론을 적용한다면 아주 작은 물질 입자에서부터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커다란 천체에 이르기까지 자연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우주와 자연의 궁극적인 원리를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초끈이론에서는 만물이 1차원적인 끈의 요동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불연속성과 상대성 이론의 연속성 간의 모순을 해소하고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물리법칙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을 완성한 아인슈타인을 많은 사람들은 20세기의, 아니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나는 신이 어떻게 이 세계를 창조했는지 알고 싶다. 신의 생각을 알고 싶은 뿐,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말년에는 모든 것을 통합하는 ‘만물의 이론’을 밝혀내기 위해 오랜 노력을 기울였지만, 끝내 성공시키지는 못하였다.

과연 초끈이론이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까? 정말 모든 이론을 통합하는 꿈의 이론이 나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글 : 최성우-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 KISTI의 과학향기, 제 133호 (2004. 5. 17) -

* 전자신문 5월 17일자에도 약간 요약이 되어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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