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론, 최후의 심판대에 서다

글쓴이
실피드
등록일
2004-06-07 02:4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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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건
이 기사는 과학신문과 연세대 대학원 신문에 투고했던 기사입니다. 편집하는 바람에 내용이 많이 줄었지만 일반 보도기사보다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 공식홈페이지 http://einstein.stanford.edu에 올라와 있는 대부분의 자료와 논문을 읽고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이번달 과학동아에도 기획기사가 실려있으니 참고하세요. (제가 쓴 글보다는 훨씬 좋은 글이겠죠 ^^;)

위의 두 그림은
[1] 트위스팅 효과와 워핑 효과를 나타낸 그림
[2] 자이로에 탑재되는 수정구와 하우징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1905년, 과학에서 가장 혁명적이고 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었다. 특수상대론은 광속은 어떤 좌표계에서 보더라도 변함없이 일정하다는 것을 기초로 하는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에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효과, 움직이는 사람이 다른 물체를 볼 때 길이가 짧아지는 효과, 적색편이 등이 예견되었으며, 모두 실험을 통해 정확함이 증명되었다. 특수상대론을 확장시켜 1916년에 발표한 일반상대론은 중력을 '질량에 의한 공간의 왜곡'으로 생각하여 기하학적으로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상대론의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가 중력이 있는 곳에서 빛이 휘어지는 것인데, 이 효과는 일식 때 태양 주변의 별들의 위치가 이동하는 것을 관측함으로써 증명되었다. 또 다른 예로, 빛이 중력이 강한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갈 때 빨간색 쪽으로 변화하는 중력 적색편이 현상도 탑의 바닥에서 탑의 꼭대기에 있는 원자가 내보내는 빛을 관찰함으로써 확인되었다. 하지만, 그 효과가 너무 작아 아직까지 검증되지 못한 효과들이 남아있다.

GP-B 계획의 목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 매혹되어 영국에서 미국으로 온 프랜시스 에버릿 (Francis Everitt. 스탠포드大) 박사는 지난 40년간 상대론의 증명되지 않은 몇 가지 효과들에 대한 실험들을 추진해 왔다. 그가 추진하고 있는 Gravity Probe B (약칭 GP-B) 프로젝트는 트위스팅 효과(질량이 있는 물체가 자전할 때 생기는 공간의 뒤틀림)와 워핑 효과(중력에 의한 시공간왜곡)를 관측하기 위한 것인데, 매트 위에 공을 올려놓고 회전시키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하지만 트위스팅 효과는 지구 상에서는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에버릿 박사는 우주 상에서 실험할 것을 제안해왔고 예산 문제로 수 차례나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끈질긴 설득으로 재개되어 4월 17일에 GP-B가 발사되었다. GP-B는 640 km 상공을 돌며 2개월간 기준이 되는 별의 고유운동을 측정하는 등의 준비작업 후 16개월 간의 측정임무를 수행한다. 1976년의 GP-A 계획에서는 10000 km 상공에 원자 시계를 실은 로켓을 쏘아올려 중력장에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현상을 검증했다.

GP-B 위성의 내부

위에서 언급한 두 효과는 좌표계의 뒤틀림으로 나타나는데, GP-B계획은 우주상에 자이로를 띄워 회전축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다. 계산에 따르면 트위스팅 효과에 의한 좌표계의 비틀림은 1년에 약 0.041” (1”는 1/3600o), 워핑 효과에 의한 왜곡은 6.6”/년으로 매우 작은 양이다. 이런 작은 양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밀도는 현재 쓰이고 있는 자이로의 정밀도의 백만배 정도. 우선 이 측정에 이용되는 자이로에 대해 알아보자.

GP-B 위성에는 기준별(Guide star)을 잡기 위한 망원경과 지름 38 mm의 탁구공 크기의 수정구(Quartz ball)가 들어있는 자이로 네 개가 탑재되어 있다. 각 각의 수정구는 케이스에 개별적으로 탑재되며 케이스는 수정으로 만들어진 본체에 탑재된다.

