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의 역사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4-06-1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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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닙코프 원판을 채용한 베어드의 기계식 텔레비전
(下) 즈보리킨이 발명한 텔레비전 촬상용 진공관인 '아이코노스코프'의 원리도


텔레비전의 역사


오늘날 텔레비전처럼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전자제품도 드물 것이다. 때로는 '바보상자'라는 달갑지 않은 표현과 함께, 그 역기능을 우려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텔레비전은 대중 문화의 꽃으로서, 현대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국내외 가전회사들은 해마다 텔레비전 신제품들을 다투어 선보이고 있고, 차세대 텔레비전 시장 선점을 위한 연구개발 경쟁 또한 매우 치열하다.

그러면, 이러한 텔레비전은 누가 맨 처음 발명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초기의 텔레비전은 오늘날과는 다른 방식이었고, 텔레비전의 개발에 기여한 발명가, 과학기술자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르스(Samuel F. B. Morse; 1791-1872)가 전신을 발명한 후, 전신사업은 크게 번창해서 미국 각지가 전신으로 연결되었고, 1866년에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해저케이블이 개설되어 미국과 유럽대륙 사이도 전신망이 연결되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873년, 유럽 전신국에 근무하던 메이(Louis May)라는 전신수는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였다. 셀렌(Se)이라는 희귀금속으로 만든 부품의 저항이 일정치 않고 수시로 변하는 것이었는데, 그 원인을 조사해 본 결과 셀렌에 태양광선이 비치면 전류가 많이 흐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빛의 변화를 전기의 변화로 바꾸어 주는 셀렌 광전지가 발명되었고, 1875년에 미국인 케어리(George Carey)는 그림을 모자이크와 같이 분해한 후 전기로 바꾸어 전송하고, 수신측에서는 다시 조립하여 원래의 상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이것이 곧 텔레비전 연구의 출발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이런 방법으로 하나의 그림, 즉 정지화상은 어느 정도 송신이 가능하였으나 움직이는 화상을 송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화기의 발명자인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 등 여러 사람이 비슷한 시도를 하였으나, 텔레비전이 되기 위해서는 1초당 수십개의 화상을 송신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반응속도가 느린 셀렌 광전지만으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1884년 독일의 닙코프(Paul Nipkow; 1860-1940)가 전기신호를 영상으로 바꿀 수 있는 초보적인 장치를 발명하고 특허를 출원하여 텔레비전 개발에의 길을 닦았다. 이른바 '닙코프 원판'이라고 불린 이 장치는 회전하는 원판에 작은 구멍을 뚫어서 물체를 주사(走査)하고, 이 구멍을 통과한 빛이 셀렌 광전지에 전기를 일으켜서 영상을 복원하는 방식이었다. 브라운관을 채용한 오늘날의 전자식 텔레비전과는 원리가 다르고 화질도 매우 조악한 수준이었지만, 이 닙코프 원판을 빠르게 회전시키면 움직이는 영상을 구현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였다.

실용적인 텔레비전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사람으로는 영국의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 1888-1946)가 꼽힌다. 소년 시절부터 과학에 흥미를 지니고, 기계 제작, 실험 등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몸이 병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재능과 불굴의 집념, 노력을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을 발명해 내었다.
그는 독자적인 이론이나 특허를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탁월한 장인적 기질을 발휘하여 못쓰는 가구에 24개의 구멍이 뚫린 닙코프 원판을 조립하여 움직이는 영상을 구현해 내었다. 지금과 같은 전자식 텔레비전이 아닌, '기계식 텔레비전' 라고 말할 수 있는 베어드의 텔레비전은, 닙코프 원판을 1분에 600번 회전시켜서 동화상을 복원하였다.
1925년 4월, 런던의 셀프리지 백화점 앞에서 최초의 텔레비전을 시험해 본 그는, 화질을 거듭 개선하여 다음해 1월에는 영국 왕립 과학협회의 50여명의 과학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텔레비전 공개시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주사선 30개의 그의 새로운 텔레비전모델은 영국의 BBC 방송을 통해 1935년까지 시험방송 되었고, 그때까지 영국 전역에 약 4천대 정도 보급되었다고 한다.

