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세포 사이-포웰즈를 찾아

글쓴이
Simon
등록일
2004-07-0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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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W. Roux)와 포웰즈(F. Pauwels)

pauwels2.jpg
독일 의사, 프리드리히 포웰즈 (1885-1980)
사진출처: Click! 독일 아헨 웹


그 누군가 줄기 세포를 분화시켜 당뇨병 환자들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신체의 다른 부위에 발생하는 질병의 치유를 위해 이식에 충분할 만큼의 적절한 체조직을 체외에서 분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간(liver), 심장, 혈관, 방광(bladder), 뇌, 소장 및 대장(small and large intestine), 피부, 눈, 귀, 뼈, 연골(cartilage), 인대(ligament)와 건(tendon), 그리고 근육 등이다.

처음 언급한 ‘당뇨’는 아시다시피 췌장(pancreas)의 주요 기능인 인슐린(insulin) 분비에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당뇨병 치료를 위해 췌장과 유관 부위가 제 기능을 하도록 생체 밖에서 또는 생명체와 유사한 환경에서 주변 장기를 만들어주는 일이 연구자들의 과제일 듯 싶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모든 체내 조직으로 분화 가능한 잠재성(pluripotency or plurivalence)을 지닌 줄기 세포(stem cell)를, 그것도 사람의 줄기 세포를, 복제했다는 것(2004)은 ‘난치병의 세포 치료적 접근’에 필수적인 첫째 관문을 통과한 셈이라 의미가 큰 것이리라.

이제, 남은 여러 관문 중, 우리는 상대적으로 덜 복잡하고, 비교적 간단한 듯 ‘보이는(seemingly)’ 뼈나 연골과 같은 경조직(hard tissue)과 인대 및 건과 같은 연조직(soft tissue)을 생각해 본다.

‘인대와 건은 구분이 잘 안가. 둘 다 비스무리한 게 뼈나 근육 근처에 붙어 있는 듯해. 양념 치킨 먹다 보면 닭 뼈 근처에 붙어 잘근 잘근 씹히는 놈 말이지. 그 놈을 체외에서 분화시킬 수 있을지? 연골을 뼈로, 혹은 피부 각질 밑의 교원질을 어떤 방법으로든 조지고 때리면 연골이나 건, 인대 심지어 뼈로도 분화시킬 수 있을 듯 보이는데 말이야. 힘을 부여해서, 잘근 잘근 씹히던 그것(인대 혹은 건)을 체외에서 유도…해…본다?’ - 루의 아이디어를 근거로 포웰즈 이론에 착안.

무척 생소해, 저급하고도 하질일 것으로 들리는 저런 아이디어를 들은 혹자는, ‘헛 참. 엄마 뱃 속에서 이미 완전히 프로그램화 되어 알아서 뼈든, 인대든, 연골이든 잘 성장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각각의 기관에 외적 자극인 ‘힘’을 부여한다고 뼈로 될 놈이 뼈가 안되고, 인대나 건이 될 놈이 연골로 변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참으로 한심한 발상이다. BT니 뭐니 해서 ‘바이오(bio-)’ 운운하는 세태라더니, 약 장사류의 사기꾼 녀석들만 새로이 등장한 형국 아닌가. 뭐, 잘근 잘근이 어떻다고? 엉터리 네 가설이나 잘근 잘근 씹어 삼키마.’

극히 상식적인 반론인 듯 들리는데, 과연 그럴까? 골근계, 즉 뼈, 연골, 인대와 건, 그리고 근육하면 곧 ‘움직임과 운동’이 연상될 만큼, 이들의 형태와 기능(form and function)은 곧 ‘힘, 력학, 즉, 기계학(mechanics), 다시 말해, 정력학 혹은 동력학적 문제이다.

물론, 체내 이온에 의한 전기 효과, 화학 반응에 의한 생화학, 나아가 의학의 관점에서 보는 해부 및 생리 지식이 총체적으로 오케스트라식 협연을 펼치므로, 전기학에 심지어 전자 및 분자학, 화학 및 생화학, 그리고 해부학 및 생리학적 지식도 동원되어야 비로서 뼈, 연골, 인대와 건, 그리고 근육의 외형과 내부구조, 나아가 각각의 기능과 쓰임새가 제대로 설명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순수과학자는 물론이고 현대 공학자, 특히 기계-항공-우주공학의 역할과 역사 상의 혁명성(갈릴레오)을 이해하는 많은 임상의, 특히 정형외과 및 치의학, 더불어 수의학, 물리학, 수학, 약학 및 생화학자들 공히 ‘몸, 조직, 그리고 세포와 DNA/RNA’를 들여다 보며 흥미로와 하는 시절이 현재이고, 이런 붐이 조성된 데에 기여해 인정받아 마땅한 전문가들이 ‘분자 생물학자(molecular biologist)’들이다.