자이로는 회전축을 정확하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회전체가 정확한 대칭을 이루고 있어야 하고 외부의 진동과 충격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자이로에 쓰이는 회전체인 수정구는 25 nm 정도의 정밀도를 갖는 완벽한 구체로, 지구로 치면 가장 높은 산이 4 m 정도 되는 셈. 전체 자이로는 액체 헬륨으로 영하 271°C 로 냉각된 진공용기 속에 들어가 있어 열과 진동을 없애도록 되어있다. 수정구가 탑재된 케이스 내부에는 입출구 한 쌍의 홈이 있는데, 이 홈을 통해 액체 헬륨을 흘려 수정구를 분당 170회전까지 가속한다. 케이스는 아래 위 둘로 나누어져 있고, 내부에는 세 쌍의 전극으로 이루어진 전자 서스펜션(충격흡수장치)이 있어 수정구가 케이스 내부에 떠 있게 하는데, 이는 수정구에 코팅된 니오븀 박막과 각 쌍의 전극 사이의 인력을 이용한다.

회전축의 변화는 어떻게 측정할까. 자이로에 탑재된 수정구에는 니오븀 초전도체가 코팅되어 있다. 초전도체가 회전하면 회전축 방향으로 자기장이 발생하는데, 회전축이 변하면 각도에 따라 자기장이 변화하며, 이를 자기장 센서인 SQUID 회로로 측정하여 회전을 감지한다.

그렇다면 왜 자이로는 네 개나 탑재되어 있을까. 기본적인 임무를 위한 측정 외에도 측정량 보정을 위해 외부조건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이로는 서로 7.5 cm 씩 떨어져있는데, 하나는 위성에 가해지는 외부영향을 측정하고 자세를 제어하는데 쓰이며, 나머지 셋은 지구로부터 서로 다른 거리에 놓이게 되는 것을 이용, 지구 중력장을 보다 세밀하게 측정한다.

자이로가 몸의 평형기관에 해당한다면, 자세제어장치는 손과 발, 망원경은 눈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자세제어와 망원경의 성능도 중요한 요소. 임무에 필요한 정밀도를 얻기 위해 새로운 소형 분사장치가 고안되었는데, 이 분사장치는 액체헬륨을 기화시켜 분출하는 방식으로 기존 장치와는 달리 연속적인 조절이 가능해 자이로와 거의 같은 정밀도로 움직일 수 있다. 눈 역할을 하는 망원경 역시 구경 142 mm의 소형 망원경이지만 640 km 상공에서 3 mm의 이동을 감지할 수 있다.

장거리 우주여행의 꿈

지금까지 GP-B 위성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수십년간의 노력과 집념이 이 위성에 담겨있다. GP-B 위성을 완성하는 데에는 인공위성 기술, 광학, 초전도센서, 초정밀 가공기술 등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 공학지식이 총동원되었는데, 무려 7억$ (8천억원정도)에 달하는 정부의 막대한 투자와 수많은 엔지니어, 과학자들의 노력이 바탕이 되었다. 그 노력과 투자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장거리 우주여행에서 항로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력이다. 지구의 바다가 아닌 우주라는 바다를 여행할 때는 중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바다를 개척하는데 나침반이 필요했듯이, GP-B위성을 이용한 중력에 대한 연구는 우주탐사에서 새로운 나침반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GP-B 위성의 임무는 장거리 우주여행과도 이어져있다. 이런 프로젝트는 고도의 정밀도를 요하는 상대론의 검증실험을 해낼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가진 나라라는 선전도 되지만, 프로젝트를 통해 얻게 될 바로 이런 고도의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만간 진지하게 현실적인 시각으로 기초과학육성을 바라보게 되길 바란다.

  • Simon ()

      Warping은 Mechanics에서는 "out of the plane deformation"이라고 설명하지요. 정말로 좋은, 깔끔한, 기사이자 요약입니다. 박수 짝.짝.짝. ^^

  • 김정훈 ()

      1”가 1/3600° 인가요? 1”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김정훈 ()

      우리나라도.. 진지하게.. 제발..

  • 소요유 ()

      예, 1(각)초는 3600분의 1도 입니다. 1도는 60(각)분, 1(각)분은 60(각)초 이렇게 됩니다.

  • 김정훈 ()

      와~ 감사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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