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로 계산한다 - 양자컴퓨터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4-06-30 06:14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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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디지털 문명의 총아로 여겨지는 컴퓨터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46년 2월로, 1만 8천 개의 진공관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에니악(ENIAC)’이 최초의 컴퓨터로 꼽힌다.
현대적인 컴퓨터는 아니지만, 근대 유럽의 수학자 ‘파스칼(Pascal; 1623-1662)’이 개발한 기계식 계산기와 ‘배비지(Charles Babbage; 1792-1871)’가 고안한 프로그램 연산은 컴퓨터 발명에 밑거름이 되었고, 더욱 멀러 거슬러 올라가자면 고대 중국에서 발명된 '주판'도 인류 최초의 디지털 계산기라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고 반도체 집적회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논리소자로 이를 채용한 컴퓨터 역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컴퓨터의 크기는 갈수록 작아지면서도 성능은 더욱 좋아지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1-2년 정도의 일정기간 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로 증가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은 아직도 건재하면서 컴퓨터 성능의 고도화를 이끌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고도로 집적한다고 해도 논리소자를 원자 하나 이하로 구현하기는 불가능하며, 또한 원자 단위의 미시세계에서는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으로는 컴퓨터의 성능 역시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고자 전혀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를 생각해낸 것이 바로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이다.

컴퓨터의 기본은 0과 1로 표시되는 2진법 논리회로이다. 따라서 현재의 디지털 컴퓨터는 스위치를 켜거나(1) 끄는(0) 상태로서 전기가 흐르거나 흐르지 않는 형태로 2진법의 1 비트(Bit)를 구현한다. 그러나 물리학의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한 양자컴퓨터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원리로서 컴퓨터의 기본논리를 제시한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 상태의 중첩에 의해 측정값이 확률적으로 주어지게 되는데, 이를 응용한 양자컴퓨터에서는 이른바 ‘큐비트(Qbit)’라 불리는 양자비트 하나로 0과 1의 두 상태를 동시에 표시할 수 있다. 따라서 데이터를 병렬적으로 동시에 처리할 수도 있고, 또한 큐비트의 수가 늘어날수록 처리 가능한 정보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즉 2개의 큐비트라면 모두 4가지 상태(00, 01, 10, 11)를 중첩시키는 것이 가능하고 n개의 큐비트는 2의 n제곱만큼 가능하게 되므로, 입력 정보량의 병렬 처리에 의해 연산 속도는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진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난문제로 유명한 소인수분해를 예로 들 경우, 지금의 컴퓨터로는 ‘250디지트(digit; 2진 단위)’의 수를 소인수분해 하려면 80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한다. 만약 ‘1000디지트’ 수라면 10의 25제곱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는 우주의 나이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로는 몇 십분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현재의 컴퓨터로는 해독하는데 수백 년 이상 걸리는 암호체계도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불과 4분만에 풀어낼 수 있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양자컴퓨터의 개념을 제시한 사람 중의 하나는 바로 다재다능한 물리학자로 유명한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인데, 양자컴퓨터의 개발은 아직은 초기단계로서 이론적 가능성의 확립과 시제품의 실험제작을 모색하는 정도이며 또한 양자 알고리즘을 구체적으로 어떤 하드웨어 방식을 통하여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확립된 바 없다. 현재 핵자기 공명, 초전도 소자, 양자 공진기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연구되고 있는데 이들 중 전자기 에너지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빛의 입자상태인 '광자'를 정보처리의 기본 단위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유력한 대안의 하나로서 떠오르고 있다. 그간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광자의 원격이동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빛을 정지시키거나 저장하고 재생하는 실험들이 잇달아 성공하면서 광자 기반의 양자컴퓨터 개발 전망을 한층 높이고 있다.
양자컴퓨터가 언제쯤 실생활에 이용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20년 후면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과 함께 실용화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 그러나 양자컴퓨터가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면 시뮬레이션 능력의 획기적 발전에 힘입어 물리학, 화학, 생물학, 전자 및 전산학, 기상예측, 신약개발 등 각종 학문과 응용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동시에, 신용카드, 온라인 뱅킹 등에 널리 쓰이는 현재의 암호체계를 전면 개편하지 않을 수 없는 등 다시 한번 디지털 변화의 거대한 물결을 몰고 올 것이다.
(글 : 최성우-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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