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의 원천인 제4의 물질상태 - 플라즈마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4-08-10 07:14
조회
9,810회
추천
44건
댓글
4건

우리는 흔히 물질에는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태가 있다고 배워 왔다. 온도가 낮아
지면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고, 반대로 온도가 높아지면 수증기로 변하듯이, 모든 물질들은
반드시 이러한 3태 중의 하나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
한 물질의 상태가 하나 더 있으니, '제 4의 물질상태'라 일컬어지는 플라즈마(Plasma)이다.
플라즈마란 매우 높은 온도 등에서 이온이나 전자, 양성자와 같이 전하를 띤 입자들이 기
체처럼 섞여있는 상태를 말하며, 중성의 원자나 분자들로만 이루어진 보통의 기체와는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다. 아크등의 방전 현상에 관해 연구하던 미국의 물리화학자 랭뮤어
(Irving Langmuir; 1881∼1957)가 1928년에 처음으로 이 용어와 개념을 도입한 바 있다.
플라즈마는 기체의 특별한 상태로 볼 수도 있으므로 네 가지의 물질 상태 중에서 가장 적
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상은 정 반대이다. 태양계 총 질량의 99% 이상을 차지하는
태양이 플라즈마로 구성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기
체, 액체, 고체 상태는 모두 합쳐도 0.01%도 되지 않는 셈이다.

플라즈마는 온갖 미래 첨단기술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래의 에너지로
서의 이용 가능성인데, 점점 고갈되어 가는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가장 유력한 수단으로 떠
오르는 핵융합 발전은 수소 원자핵 등으로 섭씨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만들면 성
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입자가속기는 물질의 궁극과 우주의 비밀을 밝히기 위
한 입자물리학의 실험이나 각종 물성 실험에 활용되는 방사광을 얻기 위한 필수적인 장비인
데, 이 역시 전자나 양성자, 혹은 이온 등을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시켜 충돌시키거나, 강
력한 X선 및 방사광 등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플라즈마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생명체의 존재 여부 등으로 화성 탐험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 현재의 우
주왕복선 등은 속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화학연료를 싣고 가야만
하므로 장기간이 소요되는 유인 화성여행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고온의 플라즈마를 고
속으로 분출하는 '플라즈마 엔진'을 우주선에 탑재한다면, 훨씬 적은 양의 연료로 기존 우주
선보다 10배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미래의 화성 우주왕복선에 활용될 것으로 기
대되고 있다.

그러나 플라즈마가 이용되는 것은 위와 같은 '거대 과학기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우리 주변의 일상생활 곳곳에서도 플라즈마 관련 기술이 적용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차세대 디스플레이 수단으로 유망한 PDP(Plasma Display Panel) 텔레비전이다. 기존
의 브라운관식 텔레비전 수상기는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화면을 크게 하기 위
해서는 부피와 중량도 너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디지털 TV 시대의 고화질, 대화면을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큰 화면에도 불구하고 두께는 매우 얇아서 벽걸이 텔레비전에 적합한 PDP는 형광등과 비
슷한 원리로서, 플라즈마에서 나오는 자외선을 이용하여 화면을 구현한다. 즉 일정한 간격으
로 배치된 아주 작은 유리관에 가스를 채워 넣고 앞뒤로 전극과 형광물질을 배치한 후, 전
극에 전압을 가하면 가스가 플라즈마 상태로 바뀌면서 자외선이 발생하고, 이것이 각각의
형광물질을 자극하여 사람 눈이 볼 수 있는 빨강, 파랑, 녹색의 가시광선을 내게 되는 것이
다. 작은 픽셀들로 이루어진 3원색을 적절히 조합하여 자연색 등을 구현하는 것은 다른 컬
러 디스플레이 수단과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PDP 텔레비전은 열이 나고 전기가 비교적 많
이 소요된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는데, 앞으로 효율이 높고 낮은 전압에서 플라즈마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LCD, 유기EL 등의 다른 평판 디스플레이 경쟁자들을 물
리치고 PDP가 차세대 디스플레이 수단의 왕좌를 차지할 가능성도 크다.

