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광 가속기의 이용

글쓴이
박상욱
등록일
2004-05-24 08:26
조회
6,4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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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
외국 영화에 가끔 등장하는 멋진 거대 연구 시설이 있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체인 리액션’에서는 악당들의 아지트로 나왔고, 터미네이터 3에서는 액체로봇을 무력화시킨 강력한 자석으로 살짝 등장했다. 둘레가 수백미터에서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원형 가속기는 그 자체가 지표면에 새긴 멋진 조형물인지라 각종 영상물에서 배경으로 자주 쓰인다. 거대한 연구시설을 보면서 ‘멋지다’는 느낌과 함께 ‘이런 곳에 엄청난 돈을 쓰고 과학 연구에 매진하는구나. 역시 인류의 지적 호기심은...’ 이란 생각이 들어 이유없이 뿌듯해지기도 한다.
거대 연구시설은 선진국에나 있을 것이라는 억측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도 포항에 방사광 가속기가 있다.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나노팹이나 양성자 가속기등 거대 연구시설의 설치가 속속 이루어지거나 계획중이지만, 포항 방사광 가속기는 그 1호로 기록된다. 건설비만 1500억원이 들었고 첫 전자빔 입사까지 만 5년이 걸렸다.지금도 빔라인(주: 실험을 위한 방사광 응용 시설)이 계속 설치되고 있다.
일반에 알려진 가속기의 이미지는 무언가 신비롭고, 국가 기간 연구 시설인 만큼 보안이 철저하여 아무나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연구 활동은 일반인이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초하이레벨의 입자물리 실험일 것이라고 생각되기 쉽다. 아쉽게도, 모두 틀린 말이다. 포항 가속기에 가보면, 둘레 수십킬로미터에 이르는 초거대 시설이라는 추가적 선입관을 깨고, 비교적 아담하고 소박한 건물 하나가 서 있다.
엄청난 규모의 지하 터널이 있는 것도 아니며, 총 든 군인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지도 않은, 좀 한적하게 느껴지는, 넓은 부지에 자리잡은 연구동일 뿐이다.
물론, 선입관에 비해 아담하다는 것이지, 저장링동만 해도 장충체육관 만한 크기에 선형가속기까지 포함하면 걸어서 둘러보기 어려운 만만치 않은 규모이고, 소비하는 전력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와 비견될만한, 국내 최대 단일 실험 시설이다.
방사광 가속기는 더 큰 규모의 원형입자가속기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미리 말하지만, 포항 방사광 가속기에서는 입자 충돌 실험을 할 수 없다. 입자물리학도를 꿈꾸던 청소년들에게는 아쉬움의 탄식이 나올 대목이지만, 방사광 가속기는 그 이상의 유용성을 지닌 시설이다.
거대 입자 가속기가 우주의 탄생과 물질의 원천이라는 순수과학적인 인류 공통의 지적 과제에 도전하기 위한 도구라면, 방사광 가속기는 재료, 화학 등 응용과학을 위한 것이다. 이 말은, 방사광 가속기가 일상생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여 노벨상의 첫 수상자가 되자, 유럽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빛을 찾아 유명해지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X선은 전자기파중 파장이 매우 짧은 빛의 한 종류임이 밝혀졌고, 이보다 짧은 파장의 빛은 방사성 핵이 방출하는 감마선 뿐이다.
파장이 짧기 때문에, X선은 여러 가지 재미있는 특징을 갖는다. 잘 알려진 성질은 투과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피부와 근육을 그냥 통과하는 성질 때문에 X선의 첫 응용은 의료분야에서 이루어졌다.
투과력을 제외한 응용성은 짧은 파장의 빛이 갖는 높은 에너지와 원자핵 사이를 비집고 꺾여 나오는 회절로부터 얻어진다. 원자핵이 전자를 붙들어매고 있는 에너지는 핵에 가까운 전자일수록 커지는데, 이러한 내각 전자와 핵의 결합에너지나 전자밀도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는 X선을 이용해야 한다.
X선은 고전압으로 가속된 전자를 구리, 마그네슘 등의 금속 전극에 충돌시켜 얻었는데, 이런 방식은 병원의 X선 촬영장치나 XRD, XPS등 실험실 장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방사광 가속기는 새로운 X선생산장치이다. 고에너지, 고품질, 고광도, 넓은 파장영역을 갖는 X선을 24시간 내뿜어주는 거대한 X선 방사장치이다. 선형가속기에서 가속된 전자는 초고진공 상태인 저장링으로 들어가고, 저장링에 설치된 수많은 자석들은 전자의 진로를 조금씩 꺾어 벽에 부딪히지 않고 원형으로 돌게 한다. 전자는 방향이 바뀔 때마다 X선을 방출하는데, 이 X선은 원운동 궤도의 접선 방향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접선 방향에 작은 창을 내고, 새어나오는 X선을 받아 단색화장치(monochromator)를 거쳐 X선을 필요로 하는 실험에 사용하는 것이다. 공간만 허락한다면 수없이 많은 창을 내어 고품질의 X선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포항 가속기에는 현재 20여개의 빔라인이 있고, 계속 건설중이다.
X선을 사용해 할 수 있는 일이 뭐 그리 많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매우 많다.
회절 현상을 이용해 고체 시료나 단백질의 구조를 밝힌다(X-ray diffraction, X-ray crystallography). 미시세계를 실시간으로 관찰한다(극고분해능 영상). 고체 내부의 전자구조 및 국부구조를 밝힌다(X-ray absorption spectroscopy). 표면 상태나 내각 전자의 결합에너지를 관찰한다(photoemission spectroscopy). 초미세 식각기술을 이용해 마이크로 기계부품을 만든다(X-ray lithography, MEMS). 여기에 적은 것은 잘 알려진 응용분야들만 고른 것으로, 방사광 X선 활용의 일부분일 뿐이다.
소재 연구 분야에 특화된 목적을 갖는 방사광 가속기의 특징상, “내가 뭐 방사광까지 사용할 일이 있겠어?” 라고 생각하는 많은 연구자들도 알고 보면 무궁무진한 응용 가능성이 있고, 비싼 건설비 값어치를 하는 우수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제안서를 통해 빔타임(빔라인 사용시간)을 나누어 받아 쓸 수 있고, 공개 과제의 경우 사용료도 없다. 엄청난 국가예산을 들여 지은 시설(운영비도 만만치 않다)을 실험자들로 미어터지도록 활용하는 것이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cantab ()

      "엄청난 국가예산을 들여 지은 시설(운영비도 만만치 않다)을 실험자들로 미어터지도록 활용하는 것이 중요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에 한표입니다.

  • 오호라 ()

      좋은 시설 갖고 있어 유용하다. 하지만 외부 사용자로서 포스텍이 좀 텃세 부린다는 느낌이 든다. 뭐 옆에 있으니 이해는 가지만 좀 기분 상한적 몇번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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