황우석 교수팀 역시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 기술이 없었으면 절대 그들의 실험 결과를 ‘증명할 길’이 없었다. 사이언스가 요구했다는 수많은 검증 과정의 뿌리이자 실체는 바로 전령 RNA (mRNA)와 같은 작은 단백질의 발현을 가시화 해주는 분자생물학 기술(RT PCR, In-situ Hybridization, DNA Microarray 등) 덕분이고, ‘엉터리 만두속 방치’로 원성이 자자한 식약청(Korean FDA)과 보건원, 심지어 대한 적십자사 건물 어디엔가의 실험실 한 복판에 반드시 구비되어 있어야할 장비가 분자생물학 관련 장치이다.

분자 생물학자들은 수학자, 특히 통계학자들이 펼쳐놓은 실험설계(Experimental Design)를 활용하여 사람 손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실험 상의 수많은 오류의 가능성을 줄여가는 방식으로 놀라울 정도의 신뢰할 만한 업적을 조용히 쌓아왔고, 눈에 보이지 않아 믿지 못했던 세상을 열은 위대한 사람들이다.

프리드리히 포웰즈(Friedrich Pauwels)라는 독일인 의사가 있다. 이 사람이 쓴 독일어 원본을 두 명의 미국인 제자가 번역해 출간(1980, 현재 절판)한 영문판(Biomechanics of the Locomotor Apparatus)을 보면, 적어도 ‘정형외과계 및 골근계 과학, 의학, 생명과학’ 관련 저널과 서적에서 현재 보고되고 있는 많은 아이디어와 생각의 근거가 행간 및 그림 안에 숨어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방대한 내용 중 일부를 아래 정리해 본다.

몸을 지탱하는 조직의 분화에 미치는 기계적 자극의 영향에 관한 이론(A New Theory Concerning the Influence of Mechanical Stimuli on the Differentiation of the Supporting Tissues)


포웰즈의 저서에 등장하는 위의 긴 소제목은, ‘힘 = 자극 = 변화 유발’로 요약된다. 조금 길게 써 보면, ‘외력이 몸에 작용 = 일종의 자극 전달 = 변화유발’ 정도.

인과 관계를 따져보면 사태의 ‘원인이 힘’, ‘결과가 조직변화’라는 얘기이다. 문제는 어떤, 무슨 변화란 말인가? 세포의 입장에서 힘을 받아 세포 분할을 일으켜 분화 및 성장 혹은 세포 수의 증식이 일어나는 변화이고, 조직의 단계에서는 세포 군집의 변화에 따라 새 조직이 만들어지거나, 기존 조직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1895년 및 1912년, ‘기능적 순응’이라는 그의 이론을 통해 루(W. Roux5)는 기계적 자극, 즉 외력에 의해 체내 세가지 서로 다른 조직들이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루(Roux)에 따르면,

1) 골조직(bony tissue)의 형성에 관여하는 것은 압박력(compression)이고,
2) 인대와 건과 같은 연결조직(connective tissue)은 인장력(tension)에 의해,
3) 연골조직(cartilage tissue)은 강한 전단력(shearing)이 압박이나 인장과 함께 작용할 때 형성된다는 것이다. 즉,

1) 안쪽으로 누르는 힘 ==> 뼈
2) 바깥 방향으로 쭉 늘여주는 힘 ==> 인대 또는 건
3) 빗겨내는 힘과 누르는 힘 또는
빗겨내는 힘과 늘여주는 힘의 결합 ==> 연골


이 만들어진다는 논리인데, 힘의 종류에 따라 체조직이 다르게 분화된다는 뜻 같다.

uebungsraum.jpg
1920년 포웰즈가 수행한 생체역학 실험 사진
출처: 아헨 웹


외력, 즉 힘(force)을 분류하는 방식이 몇 가지 있는데, 흔히1) 압축 2) 인장 3) 전단의 세가지로 성분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와 달리, 1) 정수력학적 힘(hydrostatic, dilatational)과 2) 빗겨내는 힘(distortional, deviatoric)과 같이 두가지로 구분할 수도 있다.

‘글자를 관찰’해 보면, 딜레이테이션(dilatation) 혹은 다이얼레이션(dilation)은 팽창(expansion)과 압축(compression)을 포괄한 말이고, 디스토션(distorsion)은 뒤틀림(torsion)과 같은 맥락일 듯 싶다. 디비아토릭(deviatoric)은 이탈, 찌그러짐, 왜곡이라는 뜻의 디비에이션(deviation)이라는 명사를 연상시킨다.