플라즈마는 또한 반도체의 가공, 박막 생산 등의 제조공정에도 핵심기술로 쓰이고 있으며,
각종 제품을 도금, 코팅하는 플라즈마 표면처리 기술은 기존에 비해 성능이 매우 우수하면
서도 환경친화적인 기술이다.
또한 플라즈마는 커다란 골칫거리인 각종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
로 기대된다. 고압전류에 의해 플라즈마에서 발생하는 오존은 악취성분을 분해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에어컨, 공기청정기, 탈취제 등으로도 이미 활용되고 있고,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줄이는 데에도 이용될 수 있다. 쓰레기 소각장에서는 다이옥신 등의 각종 발암물질과 유해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데, 플라즈마 토치로 독가스를 완전 분해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인
폐기물 처리장치로 꼽힌다. 앞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저온 플라즈마'를 대량 만들 수 있게
된다면, 환경문제의 개선에 더욱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사진 설명 : 핵융합 발전을 위한 토카막 장치에 자기장으로 플라즈마를 가두어 둔 모습 (우측)

  • terra ()

      궁금한것이 있습니다. 우측의 사진이 토카막 장치에서 자기장으로 플라즈마를 가두어 둔 모습이라고 하셨는데, 저것은 실제 사진인가요? 아니면 가상의 그림인가요? 만약 실제라면 어떤식으로 촬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자기장의 영향을 안받고 촬영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지? 부탁드립니다.

  • 최성우 ()

      저도 사진 원본을 확인해 보지는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가상의 그림 같지는 않습니다.  플라즈마가 밝게 빛나는 모습을 찍은 듯하고요...  토카막 장치 내부에 자기장으로 플라즈마를 가둔 모습이라고 했는데, 사진 촬영이 특별히 지장을 받을 이유가 있나요?

  • terra ()

      아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순간 전자사진 일 경우만 생각하고서는;; 읿반 가시광선을 이용한 사진기는 전혀 영향이 없겠네요. 전자기기부품이 영향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 herryrain ()

      제가 듣기로는 물질의 성분을 검사할때도 플라즈마를 이용한다고 들었는데 자세히 좀 설명해주실분 계세요?

목록


과학기술칼럼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1741 상대를 함정에 빠뜨린 과학자들 최성우 02-23 3801 1
1740 라부와지에, 아인슈타인, 벨의 공통점은? 최성우 02-14 4268 1
1739 용도발명 - DDT와 보르도액 댓글 2 최성우 01-29 5418 0
1738 뢴트겐, 테슬라 모터스, 인간DNA... 최성우 01-12 4543 0
1737 위기의 과학 문화재 - 측우기와 다라니경 최성우 01-05 4751 0
1736 힉스 입자와 중력파 최성우 12-29 5907 0
1735 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12) - 저온의 물리학 댓글 1 최성우 12-08 5564 0
1734 어떤 행운 - 전리층의 존재와 원자핵의 발견 최성우 12-02 4872 0
1733 N선과 제로존 이론 댓글 2 최성우 11-29 5072 1
1732 대를 이은 과학기술자들 최성우 11-23 6034 1
1731 직무발명 - 천지인 자판과 청색LED 최성우 11-08 5150 0
1730 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11) - 현미경과 물리학 최성우 10-27 5347 0
1729 논쟁 중인 과학문화재 - 첨성대와 거북선 댓글 3 최성우 10-20 5872 0
1728 과거에서 배우는 융합 연구의 중요성 댓글 3 최성우 10-05 6032 0
1727 기대와 달리 시장에서 실패한 기술들 최성우 09-27 16627 1
1726 재주는 곰이 부리고... 댓글 3 최성우 09-21 5806 1
1725 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10) - 시계의 물리학 최성우 09-02 4941 0
1724 상온 핵융합은 정말 가능할까? 댓글 1 최성우 08-25 5741 0
1723 정치에 참여한 과학자들 최성우 07-29 4954 1
1722 노벨 물리학상 톺아보기(9) - 수수께끼의 입자 중성미자 최성우 04-09 5253 1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