베어드는 컬러 텔레비전의 연구에도 착수하여 성공하였으나, 뜻밖에도 새로운 강적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강적이란 곧 오늘날과 같은 방식의 '전자식 텔레비전'이였다. 그무렵 전자식 텔레비전을 개발하던 회사는 웨스팅하우스, RCA, 벨 전화회사 등과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 베어드와 오랜 기간 경쟁을 벌인 미국의 벨 전화회사(AT&T)는 산하 연구소에 천여명 이상의 고급 과학기술자와 훌륭한 시설들을 바탕으로 막대한 투자를 하여 전자식 텔레비전를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어드와 같은 개인 발명가가 상대하기란 너무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베어드의 기계식 텔레비전는 전자식 텔레비전에 자리를 물려 줄 수밖에 없었고, BBC방송도 1936년 정규방송을 시작하면서 EMI가 개발한 전자식 텔레비전를 채용하였는데, 에미트론(Emitron)이라는 전자식 카메라를 기본으로 한 EMI의 텔레비전 시스템은 훨씬 간편하고도 고화질의 성능을 구현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더욱 그러하지만 '적자생존'이라는 냉엄한 논리가 기술발전사에서도 그대로 통용될 수밖에 없는 만큼, 경쟁에서 패배한 베어드는 58세를 일기로 가난 속에서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는 바로 이 20세기 초반이 기술발전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여겨진다. 천부적 능력의 발명가 개인보다는, 기업이나 연구소 등 대규모의 투자와 조직적인 R&D(연구개발)를 바탕으로 한 기술개발이 과학기술 발전의 주된 동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전기, 전자산업과, 나일론을 발명한 뒤퐁회사와 같은 화학산업 등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한편 기계식 벨레비전을 밀어 내고 오늘날 텔레비전의 왕좌자리를 차지한 전자식 텔레비전은 러시아 태생의 미국인 즈보리킨(Vladimir Kosma Zworykin; 1889-1982) 등에 의해 개발되었다. 전자식 텔레비전에 널리 채용되는 브라운관(CRT)은 독일의 물리학자 브라운(Karl Ferdinad Braun)에 의해서 이미 1897년에 발명되었지만, 이것은 원래 텔레비전에 쓰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브라운관을 텔레비전에 응용하자고 주장한 사람은 즈보리킨의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 대학시절 담당 교수였던 로싱(Boris Rosing) 교수라고 하는데, 그는 모터로 원판을 돌려서 영상을 구현하는 닙코프 원판 방식보다는 진공관 속에서 전자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전자관 방식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였으며, 즈보리킨은 스승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웨스팅하우스와 RCA 등을 옮겨 다니면서 전자식 텔레비전을 연구하던 즈보리킨은 1923년 전자식 텔레비전 촬영용 진공관인 아이코노스코프(Iconoscope)를 발명하여 전자식 텔레비전의 길을 열었으며, 1940년 무렵에는 이를 이용한 컬러 텔레비전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민생용 텔레비전의 연구, 개발은 한때 중단되었지만, 뜻밖에도 커다란 부산물을 얻을 수 있었다. 초단파를 쓰는 텔레비전 방송의 연구는 전쟁 중 군용통신의 연구에도 그대로 이용되었고, 전후 활발히 재개된 텔레비전의 개발과정 중에서, 난제의 하나였던 안테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군사용 연구가 바탕이 된 민생용 첨단기술들의 사례가 꽤 많듯이, 전쟁시 쓰이던 레이더용 안테나가 바로 텔레비전의 안테나로 쓰이게 되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미국 라디오 회사(RCA; Radio Corporation of America)의 방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컬러 텔레비전규격인 NTSC(National Television Systems Committee)방식이 미국의 텔레비전 방식으로 채택되었는데, 이것은 흑백 텔레비전과 컬러 텔레비전이 서로 호환가능한 편리한 텔레비전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1956년 프랑스에서는 SECAM(Sequentiel Couleur Memoire)방식이 제안되었고, 1962년에는 독일에서 PAL(Phase Alternance Line)이라는 또다른 방식이 나와서 현재 세계 텔레비전 시스템은 3개로 분할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즉, 유럽용 텔레비전 수상기로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을 볼 수 없듯이, 기존의 아날로그 텔레비전 시스템에서는 다른 방식 간에는 호환이 불가능하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용 디스플레이 방식의 터줏대감 자리를 아직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브라운관 못지 않게, 경박형 대화면, 저소비전력 등을 무기로 하여, TFT-LCD(액정박막화면), PDP(Plasma Panel Display) 등의 여러 방식의 텔레비전들도 활발히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을 대체할 디지털 텔레비전이 곧 방송되게 되면 또한차례의 영상혁명을 맞을 것이고, 앞으로는 고선명 텔레비전(HDTV)에 이어 3차원 입체 텔레비전도 나오게 될 전망이다.
21세기에는 어떠한 영상구현 방식 및 기술들이 최종 승리자가 될 지, 또한 어떠한 신개념의 텔레비전들이 나와서 인류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 '과학사 X파일(최성우; 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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