두 방식 공히 수학적으로는 다소 다르게 표현되나, 둘 다 흥미로운 발상임에 틀림없는 것이, 아들의 안마를 받기 위해 방바닥에 편안히 누워계신 아빠 등을 아들이 양발로 밟아줄 때(압박)하고, 고사리 손이 아빠 등판을 좌우로 쭉쭉 늘여줄 때(인장)하고 확연히 다른 신호가 몸으로 전달되어 등거죽 밑 척추 세포 역시 ‘두 개의 서로 다른 신호(압박 또는 인장)’로 감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안마 받아 아빠 등판 아래 갖은 혈관내 혈액의 순환이 잘 되는 것은 물론.

루(Roux)의 아이디어를 증명해 보기 위해 여러 경우를 관찰한 과학자들은 골절 치유나 여타의 다른 상황을 통해 그의 가설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압박(compression)을 가해도 뼈(bone)가 생성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연골의 경우도 빗겨내는 힘의 역할이 루의 얘기처럼 과연 분명한 것인지 여러 모로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종류의 힘이였든지 뼈, 연골 그리고 기타 연결 조직의 분화 및 형성에 관여하는 신호가 분명히 있으리라는 확신이었고, 기계적 자극과 체조직의 분화 사이의 관계를 다른 시각에서 탐구해 보자는 접근 방식이 등장한다. 그 출발점은 ‘세포의 입장을 이해하라’였다.

체조직이 힘을 받았을 때, 아빠 등판을 아들이 밟을 때, 조직을 구성하는 세포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조직을 늘여주는 힘이든, 압박하는 힘이든, 빗겨내는 힘이든 공통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세포 모양이다.

즉, 세포를 동그란 구(sphere)라고 간주하자. 완전한 구는 아닐 수 있고 저마다 다른 모양을 할 수 있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해 완벽한 구라고 상상하자. 풍선 안에 공기 대신 물을 집어 넣고 동그랗게 부풀려 놓은 후 풍선을 위 아래에서 누르면?

balloon.JPG


위 두번째 경우, 풍선을 바닷 속에 넣었을 때는 모양이 안 변한다? 동의하기 힘든데? 모양이 큰 공에서 작은 공으로 변한 것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 있겠는데, 큰 공이든 작은 공이든 구의 형태, 동그란 모양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므로, ‘변형(deformation)’의 관점에서 외형은 유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부피는 본래보다 작아졌다. 왜? 바닷 물이 사방팔방에서 고루게 작용하였고, 수압이 풍선의 체적을 똑같이 감소시켰으므로.

심연의 잠수함 외피가 강건하지 않으면 바로 찌그러진다? 왜? 수압 때문에. 수압은 위에서 아래로만 작용할까? 아니다. 수압은 잠수함 표면에 골고루, 사방팔방에서 정확히 물의 무게만큼 균일하게 작용한다. 위에 물 찬 풍선에도 같은 원리 적용.

이제 풍선을 세포에 비유해 보자. 본래 액체 성분으로 차 있는 세포에 아래와 같은 힘이 작용한다면 세포의 모양과 부피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cells.JPG

hydrostatic.JPG


위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면, 세포의 체적을 변화시키는 정수압력과 세포의 외형을 변형시키는 압박 또는 인장, 아니면 전단력에 의하여 본디 뼈로 분화되어야할 모세포가 연골 또는 섬유성 조직으로 변화될 수 있도 있다는 것인데, 엔지니어링 마인드를 기초과학에 접목시킨 연구자들이 체외에서 이런 개념을 적용하여 뼈, 연골, 인대와 건을 유도해 내는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면 유용할 듯 싶다.

서구의 경우, 비만과 노화로 골절 환자도 많고 프로 스포츠 선수의 경우 인대 및 아킬레스 건이 파열되는 경우가 빈번해 바이오 기술을 응용한 근골격계 세포 조직의 분화 및 형성에 지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형편이나, 부시 정부가 줄기 세포 연구를 차단한 2001년 이후 다소 정체기에 접어든 형편이다. 하지만, 그 어디에선가 보이지 않는 실험실에서 저런 류의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힘의 종류를 위와 같이 다른 각도에서 구분해 보면 현상도 새로와 보인다. 물론 포웰즈의 책으로부터 스탠포드 대학의 데니스 카터(Dennis Carter)가 최근까지 발표한 논문을 보아도 비슷한 설명이 있지만, 위 물 찬 풍선 운운한 것은 글쓴이의 상상 임을 밝힌다.


참고: Biomechanics of the Locomotor Apparatus (1980, F. Pauwels 원저/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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